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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중요한 건 눈맞춤, 강의노트? 안 만들죠”
[나의 강의시간]“중요한 건 눈맞춤, 강의노트? 안 만들죠”
  • 교수신문
  • 승인 2007.10.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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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교편을 잡은 지 약 10년 정도가 된 선배 교수가 시애틀에 오게 되어 몇 사람이 같이 만난 자리가 있었다. 학문적 이슈, 대학원생의 애환, 한국에서의 취업 상황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한 생각이 막연했던지라 그 선배 교수께 경험담을 부탁드렸다. 여러 얘기를 해 주셨지만, 당시 충격처럼 다가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그 분의 말씀은 그랬다. “학생들 많이 사랑해 주세요.”

학위를 마치고 와서 교단에 몸담게 된 이후 항상 그 선배 교수의 충고를 상기하려고 노력한다. 후배 교수들에게도 기회가 닿으면 꼭 그 선배 교수의 얘기를 들려준다. 다만, 과연 내가 그 충고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면서 애꿎은 제자들을 닦달했던 혀 짧은 서당 선생님처럼, 정작 나 자신은 제대로 실천도 하지 못하는 조언을 후배들에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에 하는 얘기다.

사소한 일로 핏대를 올리며 수업시간을 썰렁하게 한 적도 있었을 것이고, 바쁘다는 이유로 대화를 원하는 학생을 제대로 응해주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정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을 얼마나 전해 주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인생의 선배로서 학생들의 앞날에 도움이 될 만한 괜찮은 이야기들을 별로 해주고 있지도 못하다는 자책이 들 때가 많다. 반성은 많이 하고 있으나, 사랑의 실천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만 거듭 깨닫고 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리고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기는 언제라도 매한가지이지만, 그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강의하는 재미는 조금씩 더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경력이 쌓이다 보니 강의 솜씨가 예전보다 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즐거운 착각도 해본다. 학생들이 수업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요령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학생들의 눈이 아닐까 한다. 첫째가 학생들과의 눈맞춤이고, 둘째가 학생들의 눈높이라는 생각이다.

수십 명에 달하는 학생들과 계속 눈길을 주고받자면 강의 노트를 볼 겨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강의 노

트 자체를 잘 만들지를 않게 된다.
일단 강의노트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다음에도 또 쓰게 되기 마련인데, 예전에 만들어 놓은 강의 노트에 의존할 경우 왠지 강의의 활기가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강의 노트를 잘 만들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강의 준비를 하며 만든 메모는 수업에 가지고 들어가지만 그나마도 가끔 한 번씩 보면서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내용만 확인하는 정도로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수업방식과 학습의 강도를 학년별로 다르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1학년 수업인 ‘국제정치학 입문’에서는 아무래도 강의를 많이 하게 되고 과제물의 양도 적다. 2학년 과목인 ‘유럽정치론’에서는 학생들의 참여 비중이 좀 더 높아, 학생들은 조별 주제 발표와 신문 스크랩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특히 흥미로워 하는 부분은 시사문제 시간인데, 매주 전체 학생이 스크랩해 온 유럽관련 신문기사 중 중요한 것 대여섯 가지를 추려 부연설명을 한 시간 정도 해 주면, 현재진행형의 이슈들을 다루어 현실감이 있는지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은 편이다.

3학년 수업은 ‘국제협상론’인데, 학생들의 역할이 더욱 커진다. 원서 교재 요약 발표, 국제협상의 실제 사례 연구, 주어진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 등으로 진행되며, 학생들의 발표와 질의, 응답 및 토론이 전체 수업의 50-60%를 차지한다. 4학년 수업으로는 ‘국제정치경제’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수업은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 준하는 독서량과 심도 있는 토론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학생들의 학습 부담이 꽤 큰 편이다.
이제 강의에는 관록도 붙고 요령도 생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결같은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수양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가르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최진우/한양대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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