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0:25 (금)
‘싱크탱크’에서 ‘줄서기’까지 … 과연 ‘권력’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싱크탱크’에서 ‘줄서기’까지 … 과연 ‘권력’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0.22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과 지식인_ 지식인과 현실정치, 어떻게 관계 맺고 있나 ① 2007 대선공간의 지식인 지형도

 2007 대선의 해, 올해도 어김없이 교수들의 현실 정치 참여를 놓고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고 시대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진단하지 않는다는 ‘지식인비판’과  개인의 영달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면 고민할 만하다는 ‘참여론’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분명 지식인의 정치 참여 행위 자체만을 놓고 가치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오늘의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가 일 것이다. 교수신문은 3회에 걸친 ‘대선과 지식인’ 기획을 통해 지식인사회의 동향을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① 2007 대선공간의 지식인 지형도 ② 미래 설계자들의 성향과 연구 ③ 2007 정책 비전의 평가와 과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거리두기가 지식인을 상징하는 코드가 됐던 지난 시절, 지식인이 있어야 할 곳은 상아탑과 거리였다. 지식인과 현실정치의 거리는 멀면 멀수록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대통령 선거의 해가 되면 각 예비후보들을 중심으로 자문교수단의 구성부터 수백 명에 이르는 교수들의 지지선언이 물밀듯 쏟아지는 풍경도 그렇다. 이를 두고 권력욕, 출세욕이라는 비난의 시선도 적지 않지만, 지식인으로서 이론을 현실에 투영하고 대안과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역할론의 주장도 만만치않다.

교수들 불러들인 대운하공약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직간접적으로 대권후보들의 캠프에 관여한 교수의 수는 1,500여명에 달한다. 물론 캠프의 핵심 역할을 하는 교수들의 수도 적지 않으며, 전현직 총장들도 가세했다.

지난 대선과 차별되는 부분도 있다. 우선 그 규모가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정책 생산자들을 요구하는 후보자의 수가 많아진 것을 반영한다. 자연증가로 보지 않는 시선도 있다. 지난 대선시 노무현 캠프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현 정부에 대거 기용됐던 게 선례가 됐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특징도 교수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특히 올해는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으로 이전까지 인문계나 사회과학계에 비해 참여가 적었던 이공계와 환경관련 교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실제 이 캠프는 환경 관련 교수들 107명으로 구성된 ‘운하정책 환경자문교수단(단장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을 발족하기도 했다. 또한 양극화와 신빈곤이라는 현실에 비추어 ‘대안 경제’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경제학자들의 포진도 눈에 띈다.

정책 설계하는 진영별 교수들
교수들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아있는 캠프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굳건하게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진영이다. 당내 경선 때부터 공약의 기초를 다진 400명의 정책자문단을 포함, 당 안팎의 정책네트워크가 1,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을 마무리하고 최근 발족한 선대위에도 박찬모 전 포항공대 총장, 박범훈 중앙대 총장, 김성이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가 직능별 조직의 좌장을 맡았다.
정책라인의 핵심 브레인은 선대위의 실무진을 총괄하는 전략기획회의의 정책기획팀장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경제학)가 꼽힌다. 경제통이지만 대운하 공약과 최근 발표한 교육정책 공약 등 외교, 안보, 교육, 복지에 이르기까지 전반을 손질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책과 공약개발의 전담조직인 일류국가비전위원회에서 종합된 정책은 그의 검토를 거쳐 비서실장과 이 후보에게 전달된다.

이 후보의 ‘싱크탱크’ 국제정책연구원의 원장인 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과)는 대운하 공약을 구체화시킨 장본인이다. 이곳에 소속된 교수들은 경제, 외교·북한, 사회, 문화, 국토개발, 여성 등 6개의 분과로 나뉘어 적극적으로 자문활동을 펼치고 있다. ‘비핵·개방 3000’, ‘MB 독트린’ 등 핵심공약들이 거의 이곳에서 나왔다.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경제학)를 필두로 하는 바른정책연구원도 정책라인의 또 다른 축으로 긴 호흡의 중장기 정책개발을 지원한다.

최근 당내 경선을 끝내고 확정된 정동영 후보를 지원하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대통합민주신당 차원으로의 재편을 위해 현재는 선대위가 해체됐지만, 정책생산소인 나라비전연구소를 중심으로 브레인들이 결집해 있다. 전북·충청 지역의 교수 400여명, 대구·경남지역 교수들의 지지선언 등 지원사격도 만만치 않다.

나라비전연구소의 소장인 권만학 경희대 교수(국제학)가 정책 분야의 핵심 참모다. 그는 이전 선대위에서 한반도평화체제특별위원장을 맡으면서 정 후보의 정책 설계를 진두지휘했다. 정 후보와 서울대 동기로 30년 지기인 권 교수는 평화경제특별위원장직의 류근관 서울대 교수(경제학)와 함께 핵심 정책인 ‘평화경제론’의 뼈대와 살을 만들었다. 교육개혁특별위원장이었던 김하수 연세대 교수(국어학)는 교육 정책을 총괄했다. 

대북정책과 경제정책의 자문 역할을 취지로 발족한 평화경제포럼도 빼놓을 수 없다. 권만학 교수를 비롯, 안병우 한신대 교수(국사학) 등이 공동대표인 이 조직은 생산보다는 경제, 평화 등에 대한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창당을 앞두고 있는 문국현 후보는 특히 학계 출신 인사들이 많다.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등 각종 시민단체의 활동과 환경운동의 경험을 통해 형성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100여명의 교수가 정책 자문에 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국 교수 150인의 지지선언도 이목을 끈 바 있다.

문 후보의 ‘사람중심 경제론’의 중심에는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가 있다. 뉴패러다임센터 소장이었던 그는 유한킴벌리의 평생학습 모델에 공감했고, 이후 사람중심 경제론의 핵심 내용인 ‘평생학습체제 구축으로 중소기업의 지식화·유연화를 통한 고용창출’의 이론적 토대를 다졌다. 그는 정책자문단장을 맡아 정책 부문을 지휘하고 있다.

문국현 후보 진영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공약을 만들었던 ‘중경회’ 출신 인사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신봉호 교수도 그중 한 명으로,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관리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또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경제학)와 금감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윤원배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도 문 후보의 정책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 등 창조경제포럼에 속한 이들도 문 후보의 지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학문적 소신과 후보 사이의 매개들
각 후보 진영에서 미래 한국의 골간을 마련하고 있는 교수들이 말하는 참여의 배경은 무엇보다 학문적 소신과 철학이 후보의 정책과 가치에 부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와 교수를 이어주는 매개는 그것만이 아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학연, 지연 등의 인맥이다. 권만학 교수는 정동영 후보와 서울대 72학번 동기로, 유신반대 운동을 하면서 만나 현재까지 지근거리에서 지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병우 한신대 교수 역시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이다. 또 정책 조언을 해주고 있는 최상용 고려대 교수 역시 대학의 스승이다.

이명박 후보 진영에는 고려대 출신 교수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백용호 교수는 1996년 총선 출마 후 이 후보와 연을 맺어 현재까지 이르게 됐다. ‘인맥’이 주요하게 교수의 합류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후보들의 ‘호명’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실제 이 후보는 “유능한 사람은 ‘칠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오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념과 신념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한국정치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전문성과 명망성을 가진 교수들이 발탁되는 것도 이런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일부지만, 여전히 대권 후보의 캠프 근처를 기웃거리는 교수들이 존재한다. 한 후보 진영의 관계자에 따르면 극소수이긴 하지만 교수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대권후보 진영에 ‘줄서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2007년 대선까지는 앞으로 두 달 남짓 남았다. 인재풀이 협소한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교수들은 예나지금이나 ‘후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싱크 탱크이다. 교수들이 전문성을 발휘해 정치 지도자의 정책라인을 지원해주거나, 실무를 맡는 일은 과거처럼 비난 일변도의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소신’과 ‘역량’, 그리고 누구를 위한 헌신인가에 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정치참여는 늘 ‘투명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