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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들린 사회여, ‘행복지수’에 눈돌리자
물질에 들린 사회여, ‘행복지수’에 눈돌리자
  • 김영호 / 인하대 명예교수·동양철학
  • 승인 2007.12.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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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국제GHN(Gross National Happiness)회의를 다녀와서

근래 동남아시아에는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 의식혁명 운동이 주창되고 있다. 그 열쇳말은 행복지수다. 국민·국내총생산 지수가 대표하는 물량적 가치관에서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지수가 나타내는 총체적 가치관으로 전환하자는 운동이다.

지난 달 26일부터 29일까지 태국 찰라롱콘대에서 ‘세계관에 따라서 차이가 생긴다’는 주제로 열린 제3차 국제 GNH회의를 참관하고 이 운동의 확대속도와 현황에 크게 놀랐다. 자살률이 세계최고로 치달으며 대선정국 속에서 정치인과 저급 언론이 시대정신을 겨우 경제성장이라고 몰아가는 어두운 우리 사회에 이 운동은 훌륭한 대안을 제시한다. 정신과 물질(경제), 목적과 수단이 구분되지 않고 정신과 목적을 상실한 사회가 물량주의에 반기를 든 동남아 지도층과 지식인에게 눈을 돌려야할 이유는 자명하다.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행복학이 정립돼야 한다고 느낀다면 이 운동을 주시해보자.

GNH는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 문화의 보전과 진흥, 환경보전, 좋은 관리체제(거버넌스)의 증진이 그것이다. 경제번영은 네 가지 요인들 가운데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단지 하나의 열쇠일 뿐이다. GNP나 GDP는 경제성장에 의한 복지의 증가를 목표로 할 뿐 환경보전, 문화증진, 좋은 관리체제, 예컨대 개인의 노동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 등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두 세기 동안의 자본주의 산업경제 발전은 경제성장의 초점을 벗어난 어떤 논의도 경제효율에 위반된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행복을 최대화하기 위해 네 축의 균형 유지를 주요한 기준으로 보는 GNH는 이 시대 사회발전의 필수적 요소와 요건을 망라하는 국가와 사회전체 발전의 통합적인 지표다.

부탄학 연구소가 제시한 다음의 요소들, 즉 심리적 복지, 건강, 시간사용 및 균형, 교육, 문화적 다양성 및 탄력성, 좋은 관리제도, 공동체 활력, 환경의 다양성 및 탄력성, 생활수준이라는 9개 영역은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구체적 요인이다. 태국은 GNH와 유사한 SE(sufficiency economy) 지표를 만들어 정책기조로 실천하고 있다.
GNH는 후진국이 생산지수로는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후진적 정치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내놓은 지표가 아니다. 실제로 부탄 왕국은 왕정에서 민주체제로 전환하는 일정을 잡고 내년에 개헌과 의회선거를 예정하고 있다. 유럽, 캐나다, 호주, 미국 등 서구에서도 GNH 회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대만은 이미 정치권에서 GNP를 GNH로 대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 흐름이 단순한 민간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는 점은 담론수준을 넘어 앞으로의 실현을 예정한다. 그것은 개막식에서 태국과 부탄 두 나라 정부의 수상이 의례적인 수사를 넘어 심도 있는 축사를 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수백 명이 참여한 2주간의 전체 회의 소요경비 대부분을 태국정부기관이 부담하고 부수상이 시종 주도적으로 관여했다. UNDP와 유네스코 등 유엔기구도 적극 참여했는데, 유네스코 아태지역 총재는 주제 강연자로 나섰다.

부탄 수상은 개막연설에서 “GNH에 고유한 상호의존, 평등 및 자비의 가치들이 다른 곳에 만연한 소비주의와 개인주의를 물리칠 것이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한 승려 발표자는 GNP가 아니라 국가를 넘어 GUH

(Gross Universal Happiness), 즉 ‘보편행복지수’로 확대돼야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정신적 행복과 인간의 기본적인 상황 개선 모두의 당위성을 느끼는 지금, GNH 운동은 신선한 충격과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영호 / 인하대 명예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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