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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로 한국 역사의 공백 채워갈 것”
“구술사로 한국 역사의 공백 채워갈 것”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7 15: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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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세기 한국의 민중 기억 모아낸 박현수 영남대 교수(문화인류학)

“민중은 자기 스스로를 역사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들의 역사를 기록해주지 않는다. 이들은 한국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돼왔다. 그러나 이들은 묵묵히 치열하게 이 시대를 만들어온 주인이자 증언자들이다” 박현수 영남대 교수(문화인류학·사진)가 새삼 과거를 다시 기록하고자 하는 이유다.

박 교수가 이끌고 있는 20세기민중생활사 연구단(이하 연구단)은 구술·사진·영화 등의 기록을 찾아내, 국가만이 주체로 있는 한국역사의 공백을 다른 주체들의 기억들로 채워가고 있다. 연구단은 2002년 8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기초인문학육성 지원을 계기로 영남대 인문과학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 목포대, 전북대, 중앙대 등 3개 지역 6개 대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출범해 일상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는 국립영상원,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문화인류학회 등 총 8개 연구기관과 일본 큐슈대도 참여한다. 학진의 지원 규모도 6년에 거쳐 55억 원에 이른다.

이들이 보기에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것은 현재 있는 역사를 선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록과 증거들로 채워가면서 충돌하게 하는 것이다. “역사는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고정적으로 물화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성·변형되는, 그래야만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항대립적인 역사 규정이 아니라 다양한 기억들이 공존하고 대결하는 상태가 바로 왜곡되지 않은 진실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口述, ‘글자 없는 민중’의 기록
연구단이 의존하는 기록은 구술이다. “글자를 쓰지 못하는” 민중들의 역사를 문헌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문헌자료의 객관성을 들어 개인적 구술이 주관적이고 허구적이라고 지적하는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구술이나 문헌이나 역사를 쓰는 것은 주체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경험을 담은 구술이 객관적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반박한다. 일본군 성노예의 사실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990년 김학순 할머니의 자기고백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픽션이 배제된 사실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사실이 배어있지 않은 픽션이 없음을 전제할 때, 중요한 것은 발굴되지 않은 사실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간의 연구 풍토는 담론의 대결만을 중요시 해왔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하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이제는 20세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앞서 어떤 일이 있었나를 실증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론 팩트 자체도 주관성이 있지만, 각자의 기록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인식하고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역사의 이름으로 과거가 일원화될 수 없다면 민중도 단일한 집단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누구’의 말을 들춰낼 것인가. 연구단은 사건사가 아닌 생애사의 형태로 과거를 기록했다. 박 교수는 “자기의 일생을 이야기하며 시대를 증언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고 받아내는 연구자가 마주 앉은 것 그 자체가 개인의 역사를 사회의 역사 속으로, 또 사회의 역사를 개인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일”이라 밝힌다. ‘역사 속에 위치한 인간’이 아니라 한 인간이 맺은 사회적 총체로 과거를 파악하려는 의도로, 부록화한 개인 생애사 연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배목수, 거리의 악사… 보통사람 찾아가기
인물 선정은 20세기라는 시대의 감춰진 일상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는 것이 핵심적 기준이었다. “처음에는 지리적 기준으로 차별적 특징을 찾았었다. 20세기 한국근대의 특징을 소통으로 두고, 물길, 철길을 중심으로 지역을 나눠 그곳에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당시의 특징적인 직업들 예컨대 식모살이, 첩살이, 공장 노동자 등 소외됐지만 중요한 문화로 자리 잡았던 기억들을 찾아내고자 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인물 선정에서 수차례의 인터뷰,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까지 방대한 작업에 참여한 연구자만 해도 100여명이 넘으며, 이들이 전국 방방곡곡 발품을 팔았던 기간도 5년이 넘었다고 한다.
한국 구술작업은 그간 증언자가 아니라 연구자가 기억의 주체가 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구단이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박 교수는 “증언자에게 시대의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내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웠다”며 시행착오들을 들려준다. “식모살이나 첩살이를 했던 이들에게 과거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였고, 노동운동으로 일생을 살아온 이는 어두운 상황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길 꺼려하기도 한다”며, 연구자는 하고 싶은 말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그쳐야할 것을 강조한다.

이들이 개척하고 있는 구술사 연구론이 한국의 학문지형을 바꿨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현대사의 빈 구석을 채워나가는 기억의 재발견, 그리고 한국의 학문 자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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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표 2007-12-18 14:17:44
지난 5년간의 결실이 조금씩 영걸어 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습니다. 큰일 하고 계십니다. 마음의 꽃다발을 보냅니다.
지역적 안배보다 직업군을 조사대상으로 조정한 것은 잘한 것 같군요. 이제 민중사 교재를 편찬한다는 소식도 들리더군요.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