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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연말이 더 외로운 기러기아빠 교수들
⑭ 연말이 더 외로운 기러기아빠 교수들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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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 야전침대를 둔 까닭

자녀들의 해외유학이 늘면서 신조어들이 많이 생겼다. ‘기러기 아빠’같은 흔한 말 외에도 ‘독수리 아빠’, ‘펭귄 아빠’, ‘참새 아빠’가 있다.
‘기러기 아빠’는 해외에 자녀와 아내를 떠나보낸 뒤 겨울철새 기러기처럼 1년에 한두 번 가족들을 보고 오는 아빠로 방학이 있는 교수들이 주를 이룬다. ‘독수리 아빠’는 해외에 자녀를 유학보낸뒤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가족을 보러 출국할 수 있는 아빠로 주로 대기업 임원이나 부자들이 주를 이룬다.

날지 못하는 ‘펭귄 아빠’는 자녀를 해외에 유학 시켜놨지만 시간과 돈이 부족해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아빠로 첫 안식년에 어린 자녀를 유학시킨 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젊은 교수들에 많다. 해외유학이나 서울 강남으로 이사할 형편이 못되는 ‘참새 아빠’는 강남에 세를 얻어 가족들을 보내두고 텃새인 참새처럼 가족 주변을 맴돌며 짬짬이 만나는 아빠로 서울에 자녀를 보낸 지방대 교수들 중에 많다.

자녀유학에 관심이 없던 ‘교수 아빠’들도 연구년을 앞두면 ‘유학 협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한 교수는 “안식년이 정해지기 전부터 아내로부터 ‘교수 좋다는 게 뭐냐, 다들 연구년하면서 유학 보내는 데 우리만 왜 안하냐, 3~4년 고생하면 좋은 대학 가지 않겠냐, 당신도 유학했으면서 왜 자식들은 좋은 교육 안 시키느냐’는 소리를 들어 결국 유학을 보내게 됐다”고 털어놨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교수의 큰 걱정은 역시 돈이다. 유학국 물가 문제뿐만 아니라 송금 이외에는 가족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언제나 근심걱정이다. 한 지방대 교수는 “코트 한 벌 사입기 겁난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몇 년 만 헐벗고 굶주리며 견디자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살던 집을 세 주고 그 돈으로 미국에 세를 얻고, 자신은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원룸을 얻어 지내고 있다. 학생들이 보면 오해할까봐 신경이 쓰인다는 이유다.

돈이 없는 건 어려운 일일 뿐이지만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 미국으로 가족을 보낸 한 교수는 “보통 그쪽에서 아침에 전화를 하면 집에서는 잠들기 직전이다. 나야 느긋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등교로 바쁠 때라 매번 인사치레 통화를 하고 끊는다. 유치한 줄 알지만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내는 전화비가 비싸다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통화한다”고 말한다.

‘기러기’가 되면 생활패턴이 변한다. 한 교수는 “가족이 없으니 집에 들어갈 필요를 못 느낀다. 2년 전부터는 새벽까지 연구실에서 일을 하거나 야전침대를 아예 놓고 잔다”고 말한다. 또 같은 건물에 있는 교수가 비슷한 생활패턴을 보이면 “동족의식이 느껴진다”고 한다.

한 공대 교수는 “학과에 다른 ‘기러기’들이 많아 동료교수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학과 일을 함께 의논해 정작 학과회의를 할 필요가 없어지는 일이 생긴다. 점차 세끼 식사를 모두 함께하는가 하면 종종 함께 바에서 칵테일을 즐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 다른 가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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