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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로지르기] 4. 티벳 바람과 달라이 라마
[문화가로지르기] 4. 티벳 바람과 달라이 라마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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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수입된 고부가가치 동양문화상품

티벳의 승려 달라이 라마는 티벳의 실질적 지도자로서 중국에 대한 비폭력 독립운동을 이끄는 공로가 인정되어 89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중국은 59년에 티베트를 점령해 불교집회를 금지하고 마오쩌뚱을 가르쳤다. 79년까지 1백만명 이상의 티벳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됐으며, 최근까지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와 유혈진압이 반복됐다.

중국에 따르면, 티베트 침략은 티벳을 제국주의적 분열주의 세력에서 구해낸 해방전쟁이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는 '국가분열을 꾀하는 범죄자'며,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다. 달라이 라마가 '미국의 앞잡이'라는 우다웨이 중국대사의 주장은 억지지만, 미국이 티벳의 인권문제를 대중 외교의 카드로 활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억압받는 수많은 소수민족 중에 티벳이 유독 서방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여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헐리우드는 티벳과 중국의 선악구도를 세계인의 가슴에 각인했다. '티벳에서의 7년'과 '쿤둔'은 대표적인 反中 영화이고, 리처드 기어는 티벳의 공식적 외교사절이다. 티벳망명정부에 자치구를 떼어줬던 인도에서 댐건설로 수몰지역주민 4천만명이 행방불명된 걸 보면, 티벳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인권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환기된 티벳 여론은 특히 종교를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 초청을 추진한 것은 종교 단체였으며, 따라서 방문 취소는 정치권에 의한 종교의 자율성 침해로 비쳤다.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티벳 바람의 중심 역시 달라이 라마로 대표되는 티벳 불교다. 달라이 라마의 작년 뉴욕강연엔 4만명의 관중이 몰렸다.

이런 열광의 이면에는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고승들이 후계자를 찾아 티벳 각지를 암행하는 전통이나, 죽은 이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게 하려고 시신을 토막내어 새의 먹이로 주는 장례 풍습, 그리고 달라이 라마를 '活佛'로 믿는 티벳인들의 순박함은 이국적인 만큼이나 매혹적이다. 그러나 진지한 종교적 관심도 무시할 순 없다. 종교까지 세속화된 문명사회는 순수한 원초적 신심을 동경하게 마련이다.

이런 불심은 서구지성의 인문적 신념과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60년대 반문화 운동기에 히피의 비판정신은 상당부분 불교적 가치에 의존했고, 수많은 지식인이 서양문화를 비판하며 불교를 비롯한 동양문화에 주목했다. 미국은 티베트 대장경 전산화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다.

서구문명에 대한 환멸은 대중들 사이에 확산됨에 따라, 티벳문화도 세기말적 문화상품으로 떠올랐다. 티벳불교에서 기하학적 도형으로 삼라만상의 우주적 총체성을 표현하는 만다라는, 메니제티가 새롭게 디자인한 버버리 격자무늬를 비롯, 절제의 패션에 영감을 제공했다.

판매되는 티벳의 이미지와 티벳의 실상이 같을 수는 없다. 동양적 초월은 무정부의자의 공허한 명분이라는 진단도 그래서 나온다. 티벳이라는 '세계의 지붕'에는 지금 PC방이 들어섰고, 주식투자와 매춘영업이 시작됐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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