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지구과학을 전공해 36여년이란 세월을 지구과학과 더불어 살아오고 있다.
지구과학은 지구 내외의 환경을 다루는 지구환경과학, 지구의 물질과 변화를 다루는 지질학, 대기와 해양의 성분과 운동 및 환경을 다루는 기상학과 해양학, 시간과 공간 개념 및 천체와 우주를 다루는 천문-우주학으로 구성돼 있다. 나는 이런 지구과학을 전공하면서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제자들을 중등학교 지구과학교사로 배출하는 일과 우주시대의 개막이나 다양한 지구 환경적 위협에 대해 역량 있는 과학기술인과 시민을 양성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며 평생을 교수로서 살아온 보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부터 이런 보람이 점차로 사라져 가고 있으며, 교수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마저 잃어가고 있는 형편으로 답답한 마음과 아쉬움이 크다. 그 이유는 7차 교육과정에서 과학교과를 선택과목으로 만들면서 학생들이 지구과학을 상대적으로 배우지 않게 되자 수능시험에서 지구과학의 선택 비율이 떨어졌으며, 주요대학에서 지구과학을 입시전형에 포함시키지 않거나 면접시험에서 배제해 고교생의 지구과학 과목 기피를 부채질하고 있어서다.
결국 과학과목의 홀대는 학생들의 지구과학 기피로, 대학의 입시전형 배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학생들의 지구과학 기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지구과학에 대한 홀대는 이뿐만이 아니다. 과학의 4개 영역 가운데 유독 지구과학 과목만이 의ㆍ치의학 전문대학원 입학소양시험(MEET, DEET)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의ㆍ치의학 전문대학원 진학을 장래진로로 생각하는 중ㆍ고등학생에게 지구과학을 선택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더불어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등에 지구과학 관련 학과가 없어 지구과학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는 과학고 학생을 비롯한 일반계 고등학생들이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얽혀 있어 지구과학에 대한 교육이 강화돼야 할 때, 오히려 교육현장의 지구과학 교사의 위치는 불안정하고 지구과학 교사 수급이 줄고 있다. 따라서 교사양성 기관인 사범대학의 지구과학교육에 대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장차 우리나라의 지구과학전문 인력의 부족과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과학소양의 부실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현 정부의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위원회내의 교육과정특별위원회에서는 당장 내년도부터 교육현장에 적용할 미래형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다.
위원회가 최종안으로 제시한 미래형 교육과정의 ‘편제 및 단위 배정 예시안’을 보면, 과학관련 내용은 현재 고등학교 1학년에서 기본과목으로 돼 있는 과학을 없애고, 과학의 4개영역(물리1,화학1, 생물1, 지구과학1)을 일반과목으로 해 10단위씩 이수하게 하며, 심화과목으로 물리2, 화학2, 생물2를 편성해 지구과학2를 배제했다.
이러한 졸속적인 미래형 교육과정 개발과 지구과학2를 편제에서 배제하는 것은 저탄소 녹색 성장을 지향하는 정부 정책과 위배되며, 장차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한국지구과학회와 과학교육학회 등 유관학회 그리고 전국지구과학교수연합회에서는 현행 교육과정의 과학과 같은 개념으로 물상과학과 생명지구과학을 기본과목으로 해 각각 5단위씩 배정하고, 일반과목으로 학생의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고 과도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학의 4개영역(물리1, 화학1, 생물1, 지구과학1)에 각각 5단위씩 배정하며, 심화과목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권 보장과 과학 영역별 고른 발달을 위해서도 물리2, 화학2, 생물2 및 지구과학2를 편성해 각각 10단위씩을 배정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또한 21세기에는 이공계 학생 뿐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과학적 소양이 매우 중요함에도 미래형 교육과정의 편제 및 단위에는 인문, 사회, 예체능계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학 교과가 포함돼있지 않다.
이는 국민의 과학적 소양을 낮추어서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고등학교 시절에서의 지구과학 과목은 단순히 시험 몇 점 받고 좋아하는 그런 과목이 아니었다.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면서 무심코 차고다니는 돌맹이들, 새벽이면 어김없이 떠오르고, 저녁에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해와 달 별.. 우리가 정말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또한 이런 관심을 교사가 되어 더욱 많은 학생들에게 알려주고자 지구과학교육과를 선택하여 교사가 되는 길을 걷고있는 중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정말 기본적이고도 알고 있어야 할 학문을 외면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한다면 미래형 고육과정은 수정, 보완은 마땅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