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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책과 텔레비전
[독서수상] 책과 텔레비전
  • 교수신문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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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3:54:02
몇 년 전 밀레니엄을 마감하면서 미국 보어스와 고트리브가 발표한 지난 천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은 의외로 구텐베르크였다. 금속활자를 발명해 책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그의 공로가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다는 게 그 이유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타당한 주장이다. 사고와 느낌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책의 대량 보급은 인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책의 강력한 라이벌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텔레비전일 것이다. 지난 20세기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인 텔레비전은 그 어떤 것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 삶 속을 파고들어 왔다. 개인적인 기억을 돌아 봐도 어린 시절 도시로 이사와 처음 본 이 경이로운 물건은 쉽게 일상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 책을 주요 수단으로 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텔레비전은 여전히 정보와 여가의 중요한 통로의 하나다.
사정이 이런데도 내가 전공하는 사회학에서 텔레비전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아마 그 이유는 텔레비전으로 표상되는 대중문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평가절하에 있을 것이다. 이런 통념에 대항해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텔레비전에 관하여'는 텔레비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감행한다.
이 책의 기본 텍스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한 두 개의 강의다. 첫 번째 강의 '스튜디오와 그 내막'에서는 보이지 않는 검열과 텔레비전 담론의 구조를 파헤치고, 두 번째 강의 '보이지 않는 구조와 그 효과'에서는 텔레비전이 예술·문학·철학·정치 및 과학 등 사회의 다른 영역에 미치는 위력을 분석한다. 그리고 부록 '저널리즘의 영향력'에서는 저널리즘의 장(field)이 갖는 특징을 주목한다. 부르디외가 우려하는 것은 텔레비전이 시청률이란 상업논리에 침윤되어 저널리즘이 당연히 가져야 할 민주적 자율성을 상실하게 되는 점이다.
이런 부르디외의 분석은 우리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텔레비전은 공론 형성의 한 공간으로 각종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회의식과 여론 형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특히 젊은 영상 세대의 경우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담론은 의식적, 무의식적 코드를 구성한다.
영국의 록그룹 토킹 헤드가 부른 노래 중에 '텔레비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텔레비전 맨'이란 곡이 있다.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사람들은 일보다 텔레비전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고르의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화사회로의 이행은 먼 남의 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신문방송학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텔레비전에 대한 성찰을 다룬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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