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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사회 지각변동 예고… IT·BT분야 ‘모시기’ 경쟁
교수사회 지각변동 예고… IT·BT분야 ‘모시기’ 경쟁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2.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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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8 17:47:00
성급한 해석일수도 있지만 올해 상반기 교수임용 경향은 교수사회에서도 조금씩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각변동이란 교수들의 재직관행의 변화를 뜻한다. 한번 임용되면 한 대학에서 정년보장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던 풍토가 조금씩 무너지고, 여건이 닿으면 언제라도 대학을 옮기겠다는 인식이 교수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상반기 서울지역 주요 대학들의 교수임용은 분명 예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신진학자를 채용하기보다 타 대학 교수를 영입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번 학기에 한양대는 총 36명의 교수를 새롭게 뽑았다. 그런데 이 중 16명이 경력교수들이다. 이철진(군산대)·안동근(순천향대)·이경렬(동아대)·좌용호(전북대)·한상린(충남대)·이경원(청운대) 교수 등 6명은 지방 소재 대학에서, 한동수(인하대)·제무성(한성대)·김성연(가톨릭대)·계명찬(경기대) 교수 등 3명은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이욱(호주 퀸슬랜드대)·이상욱(런던대)·전상경(뉴욕주립대) 등 3명은 해외대학에서 자리를 옮겼다.

지방교수 서울 이동 급증

지난해부터 교수 공개스카웃을 선언한 연세대도 74명을 임용하면서 3분의 1이 넘는 24명을 경력교수로 선발했다. 의대를 제외하면 이번 학기에 연세대에서 강사나 박사학위자가 임용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총 41명을 선발한(의대 제외) 성균관대도 마찬가지. 지방 소재 대학에서 9명, 수도권 소재 대학에서 8명, 해외대학에서 4명을 영입했다. 대체로 고려대, 중앙대, 경희대, 동국대, 이화여대, 건국대, 서강대 등 서울지역 대학이 이번 학기에 뽑은 신임교수 중 경력교수의 비율은 3분의 1에 달한다.

상반기 교수들의 대학이동의 주요한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우선 지방 소재 대학 교수들의 서울소재 대학으로의 진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지역 10개 대학에만 지방에서 30~40명의 교수가 자리를 옮겨왔다. 두 번째는 수도권 지역 대학간에도 교수들의 수평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대학간의 교수이동은 드문 현상이었지만, 올 들어서는 공공연한 일이 되고 있다. 서윤석 교수(아주대)는 이화여대로, 김성희 (동덕여대)·홍준현(세종대) 교수는 중앙대로, 윤석준(단국대)·박종대(가천의대) 교수는 고려대로, 오준환(홍익대)·박수경(동국대)교수는 건국대로 소속을 바꿨다. 세번째는 해외에서 재직중인 교수들의 국내대학 진입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교수들의 대학이동이 갑자기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섣부른 판단은 내리긴 이르지만 계약임용제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적지 않은 대학들이 계약임용제가 제도화되기 전부터 신규채용에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 지방대에서 전임강사로 활동하다가, 조교수·부교수 직급으로 수도권 대학에 자리를 잡는 교수비율이 부쩍 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각종 국책연구지원사업도 교수들의 대학이동을 부추기는 주요요인으로 보인다. 두뇌한국(BK)21사업, 과학기술부 21세기 프론티어연구사업, 기초학문육성지원사업, IT·BT·NT 등 전략분야 연구사업 등 각종 국책프로젝트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대학들이 이와 관련된 분야의 경력교수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 국책 연구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경험과, 실적을 갖춘 교수들을 앞세우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동아시아지역학 연구로 BK21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성균관대는 동아시아 학술원 교수로 미야지마 히로시 전 일본 경도대 교수를 초빙했고, 생명공학부에는 문정환 전 미국 로와대 교수를 영입했다. 연세대도 나노화학 분야에 천진우 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정보산업공학 분야에 김창욱 전 명지대 교수를 영입했다.

대형 국책프로젝트 대학이동 부추겨

그러나 아직까지 교수의 대학이동은 특정 학문분야에 한정되고 있다. 호황을 누리고 있는 첨단학문분야와 경영학 등 실용학문 분야에서는 활발하지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분야에서는 드물다. 특히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IT·BT·NT관련 분야에서는 대학간 교수 모시기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현직 교수를 영입하는 움직임이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 교수 모시기 경쟁이 가열되자 동국대는 교수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논문을 한편 발표하면 1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도 구상중이다.

교수들의 대학이동을 보는 시각은 긍정적·부정적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성균관대의 한 관계자는 “교수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그만큼 교수시장이 유연화되고 있는 증거”라면서 “우수교수를 발굴하고, 교수 자신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더 확대돼야 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우수 교수들을 빼앗긴 대학에서는 적지않은 우려와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윤덕홍 대구대 총장은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교수들이 두 세명씩 자리를 옮긴다”면서 “학생모집난에, 졸업생 취업난, 궁핍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방대학들이 이제 교수들의 이동난까지 걱정해야 할 형편”이라고 밝혔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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