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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교과부 기댈 곳 없어” 극단적 선택 … “학교 살려달라” 눈물의 遺書 동료에게 남겼다
“검찰·교과부 기댈 곳 없어” 극단적 선택 … “학교 살려달라” 눈물의 遺書 동료에게 남겼다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9.08.31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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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비음모 혐의로 기소된 성 교수, 왜 권총 훔치려했나

8월 11일 오전 11시 경주 보문단지 권총실탄사격장에 성모씨(48)가 들어왔다. 오전시간이라 관광객이 없는 시간대였다. 성씨는 몇 차례 방문으로 안면이 있는 사격장 주인 박모씨의  등 뒤에서 전기충격기를 들이댔다. 전기 충격을 느낀 박모씨는 강하게 저항했다. 성모씨는 “죽게 내버려 달라”고 소리쳤다. 몸싸움를 벌이다 오히려 성씨는 박모씨에게 제압당했다. 그는 실탄과 3.8구경 1정을 훔치려고 했다. 그의 가방에서 전자충격기와 수갑 등이 나왔다.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사건 현장 답사도 몇 차례 한 뒤였다. 성씨는 강도예비, 강도상해, 살인예비음모 혐의로 기소됐다.

□ 일러스트 : 이재열

경주대로부터 지난 7일 해임 통보받아

권총탈취를 시도한 성씨는 지난 7월에 경주대에서 해임된 전직 교수였다. 그는 왜 권총을 훔치려고 했을까. 만약 범행이 성공했다면 권총으로 누굴 겨눴을까. 지난 19일 “전직 대학교수가 대학총장 살해를 목적으로 권총을 탈취하려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는 해임에 앙심을 품고  제 2의 석궁테러를 준비했던 것일까.

성 교수는 지난달 7일 대학 측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8년 경주대에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10년 넘게 몸담아 왔던 직장이었다. 그로선  징계사유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교수협의회 활동으로 대학과 재단의 명예를 훼손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 주요 징계 사유였다. 여기에 대학 측으로부터 업무방해와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까지 당했다.

성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해임을 취소해 달라는 소를 제기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해임 취소결정이 나오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 측이 해임 취소된 교수들을 대상으로  재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움직임을 보면 성씨가 다시 강단에 설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성 교수 이전에도 비슷한 사유로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가 대학에서 줄줄이 쫓겨났다. 비애감과 좌절감이 깊어졌다. 교수협의회는 대학의 비리를 조사해달라며 교육과학기술부,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고 검찰에는 진정을 제기했다. 

대학 교비횡령, 전횡 문제제기에  앞장

대학측과 교수들 간 갈등은 올해 3월 경주대 설립자 김일윤 씨의 부인인 이순자 총장이 총장직무대행으로 오면서부터 더 깊어졌다. 교수협의회는 지난 1학기 동안 교문 앞에서 이 순자 총장의 퇴진을 주장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2006년 불거진 교비횡령 의혹은 교직원이 처벌받는 선에서 마무리 됐지만 교수협의회는 꼬리자르기식 수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수협의회는 추가적인 교비횡령 의혹과 이순자 총장 복귀로 인한 족벌경영 등의 문제제기를 계속 해오고 있었다. 성 교수는 교수협의회 내에서도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교수 중 한 명이었다. 

동료 A교수가 집 앞 우편함에서 성 교수의 유서를 발견한 것은 지난 13일이었다. A4크기의 한 장짜리 유서는 “형 교협 관련 문서들 교협사무실에 갖다놨어”로 시작했다.

“그동안 고마웠고 학교 뒤처리 잘 부탁해요. 학교 살려 주기바래요. 형한테 모든 짐을 지우고 가서 미안해. … 화장해서  학교 본관 뒷산에 뿌려주면 좋겠어요. 형 정말 미안해요.” 유서에는 가족과 자녀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심경도 적혀있었다. 성 교수의 전 부인 앞으로 남긴 유서도 발견됐다. 

권총탈취 시도, 발견된 유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동료교수들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성실하고 온순한 성격의 그가 저지른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성 교수의 개인적인 사정을 잘 아는 교수들은 “진짜 죽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수는 “오랜 내홍을 겪어온 경주대가 낳은 비극”이라고 했다.

우울증 가정사 까지 겹쳐 

동료교수들은 성 교수가 5년 전 이혼 한 뒤 홀로 살면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귀띔했다. A교수는 그가 죽고 싶다고 말하면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를 생각해서 살아야한다”고 위로했었다.

최근에는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도 그는 “우울증이 너무 심하다”고 동료 A교수에게 토로했다. 우울증을 겪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은 처음이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A교수는 “병원 진료를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조언을 듣지 않았다. 이미 그 때 성 교수는  결심을 굳힌 뒤였다. 

기자는 지난 26일 경주교도소 접견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면회시간 10분 동안 짤막한 대화가 오갔다. 그의 목소리가 유리 칸막이를 넘어 마이크를 통해 들려왔다. 2주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이라고 보기엔 안정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기자 “언론에서는 총장을 사행할 목적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범행 이유는 무엇이었나”

성 교수 “이순자 행태가 참기 힘들었다. 7월 초쯤에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때문에 만난 검사가 교수사회를 진흙탕 운운하는 것을 보고 대학과 재단을 비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도적으로 학교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힘들 것 같았다. 검찰 조사도 교과부 감사도 기대할 수 없었다.”

기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면 권총까지 탈취할 것은 없지 않았나?”

성 교수 “겁이 많아서…. 그런 방법도 생각해 봤다.”

기자 “밖에서 여러분 들이 도와주고 있는 것 같은데 나와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성 교수 “집행유예로 나가면 학교로 돌아가긴 힘들다. 하지만 만약에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면 복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무죄로 나가면 복직하고 싶다”

그는 현재 강도예비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공소제기 된 상태다. 담당 검사는 “전과가 전혀 없고 피해자와 합의가 잘되면  집행유예 가능성도 있지만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집행유예로 나오더라도 유죄가 인정되면 앞으로 학교로 돌아오기 힘들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권총을 빼앗아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제 무죄로 풀려날 수 있다면 다시 강단에 서고 싶다고 했다. 연구실에서, 강단에서 다시 그를 볼 수 있을까. 캠퍼스는 개강을 맞았지만 성 교수의 연구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경주=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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