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8:50 (금)
[인터뷰] ‘분단체제론’ 제기한 백낙청 서울대 교수(영문학)
[인터뷰] ‘분단체제론’ 제기한 백낙청 서울대 교수(영문학)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3.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분단 현실에 맞서”
백낙청 교수가 최근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창비 웹메거진’에 실린 ‘밝아올 세상, 밝아진 한반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세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00년의 6·15 공동선언과 그에 따른 화해조치들이 없었다면 북한은 아프가니스탄에 버금가는 ‘테러지원국’으로 지목됐을 것이다. 또한 6·15에 앞선 국내의 민주화과정이 아니었다면 남한정권 자체가 한반도의 긴장을 소망하기 십상이었을 터이며, 전투부대 해외파견에 대한 미국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뿌리칠 의지나 실력이 훨씬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반도는 전쟁지역보다 안전하고 극빈국보다 넉넉한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미국보다도 밝고 희망찬 지역이 될 것이다”라고 단언하기도 하는 백 교수를 서면 인터뷰했다.

△분단체제론을 구상하게 된 동기와 배경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대략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70년대 이래의 민족문학운동과 민족문학론을 특징짓는 종요로운 요인은 분단현실에 대한 관심입니다. 분단체제론은 크게 볼 때 이러한 운동과 논의가 진전되는 과정이 낳은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80년대의 진보적 사회과학계와 급진운동권에서 한국이라는 ‘사회구성체’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여러 갈래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어느 담론도 민족문학 작업의 실감에 딱 들어맞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좀더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보되 어디까지나 實事求是-’리얼리즘’이란 말도 있지만 ‘實事求是’로 하겠습니다. 총체적 시각과 실사구시의 정신을 겸한 것이 우리 문학에서 논의된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의 정신으로 보려는 이론적 모색의 계기가 되었지요. 마지막으로 처음에는 전문 사회과학도가 아닌 제가 문제제기나 하면 뜻 있는 사회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주려니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분단체제의 극복은 기존 사회과학의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도 겸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차츰 굳어지면서 계속 이 문제에 집착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손호철, 이수훈 교수 등을 비롯한 몇몇 분이 분단체제론에 대해 비판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까. 흔히들 분단체제론이 세계체제론의 문제틀을 수용해 그 하위 영역인 한반도 혹은 한반도 주변에 국한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세계체제론의 문제틀을 수용한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세계체제론을 수용한다면서도 시야가 한반도(주변)에 국한돼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딱히 이런 내용의 비판을 받은 기억은 없고, 몇몇 사회과학자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언제나 고마운 마음으로 진지한 답변과 반비판을 시도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분들이 지금도 원래의 비판을 견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앞으로 어떤 반론이 또 나오든 타당한 지적은 기꺼이 수용하면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성의껏 답할 작정입니다. 세계체제론과 관련해서는, 첫째 분단체제론은 민족문학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세계체제론 중에 필요한 대목을 원용한 것이므로 그 부분 이외의 온갖 쟁점에 대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보며, 둘째로 두 개의 분단국가와 주변 열강까지 연루된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해명하는 데 분단체제론이 기여하는 바 있다면 세계체제분석의 관점에서도 새로운 진전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식인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장 큰 문제점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단체제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분단현실을 빼버린 담론을 천연스럽게 전개하곤 하는 지식인 사회의 풍조도 하나의 문제이겠지요.”

△선생님의 이론적 작업으로서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등이 떠올려집니다. 앞으로 관심을 기울여보고 싶은 분야나 개척해야 할 영역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열거하신 담론들 외에도 리얼리즘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 서양문학의 주체적 읽기 등 자식으로 치면 제대로 발육이 안된 아이들을 여럿 늘어놓았습니다. 기왕에 낳은 자식이나마 잘 길러야 될 터인데, 가족계획이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군요.”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