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체제론을 구상하게 된 동기와 배경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대략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70년대 이래의 민족문학운동과 민족문학론을 특징짓는 종요로운 요인은 분단현실에 대한 관심입니다. 분단체제론은 크게 볼 때 이러한 운동과 논의가 진전되는 과정이 낳은 산물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80년대의 진보적 사회과학계와 급진운동권에서 한국이라는 ‘사회구성체’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여러 갈래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어느 담론도 민족문학 작업의 실감에 딱 들어맞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좀더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보되 어디까지나 實事求是-’리얼리즘’이란 말도 있지만 ‘實事求是’로 하겠습니다. 총체적 시각과 실사구시의 정신을 겸한 것이 우리 문학에서 논의된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의 정신으로 보려는 이론적 모색의 계기가 되었지요. 마지막으로 처음에는 전문 사회과학도가 아닌 제가 문제제기나 하면 뜻 있는 사회과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다뤄주려니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분단체제의 극복은 기존 사회과학의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도 겸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차츰 굳어지면서 계속 이 문제에 집착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손호철, 이수훈 교수 등을 비롯한 몇몇 분이 분단체제론에 대해 비판 작업을 하지 않았습니까. 흔히들 분단체제론이 세계체제론의 문제틀을 수용해 그 하위 영역인 한반도 혹은 한반도 주변에 국한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세계체제론의 문제틀을 수용한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세계체제론을 수용한다면서도 시야가 한반도(주변)에 국한돼 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딱히 이런 내용의 비판을 받은 기억은 없고, 몇몇 사회과학자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언제나 고마운 마음으로 진지한 답변과 반비판을 시도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분들이 지금도 원래의 비판을 견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앞으로 어떤 반론이 또 나오든 타당한 지적은 기꺼이 수용하면서, 체력이 허락하는 한 성의껏 답할 작정입니다. 세계체제론과 관련해서는, 첫째 분단체제론은 민족문학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세계체제론 중에 필요한 대목을 원용한 것이므로 그 부분 이외의 온갖 쟁점에 대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보며, 둘째로 두 개의 분단국가와 주변 열강까지 연루된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해명하는 데 분단체제론이 기여하는 바 있다면 세계체제분석의 관점에서도 새로운 진전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식인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장 큰 문제점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단체제에 길들여졌기 때문인지, 분단현실을 빼버린 담론을 천연스럽게 전개하곤 하는 지식인 사회의 풍조도 하나의 문제이겠지요.”
△선생님의 이론적 작업으로서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등이 떠올려집니다. 앞으로 관심을 기울여보고 싶은 분야나 개척해야 할 영역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열거하신 담론들 외에도 리얼리즘론,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 서양문학의 주체적 읽기 등 자식으로 치면 제대로 발육이 안된 아이들을 여럿 늘어놓았습니다. 기왕에 낳은 자식이나마 잘 길러야 될 터인데, 가족계획이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군요.”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