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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신국제주의와 ‘꺼삐딴 리’
[대학정론] 신국제주의와 ‘꺼삐딴 리’
  •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 승인 2009.12.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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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세계의 건축문화는 국제주의에 휘둘렸다. 1932년 헨리러셀 히치콕이 정리한 이 문화현상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세계의 꽃밭에서 만발한다.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평화세계를 재건하려는 분위기이다. 국제연합도 만들어지고, 나라간의 화해도 진행되지만, 무엇보다 피멍 든 서구 사회를 쓰다듬을 새로운 문화 이념이 필요했다. 건축에서 국제주의는 동심원의 가치관이다. 어떤 至高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지역적 가치를 포섭할 것이기에, 세계의 건축이 모두 이 스타일을 공유한다는 주장이다. 지역이라는 작은 원은 세계라는 큰 원에 내포된다. 말하자면 세계건축들이 각기의 나라말을 버리고 에스페란토가 지배하는 것과 같다.

이 주장은 큰 반향을 일으켜 한때 세계 여러 나라가 국제주의 스타일에 몰두했다. 뉴욕의 유엔본부도 국제주의 스타일이고, 우리나라 서울의 삼일빌딩도 국제주의이다. 유엔빌딩은 세계 평화의 상징이고, 삼일빌딩은 재건의 희망이다. 아프리카도 국제주의를 하고, 중동에서도 국제주의를 하고, 스칸디나비아에서도 했다. 그러나 건축의 에스페란토는 곧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들에 반발되고 1960년경 自盡하고 말았다. 그리고 20세기를 지배하는 생각이 지역주의이다.

요즈음 학교가 ‘국제화’하라고 성화이다. 중등고육에서도 외국어고등학교가 제일이고 국제학교가 최고다. 영어를 대학교육의 궁극으로 삼는지, 영어 못하면 졸업 시키지 않겠다는 대학도 나왔다. 대학평가에서 국제화 지표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지고, 신문사의 대학 평가에서도 비중이 그중 높으니 학생, 교수, 교과목, 프로그램, 강의가 모두 휘둘린다. 그러나 그렇게 영어 기반으로 대학의 판을 짜야 함에 즐거운 대학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상식으로 하던 국제주의라면 그런 게 아니다. ‘國際’란 국가 간의 관계구도이기에 지역적 가치의 존중과 그 교차가 중요하다. 우리가 캄보디아와 더 친숙해지고, 러시아 문화와 더 잘 소통하고, 프랑스의 인상주의나 독일의 표현주의와 친숙해지는 것을 국제주의 또는 국제화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즈음 국제화는 영어판 한국 대학이다. 영어 강의, 외국 교수라 하지만 사실은 영미 교습 수입하기이고, 국제적 프로그램이라 하지만 변방과 미국의 구분을 공고히 하기이다. 

요즈음 21세기 건축도 새로운 국제화의 국면에 있다. 건축의 신국제주의는 두 가지 환경에 따른다. 우선 우리가 현재 구사하는 재료가 대부분 국제 재료이다. 콘크리트와 유리와 철강은 국제적으로 규격화된 재료인데, 사실은 세계의 문화를 한데 섞는 희석재이다. 요즈음 건축설계는 모두 AutoCad를 비롯한 미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설계한다. 자연히 구사되는 언어가 미제 언어이다. 여기에서 언어란 기술용어만이 아니라, 설계도를 만드는 원단위들을 프로그램 소스에 의존하는 언어체계이이다. 그러니 어떤 문장을 쓰는데 CAD의 사전에서 추출한 단어들만을 인용해 구문을 하는 것과 같다. 자연히 건축은 기계적으로 되고, 미국적 시스템을 닮고, 공통화 된다. 아무리 초기구상에서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을 풍부히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과하면서 국제규격으로 희석되는 성질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저러나 고속통신의 그물망은 건축가들의 생각을 동시성으로 섞어 댄다. 이 신국제주의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기에 ‘무의식적 국제화’라고 하겠다.

결코 국제주의의 상대편에 국수주의를 두지 않고, 스스로 자폐에 빠지자는 것은 아니다. 국제화의 종국에 우리는 한때 서양적이기를 애타하던 문화, 中體西用, 華魂洋裁, 東道西器가 아직도 유효함에 쑥스러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세계문화가 그냥 다 희석 돼버려 그게 그거인 무덤덤한 문화를 공유하며 서구와 우리가 서로 계면쩍어 할 지 모른다.
일본어 교육을 벗어난지 60년만에 영어 교육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꺼삐딴 리』가 생각난다.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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