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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의 방법론적 성찰 보여주는 딜타이 精髓
해석학의 방법론적 성찰 보여주는 딜타이 精髓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12.07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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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빌헬름 딜타이,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김창래 옮김, 아카넷, 2009)

딜타이 연구의 기본이자 精髓로 꼽히는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대우고전총서 24권)이 번역, 출간됐다. 딜타이가 초기 심리학주의 경향에서 벗어나 체험-표현-이해의 정립적 구조에 입각한 해석학적 정신과학론의 경향을 보이는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은 딜타이의 전집 제7권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 가운데 제1부 「정신과학의 정초를 위한 연구」와 제2부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 제3부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의 계승 계획」을 번역하고, 제4부 부록은 번역에서 제외한 구성이다. ‘완역’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딜타이의 해석학과 정신과학의 방법론적 성찰을 엿볼 수 있는 핵심적 부분이 모두 포함돼 있어, 딜타이의 정수를 경험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번역은 해석학을 전공한 김창래 고려대 교수(철학과)가 맡았다. 

 
딜타이는 원래 『정신과학입문(Einleitung in die Geisteswissenschaften)』을 완성한 후 정신과학에 관한 본격적인 인식론적 정초를 계획하고, 이를 위해 이 책의 2부에 해당하는 『역사이성비판(Kritik der historischen Vernunft)』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과 준비는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역사이성비판』을 위해 그가 집필한 여러 저술들을 묶어 그의 사후에 출간된 것이 바로 이 전집 제7권이다.


딜타이의 20권이 넘는 방대한 전집 중에서도 7권은 가장 중요한 문헌의 하나다. 딜타이가 자연과학적 인식의 방법으로서의 설명(Erklarung)에 대비해 정신과학적 인식의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한 이해(Verstehen)의 논리적 구조가 명백하게 기술돼 있으며, 또한 그가 이해의 가능 근거로 제시한 이른바 객관정신, 인간 정신의 공통성의 테제가 명료한 형태로 분석돼 있다. 즉, 이 책에는 딜타이의 평생 과제, 계획만 했던 미완의 대작 『역사이성비판』에서 완결을 꾀하고자 했던 정신과학의 인식론적 정초작업이 충분히 파악 가능한 정도로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독일 해석학계에서 꼼꼼히 읽혀왔고, 모든 딜타이 연구에서 기본 텍스트이자 필수 텍스트로 여겨져왔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어떻게 학으로서의 순수수학과 순수자연과학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답함으로써 자연과학에 인식론적 토대를 제공했듯, 딜타이의 이 책은 “어떻게 학으로서의 정신과학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답함으로써, 정신과학에 그 인식론적 기초를 제공하려는 시도를 한 유일한 문헌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창래 교수는 이 책의 ‘옮긴이 해제’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언급을 덧붙였다. 그것은 딜타이 수용의 문제이기도 한데, 김 교수가 ‘번역’이란 방식을 통해 해석학의 두 大家, 리케르트와 가다머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최소한 나는 딜타이의 삶의 철학에는 이른바 개념적 사유가 없다는 리케르트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삶의 범주’에 대한 딜타이의 논의를, 그리고 딜타이가 인식의 객관성을 위해 역사적 상대성을 포기했다는 가다머의 주장과 관련해서는 ‘이해의 한계’에 대한 딜타이의 논의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 교수는 독자들이 리케르트나 가다머를 통하지 않고 직접 ‘딜타이를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대가는 “딜타이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지나치게 빨리 어느 한쪽으로 그런 한에서 딜타이의 복잡한 문제를 다소 단순화시킨 면이 있다.” 과연 딜타이가 이들 말처럼 ‘삶을 포기했고’(가다머), ‘과학을 포기했다’(리케르트)라고 볼 수 있을까. 혹 그는 자신을 에워싼 갈등을 절묘하게 해결하려 한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에 김 교수의 문제의식이 녹아들어 있다.


또 하나 덧붙여야 할 대목은 번역자가 던진 질문이다. ‘딜타이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위상학과 관련, 그가 제시한 ‘철학적 사유의 공간’은 이 어렵고 두꺼운 책에 다가가는 등대와도 같은 불빛이 될 수 있다. 딜타이에 관해 이래저래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다양한 해석 가운데 던져진 것(추정된 것), 즉 “여전히 하나의 상이지 실체는 아니다.” 가능한 전체상은 이 ‘철학적 사유의 공간’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경험된다. 어쩌면 이 언술은 모든 번역자들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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