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6:40 (금)
[해외] 미국에서 한국 민중신학을 보는 시각
[해외] 미국에서 한국 민중신학을 보는 시각
  • 최미화 / 미국 통신원
  • 승인 2002.04.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세대 논의 잘 알려져…이론 경시 오해 걷어내야

민중신학은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실천적 차원에서 많은 제3세계 신학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미국에서 민중신학이 (신)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한편 월드캣 데이터베이스에 올라 있는 민중신학에 관한 영문 학위논문은 약 80여 종에 이르며 이 논문의 저자는 대부분 한국인들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학계가 한국 학생들로부터 민중신학의 목소리를 몹시 듣고 싶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문들이 단행본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국 민중신학을 소개하는 단행본으로는 제1세대 신학자들의 논문집인 ‘민중과 한국신학’이 1981년에 출판됐고, 단독 저자의 작품으로는 문희석의 ‘민중신학:구약의 관점’이 나왔다. 이후 박 앤드류의 ‘상처받은 신의 가슴’이 출판돼 현재 민중신학 개설서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정현경 유니언신학대 교수의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가 여성신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제1세대의 민중신학적 ‘관점’이 소개됐을 뿐, 그 뒤 민중신학이 어떻게 진행됐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내 민중신학의 세대 전이와 더불어 미국 내 학계 동향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민중신학이 본격적으로 부상하던 1980년대에, 한국의 제1세대 민중신학자들은 기독교 공통의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해석함으로써 대외적인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 또한 당시 미국에서도 다원적 신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반면 민중신학의 제2세대들은 ‘민중’을 사회과학적 맥락에서 이해하느라 한국적 사회·경제 상황에 대한 분석에 치중하게 됐고,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한국적 담론의 성격을 많이 띠면서 세계적 담론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등한시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제도권 대학 내에서 여성·소수민족·동성연애자 등 소수 비주류인에 관한 연구가 확장돼 사회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현재 이 분야의 연구는 인문·사회학계에서 최첨단을 걷는 이론으로 자리잡아가면서, 새로운 인식론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1세대 민중신학의 총괄적 선언을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호소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반면 해방신학의 많은 저술들은 이들의 문제 분석에 영감을 불어 넣어준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를 굳히고, 신학·해석학·윤리학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입장이 됐다.

정현경 교수의 눈부신 성공은 바로 이런 미국 담론의 초창기에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그녀는 제3세계 여성으로서 자신이 살아온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과감히 폭로한다. 이 폭로는 흔히 예상하듯 사회과학적 인식의 틀에서 나오는 고발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많은 모순이 유교가 덮어씌운 가부장적 체제에 있다는 본질론(essentialism)적인 표명에 가깝다. 정현경 교수는 서구 종교인 기독교가 자신을 해방된 여인으로 만들었다는, 서구인의 견지에서는 일견 통쾌한 증언을 하면서, 나아가 한국인들의 의식의 심층과 역사 주변에 깔려있는 원초적 영성을 기독교 안에서 재발굴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타문화의 원초적 영성을 미화하는 한편, 사악한 비서구 사회 문화에 대한 구원자로서 서구의 가치를 강조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담론 안에서 성립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현재 미국에서는 제3세계 혹은 비기독교 사회 문화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이들의 주체적 결정권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민중신학의 핵심은 이러한 조류와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민중의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함께 보려는 제2, 3세대의 논의 역시 후기 식민지 이론에 기여할 잠재성이 아주 크다.

민중신학의 처지에서는 실천 중심, 지역 중심, 한국적 인식의 틀이라는 기치가 이론의 경시, 한국신학의 고립화로 곡해되는 것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민중신학이 자신들과는 다른 개념적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해외의 여타 이론들과 대화하면서 세계의 흐름에 지속적으로 동참해 나간다면, 민중신학이 원래 의도하는 사회 구원의 전망을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미화 / 미국 통신원·시카고대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