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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문 축소, 실용학문 확대 … “취업기관 전락” 우려
기초학문 축소, 실용학문 확대 … “취업기관 전락” 우려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03.29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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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과 구조조정 갈등

지난 26일 중앙대 본관 앞. 독어독문학·불어불문학·일어일문학과 학생들이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농성장 주변에는 ‘기만적인 학부제, 철회하라’ 등이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불문과 농성장에는 학생 5~6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학과가 없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올해 입학한 신입생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이들 3개 학과 교수와 학생이 꾸린 ‘학부제 저지를 위한 독문·불문·일문학과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지난 12일부터 학부제 철회를 주장하면서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을 시작하면서 △3개 학과 학부제 전환 철회 △3개 학과의 학과제 유지 등을 대학 측에 요구하고 있다.

독문·불문·일문학과 학생들이 중앙대 본관앞에서 지난 12일부터 철야 농성을 하고 있다. 대학 본관과 농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학생들이 세워 놓은 '불통의 벽'이다.                                            사진= 박수선 기자


중앙대는 지난해 말 10개 단과대학 40개 학과 및 55개 모집단위로 현행 학과 단위를 바꾸겠다는 학과 구조조정 초안을 발표했다.‘대외 경쟁력 있는 학과 육성’,’유사· 중복 학과 통합’, ‘국제사회가 선호 하는 인재 양성’등이 목표였다. 하지만 학내에선 여기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 등은 구조조정 추진 과정과 근거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다.

중앙대는 현행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부)에서 10개 단과대학 46개 학과, 61개 모집단위로 줄이는 학문단위 재조정 수정안을 지난 23일 확정했다.  중앙대 관계자는 “초안을 발표한 이후 구성원들과 계열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각 단과대학의 의견을 검토한 끝에 나온 안”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기초학문에 집중됐다. 어문계열에서는 국문과와 영문과만 그대로 남았다. 독문과와 불문과는 신설되는 유럽문화학부에 통합된다. 일문과는 아시아문화학부의 세부 전공으로 축소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는 “독문과와 일문과는 졸업생 취업률, 연구비 수주액 등이 뛰어나 학과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은 학과”라면서 “(이번 구조조정은) 실용성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대학을 취업기관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교협 중앙대 분회 소속 교수들도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대학의 발전은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을 양 날개로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어느 한 쪽이 불구가 된 상태에서 세계 100대 명문대 진입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대위는 대학 측을 상대로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다. 공대위 관계자는 “가장 큰 피해는 3개 과에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이라면서 “신입생 학부모들이 대학 측을 상대로 이번 구조조정이 교육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내 구성원들은 구조조정 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있다. 이번엔 인문계열이 대상이 됐지만 다른 학과도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사범대는 오는 5월 사범대 평가 이후로, 예술계열은 캠퍼스 재배치에 맞춰 학과를 조정하기로 시기를 미뤘다. 오는 7월 모집 정원 조정과 학과 캠퍼스 재배치를 앞둔 중앙대 구조조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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