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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수업 내몰리지만 최선을 다한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
“영혼 없는 수업 내몰리지만 최선을 다한 선생으로 기억되고 싶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05.31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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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문학 박사가 본 시간강사 현실

“시간강사도 교원이다.” 2007년 9월 7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국회 앞에 천막을 쳤다.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투쟁 방법에 대한 차이로 사람들이 하나둘 천막을 떠난 뒤에도 김동애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장은 홀로 천막을 지키고 있다. 오는 6월 2일, 1천일을 맞는다. 두 명의 평범한 인문학 박사를 만났다. 그들과 주변 이야기를 통해 한국에서 시간강사로 산다는 의미를 되짚어 봤다. 1천일을 앞둔 지난 25일 조선대 강사인 서아무개 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나 더 곡소리를 들어야 정부는 움직일까.      

                               

“오랫동안 강사생활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대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방 국립대 시간강사인 박아무개 박사(43세)는 인터뷰 요청에 걱정부터 했다. 10년 가까운 강사 생활, 한 주에 12시간 넘는 강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시간강사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이번 학기에 3학점짜리 과목 3개를 맡았다. 대학 3군데를 뛴다. 한 군데는 지방이다. 기름값이라도 아끼려고 동료 강사와 카풀을 한다. 강의료 12만원 받아 기름값, 밥값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건 10만원이 안 된다.


3시간짜리 강의를 75분씩 나눠 수업하는 대학이 늘었다. 수업 준비 등을 감안하면 한 과목을 맡아도 두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동거리가 멀면 하루에 두 과목을 맡기는 게 ‘에티켓’이다. 박 박사는 한 과목을 맡는 대신 3시간을 연속해서 강의한다. ‘아는 분’이 배려해 준 덕분이다. 2시간 수업에 부산-대구를 왕복하는 강사도 있다. 경제적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가야 한다. “강의를 계속 이어서 하지 않으면 다음에 못 받는다.” 박 박사는 “운이 좋은 편”이다.

2시간 수업에 ‘부산-대구’ 왕복 … “그래도 가야죠”


치사하고 짜증나는 것도 물론 있다. ㄷ대학은 올해부터 계약기간을 3개월로 바꿨다. 3월 초부터 6월 초까지다. 지난해에는 6개월 단위로 계약했다. 비정규직법 탓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는 적용대상이 아닌데도 6개월로 하면 정규직으로 인정해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받는 돈은 차이가 없지만 교수 임용에 지원할 때 경력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시간강사 등)와 정규직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일을 한다. 연구와 학생 지도에도 참여한다. 하지만 그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정규직 교수는 교수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가 아니라 자기완결적인 직업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사진=이광수 부산외대 교수


시간강사라고 수업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는 지방 국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3년 정도 강사생활을 했다. 뒤늦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8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2009년 1학기부터 모교에서 다시 강사생활을 시작했다. 학부생도, 대학원생도 후배다. 수업 외적인 부분도 챙겨야 한다. 석사과정 학생은 논문 쓰는 첫 단계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열 몇 번을 만나 읽어주기도 한다. 당연히, 시간강사 강의료에는 ‘대학원생을 포함한 학생 지도’는 반영돼 있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학자로서 일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강의? “돈 벌러 간다고 생각하자”


모교 강의는 주로 전공과목을 맡는다. 다른 대학 강의는 교양과목이 많다. 박 박사도 다음 학기에 세계화·비교문화론 수업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처음부터 새로 준비해야 한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전공과 간접적으로 연결돼 내 공부도 되기 때문에 맡으려 하는데 힘이 많이 들 것 같다.” 그래도 전혀 다른 교양과목을 맡는 주변 강사들에 비해 나은 편이다.


미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박 박사가 보기에 한국 대학의 기형적 현상이 하나 있다. 가장 많은 교양과목 중 하나가 글쓰기라는 점이다. 철학, 문학 전공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자기 전공에 맞는 내용을 가져가 읽히고 고민하고 글 쓰게 하는 게 아니라 교재도 내용도 정해져 있다. 기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강의하러 간다고 하지 말고 돈 벌러 간다고 생각하자.”


‘영혼의 스트레스’는 또 있다. 대학마다 강화하고 있는 강의평가다. 박 박사의 전공분야는 국내에 들어온 역사가 비교적 짧고 이른바 ‘나와바리’가 작아 크게 상관없지만 박사가 넘쳐나는 분야는 사정이 다르다. “워낙 대학이 많이 생겨서 강사들은 고만고만한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받는다. 소명의식을 갖고 공부를 많이 시키면 학생들 호응도 없고, 강의평가 결과도 안 좋다. 다음에 수업 받기도 힘들다. 일부러 ‘얄팍하게’ 수업한다. 학자로서 ‘영혼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식으로 수업 하는 사람들, ‘도살장에 잡혀가는 소 같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상황이니까…….”

학진 프로젝트, 땜질인 것 알지만…


박 박사가 3군데 대학을 뛰어 한 달에 받는 돈은 약 150만원. 혼자 벌어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3과목 밖에(?) 맡지 않은 건 지난해 7월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2년짜리 ‘박사 후 국내연수’사업에 선정됐기 때문이다. 4대 보험 등 이것저것 떼고 한 달에 180만원 정도 통장에 입금된다. 연구재단 프로젝트가 좋은 건, 시간강사 강의료와 달리 방학에도 돈이 나온다는 점이다.


서울 사립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ㅊ박사(41세)도 연구재단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3년째다. 지방 사립대가 연구재단 사업에 선정되면서 연구교수 직함을 얻었다. 방학에도 매월 250만원을 받는다. 시간강사가 연구재단 프로젝트에 목을 매는 데에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제일 힘들 때가 방학이다. 1년에 6개월이나 된다. 무리인지 알면서도 1주일에 12시간씩, 20시간씩 강의를 맡는 것도 이 이유가 크다.”


ㅊ박사가 속한 연구소는 2년마다 재계약을 한다. 이번에는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안심할 순 없다. “총장이나 소장이 바뀌거나, 중간평가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연구재단 프로젝트도 신분이 불안하기는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연구재단 프로젝트가 갖는 함정은 또 있다. 양적 평가에 치중하다 보니 꾸준히 한 연구에 천작하는 분위기를 없앤다. “연구재단 연구비 따내는 기계로 변하고, 연구실적도 그 기준에 맞추고…. 개인 입장에서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맞출 수밖에 없다.”(박 박사)


ㅊ박사는 이번 학기에 강의를 두 과목에서 한 과목으로 줄였다. ㅊ박사가 지원을 받는 연구재단 사업 규정 상 두 과목까지는 강의를 할 수 있다. 굳이 한 과목을 줄인 건 올해 사업 중간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도 내고 논문도 써야 한다.” 다른 이유도 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전공수업을 좀 더 충실히 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최고의 선생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한 선생으로 학생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50세까지는 도전해 볼 생각”


박 박사는 미국에서 지도교수가 추천해 준 자리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뜻을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2~3년 더 ‘버티다’ 안 되면 미국으로 나가거나 ‘접을’ 생각이다. 지난해에는 아무 말 없던 친척들이 올해 들어서는 ‘실력이 없어 자리를 못 잡나?’ ‘인간관계를 잘 못해서 따돌림을 받나?’라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간강사가 교수를 하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닌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건 80년대 대학이 급격히 팽창할 때 이야기다. 일반인은 그 이미지를 아직도 갖고 있는 것 같다.”


ㅊ박사는 “50(세)까지는 도전해 볼 생각”이다. “지금은 내 분야 연구를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연구재단 프로젝트가 기회를 준 측면도 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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