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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학술지 점점 황폐화 … 연구역량 모을 새 부대 필요”
“기존 학술지 점점 황폐화 … 연구역량 모을 새 부대 필요”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10.11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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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세계적 학술지’ 창간 구상 배경은?

국내 학술지의 질적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 기존의 학술지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하는 쪽으로 국내 학술지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한국연구재단은 최근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 육성지원사업 추진방안 연구’라는 정책보고서를 내놨다.
“국내 학술지는 세계 최정상급 학술지와 비교할 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학술지의 문제가 국내 연구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결집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진단이다.

국내 연구 네트워크 부실 판단

현재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된 학술지는 1천885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SCI 등재 학술지는 12종, 스코퍼스급 국내 학술지(2009년 2월 기준)는 107종이다. SCI에 등재된 국내 학술지 가운데 임팩트 팩터가 가장 높은 <Macromolecular Research>도 동일분야 41개 학술지 가운데 13위에 그치고 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가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국내의 연구 네트워크가 부실해지거나 해외연구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장기적으로 국내 학술단체에서 발간하는 국내 학술지를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논문 투고와 학술지 배포 등 해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연구책임을 맡은 심광보 한양대 교수(신소재공학부)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국내에서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다. 국내 학회와 학술지는 점점 황폐화되고 있다. 국제 경쟁력를 높이기 위해서는 유명 해외학술지가 아니라 국내 학술지로 국내 연구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학술지를 집중 육성하는 방식에 부정적인 이유는 국내 학술지 여건 때문이다. 심 교수는 “1천만 원~2천만 원을 지원하는 현실에서 국내 학술지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는 어렵다”며 “전문인력과 학술정보 유통 체계를 갖춘 학회는 거의 없을 정도로 국내 학회 수준은 열악하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이 제안한 세계적 학술지(Top Journal)는 2011년 창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에는 SCI에 등재해 3년 동안은 월간지 형태로 해마다 논문 240편을 발간한다. 2017년에는 임팩트팩터 10이상인 학술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내학술지에도 노하우를 전수해 국내 학술지 3종 이상은 세계상위 10위권에 동반 진입한다는 구상이다.

<Top Journal>이 다루는 학문 분야는 우선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서 점차 전 학문분야로 확대한다. 국내에서 임팩트 팩터가 높은 물리학, 재료과학, 화학, 의학분야와 아시아권에서 경쟁력이 있는 정보통신과 재료과학을 우선 분야로 제시했다.

<Top Journal> 발행을 지원하는 조직은 한국연구재단이 위탁운영하되 별도의 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사무국은 정부단체나 민간단체에 기반하더라도 이후에는 독립채산제 형태로 운영한다. <네이처>를 발행하는 네이처 출판 그룹(NPG)을 모델로 하고 있다. 

<Top Journal>의 편집위원장은 우선 WCU사업 참여 학자 가운데 공모하거나 학술단체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초빙할 계획. <네이처>,<사이언스>,<셀>등에 공고를 내는 방식도 있다. 편집위원장의 대우와 권한은 노벨상 수상자나 NSC편집위원장급으로 제안했다. 초기에는 정부지원 대형연구사업(WCU, NRL)에서 나온 연구성과를 통해 논문을 확보하도록 했다.

학회들, “경쟁력 있는 학술지 있는데…”

국내 학술지 시장에서 전무한 학술지 홍보업무도 체계화한다. 해외 대형 출판사와 계약하는 것보다는 자체 전문 인력과 체계를 구축한다. 홍보·진흥센터는 저널 홍보와 저널 발간 진흥과 지적재산권 관리, 국내외 대표 저널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맡는다. 연구진은 “학술지 창간은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강력한 추진력이 없으면 착수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세계적 학술지 창간 지원을 위해 내년 예산에 3억 원을 확보한 상태다. 처음엔 20억 원을 요구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술지 질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학술지를 집중 육성할 것인지,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할 것인지 아직 학계에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며 “내년에 신규사업으로 추진할지는 아직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새로운 학술지를 창간하자는 주장은 여러모로 논쟁적이다. 우선 <사이언스>등 국제학술지가 길게는 150년의 역사를 거쳐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새로운 학술지 창간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국내학술지와 경쟁체제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학계 의견은 분분하다. SCI 등재 학술지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모든 학회를 육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국내 학술지 가운데 경쟁력을 갖춘 학술지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가능성이 있는 학술지에 대해 집중 지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우한용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서울대)은 “국제화가 가능한 학술지를 골라내는 작업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면서 “우수한 학술지를 육성하는 것과 함께 유사분야 학술지를 통합해 국내 학술지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찬반여론이 팽팽한 학술지 창간 제안을 학계에서 어떻게 수렴할지 주목된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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