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9:00 (수)
사립대는 대학당국의 의지... 국립대는 교수 정원이 걸림돌
사립대는 대학당국의 의지... 국립대는 교수 정원이 걸림돌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11.08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K전임교원 확보 ‘산넘어 산’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인문한국(HK)지원사업 1단계에서 가장 주력했던 부분은 연구소 전임교원 확보였다. 연구소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선 전임교수 확보가 필수 조건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사업 초기엔 ‘학과에 소속된 전임교수가 오고 싶은 HK연구소가 많아져야 한다’고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이런 사례는 드물다. HK교수를 전임교원으로 임용하면서 이들의 정년보장을 제도화하는 것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사업 1단계 기간 동안 HK연구소는 전임교원 확보와 정년보장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연간 10~15억 원을 지원받는 대형연구소의 경우 이 사업이 끝날 때까지 전임교수인 HK교수를 10명 이상 뽑아야 한다. 교과부는 연간 지원비 1억5천만원 당 1명꼴로 HK교수의 정년을 보장해야 하고 10년차 사업 종료시점에는 그 50%이상의 인원이 정년보장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현재 HK연구소에는 HK교수 135명, HK연구교수 296명이 재직 중이다. 이 가운데 HK교수는 지금까지 12명이 바뀌고 24명이 퇴직했다. HK연구교수는 35명이 교체되고 64명이 연구소를 떠났다. HK사업을 시작한 2007년에 교체와 퇴직이 가장 빈번했다. 2007년 당시 HK연구소의 연구인력은 HK연구교수와 연구원으로 나뉘었다. 현재는 HK교수, HK연구교수, 연구원으로 세분화 됐다. 문제는 2007~2008년에 뽑은 HK연구교수를 전임교수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인력 명칭으로 인한 혼란은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여파는 남아있다.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는 이 문제가 이번 예비평가 탈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이다. 미디어아트연구소는 2007년 HK연구교수로 임용한 2명이 전임교수로 자동전환을 주장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임정택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소장은 “이들이 HK교수 임용을 강행하면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해서 이후 HK교수 임용 절차를 진행하지 못했다”며 “이런 사정 때문에 HK교수 임용 절차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연구인력 명칭’ 혼란, 여파 진행중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지난 3일 HK전임교원 초빙공고를 냈다. 10명을 정년트랙 전임교원으로 뽑을 예정이다. 김동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원장은 “2007년에는 HK연구교수를 뽑았지만 전임이라는 규정이 없었다”며 “3년 계약만료로 나가는 HK연구교수도 HK교수 초빙에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학술원의 한 연구교수는 “2007년 당시의 HK연구교수는 정년을 보장하는 게 맞다”며 “다른 대학도 이런 문제가 많은데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재정적인 부담이 아니라 대학당국의 의지 문제”라고 꼬집었다.

HK연구소 소장과 관계자들은 전임교원 임용과 정년보장을 위해 대학당국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HK교수들의 인건비를 책임져야 하는 사립대는 HK사업이 끝나면 당장 재정 부담이 뒤따른다. 정년보장에 대한 규정이 미흡하면 10년 사업이 끝난 이후 HK교수의 지위가 유지 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정년보장 확보를 사업 평가에 중요한 항목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불확실한 미래는 HK교수의 연구활동에도  반영되고 있다. 한 HK교수는 “아무래도 학과 소속의 전임교수에 비해 신분이 불안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공을 들여서 하는 연구보다는 양적인 연구 성과에 치중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신분 불안에 공들인 연구 꺼리기도

재정과 대학당국의 의지가 사립대의 문제라면 국립대는 정원문제다. 국립대 전임교수는 교육공무원의 신분이지만 아직까지 국립대 HK교수 중에 교육공무원은 한명도 없다. 해마다 행정안전부에서 공무원 정원을 배정받아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연구소와 대학의 자구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김동철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은 “부산대는 HK교수로 16명을 뽑아야 하는데 대학 내부에서 정원을 얻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며 “인문학 관련 학과의 정원을 뺏는다고 생각하면 대학 내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교과부는 올해 행정안전부에 국립대 HK교수 정원을 별도로 확보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현재로선 수용될지 불투명하다. 교과부 관계자는 “HK사업은 처음부터 대학의 자구노력을 통해 전임교원을 확보하도록 했다”며 “국립대 정원은 교과부에서 협조하고 있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정원 확보가 쉽지 않은 국립대의 경우 HK교수를 기금교수로 뽑는 길도 열어 놨다. 하지만 ‘2등교수’를 양산한다는 지적과 기금교수로 교수를 뽑을 만한 대학이 많지 않다는 점 때문에 국립대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 서울대는 HK교수를 기금교수로 뽑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결국 폐기했다. 송용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은 “서울대는 기금교수로 뽑는 게 가능하지만 다른 국립대는 그렇지 않다”며 “다른 국립대 사정을 외면하고 혼자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에 전임교원으로 HK교수를 받아들이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