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7:10 (금)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한 평가와 전망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한 평가와 전망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5.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급진담론의 백가쟁명 … 단절에서 지속까지
이미 20여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사회구성체 논쟁에 참여한 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당시 1980년대의 논쟁에 직접 참여했거나 이후의 연구에서 입장을 표명했던 학자들을 중심으로 견해를 들어봤다.

●박현채의 작업에 대한 평가

유신과 신군부에 맞서 오랜 기간 민주화투쟁을 해왔던 박현채 前 조선대 교수는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론을 제기함으로써 1980년대 초반까지를 횡행하던 비판적 사회과학계의 종속이론과 안병직 교수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통박하고 사회구성체 논쟁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박현채 선생의 한국사회에 던진 진단과 전망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진보적 학계와 사회운동 세력에게 커다란 파장을 남겼다. 윤소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해방 이후 한동안 단절됐던 정치경제학 논의를 성숙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 비일관성과 편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서관모 교수는 “한 쪽에서는 反獨占論인 신식국독자론을, 다른 쪽에서는 反帝論인 민족경제론을 주장함으로써 운동노선에서 혼선을 가져온 점도 크다”고 평가한다. 정성진 교수는 “그의 신식국독자론이 진보적 연구자에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흡수됐지만 결국 논쟁이 ‘정통성’을 판가름하는 스탈린주의적인 편향으로 흐르게 된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그가 논쟁의 촉발에 미친 선구적 업적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전개와 붕괴과정에 대한 분석

철학자 이진경씨는 논쟁의 출발 시점을1985년으로 잡는다. 이는 이론적 흐름에서는 서관모 교수의 주변부 자본주의론 비판과 박현채 선생의 개입에서, 운동의 흐름에서는 서노련 논쟁, MC/MT 논쟁 등 운동 원칙과 전략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가 있었던 시점을 말한다. 그는 “운동조직들도 사회구성체 논쟁에 적극적인 주체였다”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사회구성체론에 대한 현재의 입장은 논쟁에 참여했던 학자들조차도 저마다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사회구성체 이론의 전화를 주제로 한 저작을 쓴 정성기 경남대 교수(경제학)는 “자본주의의 오류는 맑스주의에서도 온전히 교정되지 못한 채 재생산됐고 이에 기댄 사회구성체 논쟁은 일상생활의 측면을 담아내지 못했다”고 질타한다. 논쟁 자체의 공과를 떠나서 사회구성체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런 사회구성체론의 부활 자체에 대해 이병천 교수는 “다시 사회구성체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그 동안 축적된 많은 연구결과들을 간과하는 태도”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한편 당시의 문제 의식을 비교적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정성진 교수는 “자본주의의 다른 형태였던 동구권 블록이 붕괴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것 자체가, 반제와 반독점 진영 서로가 공유했던 스탈린주의적 편향의 허약성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현실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론단위와 운동현장의 연계고리가 끊어진 것이 가장 큰 변화”라는 조현연 교수는 “사회변화에 따른 실용적 접근과 실용주의적 접근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동춘 교수도 “지식인들이 사회 변혁에 대한 입장과 전망을 밝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라고 적극 옹호했다. 그는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논쟁의 현장에서 사라진 점을 지적, “오히려 침묵하는 현실이 더욱 큰 문제가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현재적 의미와 실천 전략

배영순 교수는 정성기 교수와 마찬가지로, ‘사회구성’의 의미를 다르게 사용한다. “과거의 논쟁들이 상부구조 폐지나 권력 쟁취에 치중했다”며 “누가 체계를 장악하는가보다는 구성원 각자가 제대로 사는 대중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연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족국가에 준하는 사회구성체에서 더 나아가, 한 쪽으로는 세계와 지역의 정세를, 다른 한 쪽으로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조망하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동춘 교수는 과거의 논쟁이 “위로부터의 논쟁이라면 이제는 미시적인 것에서 총론적 전망으로 도달하는 밑으로부터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사회구성체 논쟁은 …

사회구성체란 용어는 맑스와 레닌의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 경제적 토대를 기반으로 상부구조를 포함하며 인간의지와 독립된 객관적·본질적 재생산체계를 통칭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특정지역의 자본주의의 성격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김동춘 교수는 한국에서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한국사회의 제3세계적 성격과 특수성을 강조하는 입장과, 자본주의로서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제기되는 제1단계,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구분되는 제2단계, 한국사회의 자생적 발전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진자본주의론이 추가되는 제3단계”로 구분한다.
한편 조현연 교수는 사회구성체 논쟁과 사회성격 논쟁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서로 뉘앙스는 달라도 혼용하는 추세”라고 소개한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도움주신 분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 배영순 영남대 교수(역사학) / 서관모 충북대 교수(사회학) /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 이진경 고려대 강사(철학) / 정성기 경남대 교수(경제학) /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 /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