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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조선목가구대전’
[예술계 풍경] :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조선목가구대전’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6.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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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4 19:38:47

‘하루살이 삶을 천지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적벽부 中 손〔客〕인생무상의 고뇌는 비단 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삶의 고뇌를 ‘생활 속의 멋’으로 승화해냈다. 부러 새기거나 그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목가구의 나뭇결, 이는 그야말로 생과 사가 함께 숨쉬는 공간이며, 세월의 흔적이 낳은 연륜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는 9월 1일까지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조선목가구대전-나뭇결에 스민 지혜’에서 만나는 건 단순한 ‘가구들’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숨의 흔적’이다.

산수를 노래하고 난을 치는 것을 즐기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자연은 가장 가까워지고픈 벗이었을까. 이렇게 보면 선비들이 주로 거처하던 ‘사랑방’에 목재가구가 많았던 것도 이해가 간다. 나무를 방안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집안에서도 ‘자연’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방의 목가구들은 선비 특유의 소박함과 단정함이 녹아 있어 ‘나뭇결과 면분할에 의해 우러나는 조선 목가구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껴보자’는 이번 전시회의 목적과 가장 잘 부합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전시회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도 바로 ‘사랑방’이다.

사랑방에 놓인 목가구들은 그야말로 ‘솔직’하다. 이들은 장식을 최소한으로 줄여 나뭇결의 매력과 사각의 비례미를 그대로 뿜어낸다. 묵직한 적갈색의 ‘삼층책장’이며, 견고하게 짜여진 ‘사층사방탁자’며, 짧고 굵은 양반다리를 한 ‘문갑’이며 하나같이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하는 작품들. 은은한 빛을 내는 ‘좌등’이 이들을 한데 모아 사랑방의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아름다움을 탐하는 여인네들의 마음은 같은가보다. 안방에 놓인 목가구 중에는 화려한 것이 많아 상당량이 전시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사랑방과 같이 ‘방 전체의 전경’이 재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부드러운 원을 그리는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의장’이며, 재미난 면분할을 이용해 사각형들만으로 ‘꽃무늬’를 만들어낸 ‘삼층장’ 등에는 목가구의 여성스런 매력이 드러나 있었다.

역시 부엌 가구들은 ‘실용성’이 으뜸. 부엌에 놓인 삼층찬탁, 찬장 등은 안방 가구의 화려함을 죽이고 튼튼함과 안정감을 강조해 ‘건강미’를 살렸다.

전시를 기획한 박영규 용인대 교수(디자인학부)는 “우리는 보통 ‘한국의 전통적 목가구’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 한국목가구의 진묘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목가구의 예술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도자기나 회화와 같은 ‘예술품’으로 재인식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라고 ‘한국목가구대전’의 의미를 설명한다.

조선의 목가구에 ‘지혜’가 스며 있다면 그것은 선과 면의 배열만으로 수백 가지의 다양한 디자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며, ‘각’이 주는 딱딱한 느낌을 ‘나뭇결’이라는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녹여냈기 때문이며, 이 융화 속에는 인공미가 아닌 순수한 자연미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전시회문을 들어서며 목가구의 향기를 듬뿍 들여마시길, 그 숨이 마음의 ‘나뭇결’로 남길.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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