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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제4회 광주비엔날레 들여다보기
[초점] : 제4회 광주비엔날레 들여다보기
  • 교수신문
  • 승인 2002.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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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4 19:41:39
이태호 / 미술평론가·홍익대 겸임교수

제4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3월29일 그 막을 열었다. 오는 6월29일까지 3개월간 열리는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멈_춤(P_A_U_S_E)’을 그 주제로 내걸었다. 녹음기나 비디오 등 가전제품에서 흔히 보게 되는 PAUSE란 낱말은 작동의 ‘멈춤‘을 뜻한다. 그것은 ‘정지’의 뜻인 STOP과 달리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일시 멈춤‘이다. 이 말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앞으로만 달려온 우리 삶의 진행을 일시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그 길의 방향과 그 속도에 대해 반성해보자는 뜻이다.
그래서 ‘멈_춤’은 ‘근대화’와 ‘서구화’, 그리고 ‘개발’이라는 슬로건 아래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경제제일주의와 함께 피폐해진 우리의 삶이 포함된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와 ‘효율’을 위해서라면 반인권과 반문화가 용인되거나 유예되는 시간을 지나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그러한 세월을 증거하는 한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멈_춤’은 오늘날 이 세계의 흐름, 즉 유럽과 미국으로 그 중심이 오가며 계속돼온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판짜기’에 대해서 성찰하기 위한 멈춤이다. 우리로서는 특별히 그러한 세계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해왔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강요된 ‘자기 비우기’와 ‘자발적 종속’을 벗어나 얼마나 창조적 예술적 대응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그 미술전시가 이와 같은 주제 ‘멈_춤’을 얼마나 실체적으로 드러냈는가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라질 것이다.

광주시와 함께 호흡하는 전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3회 전시와 뚜렷이 다른 기획과 성격이 있다. 첫째는 전시를 4개의 프로젝트로 나누어 중외공원의 본관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장소를 택해 작품 전시를 함으로써 광주시 전체를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대상으로 연장한 것이다. 5·18자유공원의 ‘상무지구’(프로젝트3 :‘집행유예’)와 광려선 철도 ‘폐선부지’(프로젝트4:‘접속’)에 마련한 전시가 그것으로, 현장의 특수 성격(site specific)을 살린 작품전시를 기획한 것이다.
프로젝트3:‘집행유예’는 광주민주화항쟁 때 시민들을 체포해 영창에 가두고 형을 집행했던 ‘상무대’에서 열리고 있다. 성완경 예술감독의 예술적 상상력이 돋보인 이 전시는 마치 영화촬영을 위한 세트장처럼 황량하게 남아있던 그 시설물에 작가들을 초대해 훌륭한 전시공간으로 재창조하고 있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5·18 민중항쟁이라는 사건을 광주비엔날레사상 가장 본격적으로, 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미술적으로 형상화한 전시로 보인다. 전시 주제 ‘집행유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전시는 5·18항쟁을 전후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자의식을 드러낸다. 즉 유예된 자유와 인권 그리고 조건부로 주어지는 시민정신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고 있다.
그 사건과 20여 년의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출품된 작품들은 대체로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울부짖거나 조건반사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5·18 당시의 처절한 영상과 함께 당시의 유행가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등을 보고 듣게 하거나(배영환), 당시 무자비하게 시민군을 체포하고 가두던 상무대 영창이 있던 자리에 도로와 아파트단지와 골프연습장이 들어서는 모습을 기록한 사진(김혜선), 그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연필‘(최소연)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개념적’ 작품과 달리 이 전시에서 가장 선배격인 신학철은 전통적인 회화 방식으로 굴곡 많은 우리의 현대사를 초현실적 구성과 함께 서술하고 있다. 국내 작가 49인이 참여한 이 전시는 오늘의 광주비엔날레가 있게 한 광주시의 역사와 ‘광주정신’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한다.
프로젝트4:‘접속(connection)’은 ‘폐선부지’ 위에 임시로 설치한 시설물과 작품들로, 하나의 제안적 성격의 전시이다. 이 전시는 이제는 사라져 없는 남광주역 역사 근처, 철길이 있던 곳에서 예술가와 시민이 어떻게 일상적 기억과 역사를 기념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이는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가능성과 질문과 제안이 작품자체가 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잘 지어진 미술관의 벽면과 조명을 기대하고 찾은 관객은 실망을 할 수도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두 번째 특징은 프로젝트1 ‘멈_춤’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대안공간을 대거 초대한 점이다. 그리고 대안공간의 작업들을 개별작가의 작품과 뒤섞으며 자유스런 동선을 배려한 ‘관객 참여적’ 전시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총27개의 대안공간이 그 스스로 작가를 큐레이트하여 참여했으며 18개의 쉼터(파빌리온)가 만들어졌다.
‘대안공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80년대 미국에서 기업화한 화랑과 거대 미술관의 자의적 선택과 ‘상업화’로부터 자유롭게 작업하고자 하는 참신한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것이 그 이후의 미술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가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한 참신성을 이 땅에 일으켜보고자 하는 시도는 값진 일이다. 그리고 작품 설치를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인 백화점이나 상업화랑의 ‘아트페어’식으로 진열하지 않고 마치 재래시장처럼 자연발생적이자 자유롭게 한 것도 뜻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런 새로운 시도가 기존의 미술작품 전시방식에 익숙한 관객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고 피곤하게 했겠지만, 이는 한편으론 생생한 체험의 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의 광주비엔날레는 세계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하면 많이 초대해 관객에게 보여주느냐 하는 문제에 노력을 기울인 면이 있었다. 또 그런 작가들의 많고 적음이 전시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늠자인 듯한 모습을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번 전시는 문화 주변국의 종속적 자세를 떨치고 당당히 우리의 관심과 방식에 따라 만들어낸 국제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의 ‘대안공간’을 어떻게 초대했나

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미국의 작가들을 배제한 것은 잘한 일이라 할 수 없다. 미국을 배제하려면 그럴만한 이유와 타당한 목적이 있었어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미국을 배제한다는 것은 마치 서울의 문화를 얘기하면서 종로구나 강남구의 문화를 취급하지 않은 것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작가들은 축구선수처럼 나라의 이름으로 출전하지 않으며, 한국문화의 한 측면에서 드러나듯 ‘애국적’이지 않다. 그들은 우선 한 개인으로 작업하며, 각각 성적, 인종적, 지역적 정체성을 드러내긴 하나 ‘국가적’인 면은 희박하거나 없다. 또 그런 작가만이 우리가 만나고 싶은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2의 ‘저기:이산의 땅(There : Sites of Korean Diaspora)’은 이민을 떠나 세계 도처에 흩어져있는 해외동포의 미술적 역량을 한자리에 모아보려는 시도였다. 미국교포 2세인 민영순이 큐레이터로서 미국,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브라질 등의 한국계 예술가 1세∼3세의 작품을 모았다. 이는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우리에게 그들의 작품세계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다시 굴절되고 반사된 우리의 정체성과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를테면 작품 ‘인형’을 출품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세르게이 송의 작품은 젊은 시절 노동현장에서 두 다리를 잃은 뒤 뒤늦게 만난 그의 예술이자 삶의 조건이다. 우리는 그 작품을 통해 이민자의 고단한 삶과 예술의 길을 동시에 되짚어 보게 된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의 제목에 비해 전시는 너무 평면적이고 조촐하다. 그래서 또 하나의 좋은 ‘제목’을 잃어버린 느낌도 든다. 이 프로젝트가 6백만 해외동포를 헤아려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라는 것을 안다면 보다 더 많은 준비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지구촌에서 비엔날레나 트리에날레 등의 이름으로 열리는 국제전이 1백20여 개가 된다고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그 같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는 국제전들 속에서 이제야 자기 얼굴과 목소리를 갖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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