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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본부 기능 축소 등 ‘묘수’ 속출 … “제 살길 스스로 개척하자” 주장 솔깃
대학본부 기능 축소 등 ‘묘수’ 속출 … “제 살길 스스로 개척하자” 주장 솔깃
  • 김희연 기자
  • 승인 2012.04.17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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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 발전계획으로 보는 미래 대학가

대학가에 긴장이 감돈다. 교육에 필요한 재정은 점점 느는데 정부 지원은 까다로워진다. 학령인구는 2030년 ‘반토막’이다. 대학들은 이 피할 수 없는 도전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대학별 중장기 발전계획(안)을 통해 밑그림을 추적해보자.

가장 주요하게 감지되는 것은 ‘대학 구조 효율화’다. 이미 많은 대학들이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유사ㆍ중복학과 통폐합을 단행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등 재정적인 문제와 맞물린 대학 구조개혁은 학령인구 감소를 목전에 두고 시급한 현안이 됐다.

대학 구조 효율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방향은 대학 본부의 기능 감축이다. 이는 비대해진 본부를 축소해 재정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점점 빨라지는 지식사회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몸짓이기도 하다. 경직된 중앙통제 시스템으로는 네트워크형의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앙통제시스템 한계 … 부총장 권한 커져

2008년 두산재단을 영입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중앙대는 지난해 학문 계열별로 책임형부총장제를 도입했다. 부총장이 성과관리를 위해 기업식 경쟁을 유도한다는 교수들의 반발이 잇따랐고 지난 2월에는 자연공학계와 인문사회계 부총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바뀌었다. 그럼에도 박상규 기획처장은 “전공 사이의 벽이 점점 없어지는 현실에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계열별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특성화시키자는 것”이라고 해명하며 이 같은 방향을 계속 유지해갈 것임을 밝혔다.

다른 대학들도 학문 단위별로 자율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양대는 2009년 단과대학별로 수입과 지출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책임경영’을 도입해 지금은 거의 정착 단계다. 학장의 인사권과 예산권도 확대됐고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도 지급된다. 중앙대와 다른 점은 기존의 단과대학 단위로 시행되고 비교적 단계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고려대의 경우도 본부가 기획ㆍ조정만 담당하는 ‘실질적 대학 분권화’ 전략을 세웠지만 구체적인 실행 일정은 미지수다. 이미 단과대학별로 목표를 관리하고 그 성과에 따라 보상을 주는 체계는 구축돼 있다.

국립대는 정부 제약으로 분권화에 이르는 길이 더 멀다. 서울대가 ‘대학 자율화’를 외치며 법인화에 목맨 이유다. 최근 법인화를 완료한 서울대는 학장ㆍ학과장이 실질적인 행정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고 학과 평가를 통해 지원 규모를 결정하는 안을 내놨다. 큰 반향이 예상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실행은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신중하게 결정할 예정이다.

지역거점 국립대인 충남대와 전남대도 발전계획을 통해 학문 중심단위 체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전남대 관계자는 “법인화가 안 돼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과대 예산 비율을 높이고는 있다”고 말했다.

대학 분권화의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학문의 융ㆍ복합화에 대응하는 정책도 중장기 발전계획의 큰 축을 형성한다. 분과학문의 전문성에 주목해왔던 과거와 달리 성장 동력을 학제간 융ㆍ복합에서 찾는 경향이 계속되고 정부와 산업계의 투자가 늘면서 특성화된 분야를 선점하고자 하는 치열한 경쟁이 반영된 것이다.

2009년 설립된 울산과학기술대는 처음부터 7개 융합학부로 출발했고 모든 교수가 2개 이상의 학부에 소속돼 있을 정도로 학제간 융합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 장기계획도 융복합기술사업 특화 연구원을 신설하는 등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이다. 경희대도 ‘융복합’이다. 미래정책원을 설립하고 중장기 발전계획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경희대는 미래전략(안)을 통해 융복합을 중요한 키워드로 강조한다.

지역 밀착 vs 국제화

중장기 발전계획에는 수도권 대규모 연구중심 대학과 지방대가 처한 상황도 다르다. 지방대는 오랫동안 지역 학생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문제를 겪어 왔다. 여기에 학령인구 감소라는 요인까지 겹치면 수도권 대학에 비해 등록금 수입에 의존도가 큰 지방대에게 타격이 클 전망이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지방 대학들은 주로 지역 사회와 밀접한 실질적 취업 교육을 강조하는 경향이다. 조선대는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대학의 선호도 심화가 지방대학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인식하며 지역의 발전전략과 부합하는 특성화 분야의 발굴과 육성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본다.

인문ㆍ신학계열로 출발한 계명대는 최근 산학협력에 집중해 정부주도 큰 사업들을 족족 따냈다.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는 코앞에 닥친 위기”라며 “지역 산업 맞춤 인재를 유치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라대도 ‘부산 지역 학령인구 감소는 전국 대비 더욱 심각하다’고 진단하며 지역 기업과 연계를 통해 기업 탐방, 단기 연수, 인턴 등을 추진한다. 한동대도 지역산업 및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미래 전략의 큰 틀로 잡았다.

지방대 중에서도 국립대는 조금 더 복잡하다. 민정로 전남대 기획부처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원 확보도 지방국립대의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현실적으로 “특별한 연고가 없으면 우수 교원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 사립대에 비해 자율성이 낮아 급여 부분에 메리트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남대는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 2030년 계획을 짜고 있다.

주로 인재 영입에 애쓰는 지방대와 달리 수도권 대규모 연구중심 대학은 세계 일류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다. 남익현 서울대 기획처장은 “세계 학계를 따라가는 위치에서 주도하는 위치로 전환하는 방향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세계적으로 지식창출을 주도하는 10여 개의 초 일류대학이 대학교육 전반을 지배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며 세계 10대 대학을 목표로 삼았다. 연세대도 “3천여 개의 미국 대학들 중 20개의 중심대학이 미국을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이끌고 있다”고 인식하며 신임교수 채용에 있어서도 국제경쟁력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겠다고 밝힌다.

변화의 기로 그리고 독자적 선택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을 비롯해 자격의 상호인정이 활발해지는 등 고급인재의 해외 유출 현상이 가속되는 현 시점에 경쟁 무대를 세계로 옮겨야 한다는 압박도 존재한다. 대다수 수도권 대학들은 외국 우수 대학들과의 공동학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고급인재 유치에 노력하고 있다. 수도권은 아니지만 주요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도 세계 상위 1% 학생 선발을 목표로 내세웠다.

변화의 기로에 선 한국의 대학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한 대학들이지만 나오는 목소리는 의외로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천편일률적인 변화가 아니라 각 대학에 적합한 변화라는 것이다. 이정동 서울대 기획부처장도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미래에는 똑같은 지표로만 평가받는 체제에서 대학이 스스로 목표를 제시하고 지켜나가는 체제로 가야 할 것입니다.”

김희연 기자 gom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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