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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를 위한 비전과 정책이 안 보인다”
“전문대를 위한 비전과 정책이 안 보인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06.18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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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에 치이고 마이스터고에 밀리고…

대학 총장들의 세미나에는 으레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이 참석한다. 4년제 대학 총장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장 세미나 때도 언론의 관심은 ‘장관과의 대화’에 집중된다. 하지만 지난 14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회장 이기우 인천재능대학, 이하 전문대교협) 총장 세미나에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관이 대신 온 것도 아니다. 최은옥 산학협력관(국장)이 참석했다. 전문대학과는 산학협력국 아래에 속해 있다.

이 장관이 전문대교협을 제쳐두고 달려간 곳은 평택기계공고다. 평택기계공고는 마이스터고 가운데 처음으로 취업 100%를 달성한 곳이다. 마이스터고는 산업계 수요에 연계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교 직업교육 선도모델이다. 이날 평택기계공고에서 열린 ‘취업 약정 100% 달성 및 가족회사 지정식’에 참석한 이 장관은 “평택기계공고처럼 많은 학생이 우수 중견·중소기업으로 취업하는 학교가 진정한 마이스터고”라고 축하했다. 행사 후에는 전국 35개 마이스터고 교장단과 간담회를 열어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이날의 풍경은, 4년제 대학 위주의 정부 정책으로 소외받는 것도 모자라 직업교육 정책에서마저 마이스터고에 밀리는 전문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대교협 관계자는 “거기는 웃으며 축하하는 자리지만 여기는 이런저런 불만을 들어야 하니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현안 토론에서 전문대 총장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가감 없이 쏟아냈다.

지난 14일 열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총장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대 총장들이 전문대에서 4년제 과학기술대로 개편해  성공한 사례를 발표한 주원상 대만 과기대협진회장(수덕과기대 총장)의 말을 메모까지 해가며 경청하고 있다. 사진=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전문대는 철저히 소외되고 무시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며 성동제 순천제일대학 총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성 총장은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졸업자가 취업 이후에도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先취업 後진학’은 직업교육의 중심축인 전문대학과 연계된 정책이 나와야 되는데 일반대학만 배려하고 전문대는 소외돼 있다. 산학협력이나 지역대학 육성도 일반대학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전문대를 위한 비전과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 총장은 “우리가 살 길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고등직업교육 육성 및 발전을 위한 어젠다’를 개발하게 됐다. 어젠다에서 제시한 정책 대안이 차기 정부에서 반영돼 전문대 모두가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금승호 한림성심대학 총장은 “평생교육에서 엄청난 수요가 발생하고 있고 정부 여러 부처에서 평생교육 프로젝트를 내놓고 있는데, 직업과 관련된 평생교육은 전문대학이 전담하도록 교과부가 정책 방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요구했다. “전문대가 직업교육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고 일반 4년제 대학은 직업교육을 하는 곳이 아닌데도 평생교육 사업에서 4년제 대학을 더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금 총장은 또 “100세 시대, 인생 3모작 시대를 맞아 평생교육에서도 직업교육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평생교육은 취미나 오락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승우 군장대학 총장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총장은 “정량지표에 의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금의 정량지표는 지역성과 현장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환경이 다르고 수도권도 대도시와 중소도시가 다른데 특히 지역균형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 중소도시는 죽을 맛”이라며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춰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또 “10년 동안 전문대 정원 10만명이 감축되고, 20곳이 4년제로 흡수·개편됐다. 반면 일반대는 정원이 오히려 증가했다”라며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전문대 정원 감축이 오히려 4년제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모순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총장은 “청년 실업자 대부분이 일반 4년제 대학 졸업생이고, 반값 등록금도 4년제를 졸업해도 제대로 취업은 안 되는데 등록금은 비싼 데 대한 반발에서 촉발된 것”이라며 “전문대보다는 4년제 대학의 정원을 줄여야 사회적 낭비도 줄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임에 성공한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인천재능대학 총장)

이기우 회장 연임 … 만장일치로 재추대

한편, 세미나에 이어 지난 15일 열린 전문대교협 임시총회에서는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우 인천재능대학 총장이 만장일치로 15대 회장에 추대됐다. 이 회장은 지난 2년간 전문대교협을 이끌어오면서 전문대 명칭을 ‘대학교’로 바꾸고, 유아교육과·간호과 등을 4년제 학사과정으로 전환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 회장은 “대선과 맞물려 전문대학을 위한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할 시점이다. 이번에 발표한 ‘고등직업교육 육성 및 발전을 위한 어젠다’를 적극 추진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특히 “141명 총장이 모두 회장이라 생각하고 전문대 총장들과 소통을 더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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