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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유령’ 이자 ‘애도’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유령’ 이자 ‘애도’의 표현이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6.19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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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포스트 담론 20년 점검 심포지엄

<문화과학>, <사회와철학>, <실천문학>, <역사비평>, <자음과모음>, <진보평론>, <창작과비평>… 지난 15일, 국내에 내로라하는 계간지 편집위원들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모였다. 포스트 담론 20년사를 논하기 위해서다.

국내에 포스트담론이 소개된지 20년이 넘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 80년대 민주화운동. 이어 불어 닥친 ‘포스트’열풍은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주무르며 사상계를 마르크스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즘주의자로 양분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정작 ‘포스트’라는 개념이 구체화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심포지엄을 기획한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철학)는 자크 데리다의『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착안한「포스트 담론의 유령들」을 발표했다. 진 연구교수는 ‘포스트 담론이라는 유령’은 마르크스주의를 몰아내려는 실체 없는 허상으로, ‘포스트 담론의 유령’은 담론 스스로가 그 자신의 유령이 돼버린(애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타자를 청산하
려 했지만 사라지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담론으로 규정한다. 포스트 담론의 유령은 자신의 타자를 망각, 배제하려 할수록 포스트 담론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진 연구교수는 ‘애도’를 통해 자신이 망각하려고 했던 이 타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여부에 포스트 담론의 장래가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애도의 담론으로서 포스트 담론은 무엇인가. 그는 지난 20여 년 국내에서 이뤄진 포스트 담론의 수용 과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고양을 배경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복원이 이뤄졌고, ‘자생적 발전론’을 중심으로 한 ‘민족사’의 구성이 지성계의 화두가 됐다. ‘포스트’라는 접두어를 붙인 새로운 개념들(텍스트, 시
뮬라크르, 파놉티콘, 숭고…)이 담론에 등장했고, 인식론적인 단절로 불리워질 만한 변화의 시대였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민중사에서 문화사로, 사회철학에서 포스트담론으로의 급격한 변화의 원인을 진 연구교수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과 연이은 동구권의 몰락에서 찾는다. 그러나 진 연구교수는 ‘외부현실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내부의 사상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첨언한다. 오히려 포스트 담론의 수입과 급속한 수용은 일종의‘애도’의 표현이라는 가설을 세워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1917년『애도와 우울증』에서 프로이트가 ‘애도작업을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리비도를 분리시키는 것’으로 규정한 것을 인용해, 애도 담론으로서의 포스트 담론 가설을 전개하는 것이다.

진 연구교수는 또한 프랑수와 퀴세 낭테르대 교수의『루이비통이 된 푸코』를 인용하며, 국내에 소개된 포스트 담론 중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가 프랑스 이론이 아닌 미국제 담론이라는 점을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푸코와 데리다를 제외하면 국내에 제대로 번역된 책이 드물다는 점(라캉은 세미나 11권, 데리다는 수백편의 논문과 80권의 책 중 20여 권 뿐)을 덧붙이며 국내의 독자적 수용 수준이 상투어구의 반복, 짜깁기, 획일화의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디지털콘텐츠)는「포스트 사회과학: 사회적인 것의 과학, 그 이후?」에서 포스트사회과학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징후로 광우병 촛불시위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서 교수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국민의 건강권이라는 ‘사회적’인 요구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정치적’단언이 결별한 현장으로 본다. 그는 건강권을 요구하는 주체들이 더 이상 사회의 성원으로 혹은 사회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개인도 정당도 아닌, 1천500개의 다양한 시민운동 단체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사회의 요소 혹은 성분으로 개인을 전제할 수 있다면, ‘정치적인 것’과‘사회적인 것’이 서로 포개져 있던 역사적 시대를 마감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고 서 교수는 진단한다. 사회적인 관점에 따른 통치, 사회국가의 개념이 희미해져 가는 오늘날 정치의 대상으로서의 ‘사회’도 역시 사라져 가고 있다면, ‘사회’ 이후에 무엇인 등장할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서 교수는 월러스틴을 소환해 그의 논지를 풀어나간다.

월러스틴은『월러스틴의 세계체제분석』에서 이미 프랑스 혁명이후 등장한 세 개의 이데올로기(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가 20세기 후반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역설한 바 있다. 서 교수는 자유주의에 주목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기회의 평등과 능력주의를 선호했다. 자유주의자들은 과학을 옹호하는 전문가집단을 지지했고, 이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갈등으로 19세기 전반까지 이어졌다. 월러스틴은 다소 거칠게 자유주의의 ‘시장’을 보장한과학이 ‘정치경제학’이고, 정치지도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학문으로 ‘사회학’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사회적 관점에 따른 통치로의 새로운 자유주의가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그것이 사회과학이란 과학적 지식의 체계를 통해 자신을 유효화한 것은 자유주의의 (불)가능성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포스트 담론 수용사 20년을 돌아본다는 기획 자체는 참신했고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총론과 각론이 엇갈렸고,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은 개념을 공유하기에도 버거워 논쟁은 쟁점을 벗어나 부유했다. 기대를 모았던 종합토론은 방황하는 포스트 담론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줘 안타까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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