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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복지정책 실패는 수구 아닌 진보세력 때문”
“노동·복지정책 실패는 수구 아닌 진보세력 때문”
  • 임운택 계명대‧사회학
  • 승인 2012.07.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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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택 계명대 교수, 노무현 정부 정책 실패 요인 분석
 87년 체제는 군부권위주와 갈등관계에 섰던 민주주의의 작은 승리였다. 그러나 이후 10년 뒤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형식적으로 성공한 87년 체제의 내용적 후퇴를 가속화했다. 지난 달 29일 학술단체협의회(대표이사 한상권)가‘6월 항쟁의 의의와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를 주제로 진행한 학술대회는 바로 이런 87년체제의 의미를 2013년의 대안 모색이란 측면에서 조명한 자리였다.

이날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과)는「87년 체제의 단절과 계승의 과제」에서 민주세력 집권기의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6월 항쟁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범민주세력이 과도하게 국가중심적 개혁과제에 집착한 것은 비판돼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략 없는 집권전략이 문제가 되는데,‘국가도취증’이라고 불릴만하다”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국내 진보진영의 일부에서 여전히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사민주의를 논하고 있지만, 사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사민주의 정책을 꾸준히 시도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사회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문을 발췌해 소개한다.


동북아금융허브전략이나 금융시장 활성화전략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는 출범당시부터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 내에서 안정적인 사회질서를 부여하는데 있었다고 보며, 그러한 점에서 노무현 정부 아래서 한국의 재벌 및 자본세력은 구파쇼·보수정권에서조차 누리지 못한‘시장의 자유와 권력’을 향유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DJ정부가 구 권력엘리트 일부와의 타협에 근거한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핵심 엘리트들이 과거 발전국가의 구 관료들을 교체해나가면서 신자유주의의 유기적 지식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정권의 유지는 물론이려니와 자본주의의 위기관리를 위해 인재풀이 부족했던 노무현 정부에서 새로운 엘리트 집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충원됐다. 김대중 정부 이후 그 세력을 강화한 MOFIA 집단이 구조조정을 겪고 난 이후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금융자본세력들과 더불어 해외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대했으며, 외통부의 교섭본부장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FTA를 추진하면서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앞장서서 실천하였던 김현종과 같은 인물은 국내의 전통적 엘리트들에게 이질적이긴 했지만 이들에게 결여된 이론적 무기와 국제적 인맥을 보완해줬다.

정책적 측면에서도 노무현 정부아래서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교조적인 방식으로 관철되지는 않았다.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노무현 정부는 네덜란드의 폴더모델부터 시작해서 덴마크의 유연안정화모델, 아일랜드모델, 영국 및 독일식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 각종 신자유주의적 사민주의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벤치마킹했으며, 사회복지모델도 김대중 정부와는 달리 철저한 자기구제방식모델에 근거한‘제 3의 길’사민주의 모델에서 찾았다.

신사민주의의 변형주의가 근거한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대한 구체적 분석 없이 집권 시기 내내 모델의 벤치마킹만 이루어지다보니 정책적 기획의 실패가 현실의 장벽(기득권 세력의 방해) 탓으로만 돌려지고, 끊임없이 최우량사례에 목말라 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의도적으로 연출된‘사회투자국가론’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사회투자론의 롤모델이었던 영국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처했는지 잠시만 들여다봐도 이러한 이념적 오디세이의 위험성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정책의 입안에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일반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수구세력의 철저한 저항으로 돌리곤 하는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다소 무책임한 논리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경제정책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정책에서도 사민주의로 변형된 신자유주의 정책(물론 이전의 정부보다는 세련된형태)이 시도됐으며, 그러한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참여했던 유기적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결합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이들 중 일부는 종종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사회복지정책의 한계가 기획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실천과정에서 불완전 했거나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설명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우선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이나 사회복지정책의 실패는 전통적인 수구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진보세력으로 간주되는(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체제에서는 보수적인 세력들인) 노동운동이나 시민사회운동에 의해서 좌절된 것이지 수구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노동부나 복지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관여했던 부처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히려 정책적 실패의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엘리트들과 이들에게 이론의 무기를 제공한 지식인 집단들이 시장을 철저하게 규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좌익소아병으로 간주할 만큼 시장의‘자기규율화’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데에 있다고 보인다. 사민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에서도 정부정책의 역할을 전반적인 시장경쟁의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어내는 것 즉,‘ 경쟁적 코포라티즘’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노무현 정부를‘삼성공화국’으로 빗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c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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