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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다 죽이겠어요” … 씁쓸한 ‘구타 세레모니’
“저러다 죽이겠어요” … 씁쓸한 ‘구타 세레모니’
  • 교수신문
  • 승인 2013.10.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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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자고 일어나보니, 여자아나운서에게 물벼락을 때린 A선수를 욕하는 기사로 도배돼 있었다. 밤새 일부 네티즌들이 A선수를 욕하는 글을 SNS에 퍼부었고, 기자들이 반영했고, 상당수 네티즌이 댓글로 동참하면서 대여론이 된 모양이었다. 밤까지만 해도, 물벼락 맞기 전에는 ‘청초’했던 아나운서가 물벼락을 맞은 후에는 ‘섹시’하게 변했다면서 A선수의 물장난보다는 아나운서의 섹시미를 강조하는 기자도 있었을 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던 기자들이, 밤새 도덕선생님으로 돌변했는지, 세레모니의 과도함, 야구선수의 인성 없음 등을 나무라고 있었다. 그러나 구타 세레모니에 대해서는 아무도(기자도 네티즌도) 말하지 않았다. 수훈선수는 물벼락을 맞기 전에 자기 편 선수들에게 죽도록 맞았다. 끝내기안타를 쳤기 때문이다.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웃으면서 “저러다 죽이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저러다 죽일’만큼 심하게 구타하는 것이다. 수훈선수는 머리를 감싸쥐고 도망다니다가 쓰러져서는 몸을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매를 감당한다.


구타 세레모니는 꼭 끝내기 할 때만 나오는 게 아니다. 경기 내내 나온다. 타점을 올렸거나 홈런을 쳤거나 했을 때. 엉덩이를 툭 쳐주거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선수도 있지만, 머리통을 세게 때리는 선수들이 많다. 자기가 홈런 쳐서 얻어맞을 때 괴로운 표정을 짓던 선수도, 다른 선수가 홈런 치면 복수하듯 패댄다. 축하가 아니라, 진짜 서운한 게 있어 패는 것 같다. 헬멧이 들썩거리고, 머리통이 뒤흔들리고, 그 충격으로 선수의 얼굴이 출렁거리는 것까지 카메라는 잡아낸다. ‘잘 하면 머리를 얻어맞아야 한다’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폭력적인 세레모니다.


구타로써 축하하는 종목은 야구밖에 없는 듯하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헬멧이라는 보호 장비가 없어서인지 구타 세레모니가 없다. 축구에서는 껴안고 올라타고 그러기는 하지만 때리지는 않는다. 진짜 미워서 패는 것 같다. 헬멧을 쓰고 있으면 안 아픈가? 카메라에 잡힌 표정으로 봐서는 되우 아픈 것 같은데, 그 아픔을 주고받는 행위가 연일, 극적인 점수가 날 때마다 계속되는 것이다. 지난 32년간 구타 세레모니로 중상을 당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구타 세레모니가 관행이 된 것은 생중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송은 선수들에게 볼거리(정도 이상의 행위)를 은근히 강요한다. 방송사와 선수들은 경기장에 모여 있는 관중보다 시청자들을 더 의식했다. 방송시대 이전에는 적당히 조용히 넘어갈 끝내기 상황이 모조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거나, 올림픽메달을 따내는 장면처럼 스펙터클해진 것이다. 방송사는 그런 장면을 원했고, 선수들은 알아서 카메라가 원하는 과도한 장면을 연출해냈던 것은 아닐까. 폭력을 말리기나 나무라기는커녕 무슨 액션영화처럼 찍어대고 열광하는 방송, 참 가관이지 않은가.


1등한 자에게, 상 탄 자에게, 시기심과 질투심 없이 순전히 축하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손바닥을 ‘짝!’ 하는 것까지는 순수한 축하이지만, 머리통을 후려 때리는 것은 시기심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구타는 선배들의 민망한 심리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후배가 홈런을 치고 들어올 때 후보신세인 선배는, 경기를 망치고 있었던 선배는, 사랑하는 후배에게 축하를 가장한 구타라도 해야 속이 풀렸을 테니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여러 사람이 한 명을 때리면서, 때린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고, 맞는 사람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행위가 ‘빵’이다. 졸업식 때 후배들이 선배에게 베푸는 폭력, 군 제대할 때 후임병들이 제대병에게 베푸는 폭력은, 하나 같이 무슨 빵으로 미화된다. 야구의 구타 세레모니는 생일빵과 흡사하다. 빵에게 묻는다. 집단으로 때려주는 것이 축하란 말인가. 내가 잘하면 맞아야 하고, 남이 잘하면 때려줘야하는가? 내가 맞는 것도 당연하고, 내가 때리는 것도 당연한가?


선수들이 결정적인 찬스에서 못할 때, 저 선수가 지금 덕아웃에 들어가서 구타당하기 싫어서 일부러 어이없는 짓을 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못했다고 때리는 것은 본 적이 없으니까.
여자아나운서가 물을 집중적으로 얻어맞았고, 피디가 격하게 감전사고와 선수들의 인성을 지적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물을 수훈선수만 얻어맞고, 아나운서에게는 조금만 튄 정도였다면, 아무도 물세례를 지적하지 않았을 테다. 그 물 난리 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터뷰중인 선수에게 물을 뒤집어 씌우는 세레모니는 없어졌다.


구타 세레모니도 그런 특별한 사건이 필요하단 말인가? 헬멧 질이 좋아서인지, 동료선수들이 아무리 세게 주먹으로 방망이로 야구공으로 때려도 수훈선수는 뇌진탕 한 번 걸리지 않고 튼튼했다. 떼로 달려들어 발로 차고 깔아뭉개도 이제까지 크게 다친 선수는 없었다. 그러나 크게 다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세레모니 도중 단 한 명의 선수라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면 구타 세레모니는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사후약방문 공화국답게! 하지만 그 희생양이 되는 선수는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런데 류현진과 추신수 때문에, 희생양을 기다리는 듯한 구타 세레모니는, 더욱 기승을 부릴 듯하다. 미국 기준을 세계적인 표준으로 인식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이다. 미국야구도 우리나라랑 별다를 바 없이 구타 세레모니를 펼치는 것이었다.


물세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했다! 우리나라 A선수는 양동이로 퍼부었는데, 미국선수는 쓰레기통으로 퍼부었다. 그걸 보고 우리가 A선수 물세례 사건 때 너무 심했나 반성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물세례는 감전사고 행위를 유발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라는 인식을 망각하고, 미국은 저렇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우리는 참 작은 일에 난리를 피웠구나, 아이 부끄러워! 명백히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하니까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여간 추신수 선수가 끝내기 홈런 치고 동료들에게 얻어터질 때, 나는 비명을 질렀다. 양키들도 똑 같잖아! 살살 패라. 우리 추신수 몸 다치면 누가 책임질 거야. 연봉 수억원짜리 선수들의 (축하행위로 위장된) 집단폭력을 보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는 시인 백상웅씨가 집필합니다.

 


김종광 소설가
1998년 계간 <문학동네>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해로가」 당선.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처음의 아해들』, 장편 『똥개 행진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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