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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에 주목한다
나는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에 주목한다
  •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13.11.11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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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오래 방치된 고서의 특징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손에 드는 순간 미세 먼지가 풀풀 날립니다. 표지는 반쯤 떨어져 나가고, 더럽다 못해 시커멓기까지 합니다. 책장은 해지고 찢어진 데다 곳곳에 벌레를 먹은 자국인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이 묻어 있습니다. 이상한 냄새도 납니다. 펼쳐보기가 두려울 정도입니다.


이런 책들이 정말 골동품으로서의 값어치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겉모습이 볼품없더라도 아주 오래되거나 희귀한 책이라면 가치가 있을 텐데, 대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런 책들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데다 흔하다 못해 발에 채일 지경입니다. 혹시 모르니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에서라도 감정을 받아보겠다구요? 고서 수집가들은 이런 책을 ‘섭치’라고 부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섭치’라는 말은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 변변하지 아니하고 너절한 것”이라고 돼 있군요.


겉모양이라도 온전하면 사극의 소품이나 전통 주점의 인테리어 용품으로 쓰일 수 있을 텐데, 지저분하면 그것마저 어렵습니다.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이런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쓰레기 고서는 紙工藝를 하는 분들이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종이 질이 나쁘다지만 그래도 手製 한지인 데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어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쓰레기 고서는 정말 그렇게 쓸모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서를 찾아다니다보면 책더미 속에서 오래되고 희귀한 고서를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이런 책들이지요. 그런데 왜 이런 책들이 이렇게 흔할까요? 그야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이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많은 사람 곁에 있었던 책들은 분명 우리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옛사람들이 남긴 글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고서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서에 대한 저의 지식은 몹시 부족합니다. 고서를 접할 기회야 많지요. 서울대 규장각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처럼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고서 소장 기관에서 소중히 보관하는 고서의 내용을 연구하는 것도 제가 하는 일입니다. 임금님이나 보던 책을 만지고 읽어본 덕택에 아는 것도 없으면 눈만 높아졌지요.
그런데 희귀한 책만 관심 있게 보던 제가 우연한 기회에 쓰레기 고서를 잔뜩 얻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팔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이 책들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한참 동안 이 책들을 들여다보니, 희귀한 고서가 들려주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소개하는 글을 엮으려 하는 것입니다. 제목은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이라고 하겠습니다.


‘反亂’은 무엇일까요? 사전에는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해 나라 안에서 정권을 차지할 목적으로 벌어지는 큰 싸움”이라고 돼 있군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반란은 정권 다툼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民亂에 가깝습니다. 농사지으며 조용히 살아가던 백성이 쟁기와 낫을 들고 민란을 일으킨 까닭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조금 나은 대접을 받고자 했을 뿐입니다.


쓰레기 고서가 희귀한 고서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고서가 항균 방습 시설을 갖춘 도서관 귀중본 고서실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요. 그곳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고서는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희귀한 고서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쓰레기 고서는 지금도 찢기고, 불타고, 썩고, 버려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습니다.


저도 단지 쓰레기 고서들에게 조금 나은 대접을 해달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물론 희귀한 고서를 꼼꼼히 연구하고 제대로 보존해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쓰레기 고서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래도 저는 쓰레기 고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변변치 않은 존재로 취급받다가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그 모습이 어쩌면 저를 비롯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민란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대개는 권력과 폭력에 굴복하기 마련입니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도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민란의 결과가 그러하듯이, 쓰레기 고서들을 향해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이 글은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쓴 책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한 인문학자의 섭치 정탐기』(글항아리 刊)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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