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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 안 된 ‘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신정철 서울대ㆍ교육학과
  • 승인 2013.11.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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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미래의 대학’ ① 대학 환경의 변화: 고등교육 대중화와 대학교육

11월 18일자(708호)부터 ‘미래의 대학’ 연재를 시작한다. 고교 졸업생의 약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고등교육 대중화’ 단계를 맞고 있는 지금,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대적인 ‘대학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다. ‘대학교육 혁신’의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만이 아니라 주요 선진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오늘날 대학은 어떤 처지에 있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교육행정을 경험하고 주요 선진국 학자들과 고등교육 분야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신정철 서울대 교수(교육학과)가 여섯 차례에 걸쳐 ‘미래의 대학’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는다.

‘미래의 대학’ 연재 순서
1. 대학환경의 변화① 고등교육 대중화와 대학교육
2. 대학환경의 변화② 경제위기와 대학재정
3. 후기 대중화시대 대학의 딜레마, 연구와 교육
4. 후기 대중화시대 대학의 정체성
5. 대학시스템 개혁방안
6. 미래의 대학과 교수의 연구

지난 10월 셋째 주 서울대에서 제1회 아시아 교육정책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5개국 10여 명의 학자들이 모여 아시아 교육 정책 전반을 논의하는 장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이들 국가의 고등교육 대중화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이들 아시아 5개국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 등록률을 보여주는, 세계적으로 고등교육 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번 포럼에 참석한 학자들은 이들 국가들이 너무 급하게 대학교육을 확장한 나머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했다.

대학의 발전 과정을 트로우(M. Trow)는 엘리트, 대중화, 만민고등교육 단계로 설명한 바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만민고등교육이라는 용어보다는 후기대중화(post-massification)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그렇다면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대학에 어떠한 의미를 던져 주는가? 대학교육의 대중화(대중화 및 후기 대중화를 포함한다)는 고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대학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엘리트 대학교육 시대에는 대학에 입학할 수 없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과거에는 대학교육을 받을 수 없는 수준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교육이 대중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 수가 늘어나고, 대학 재학생 수도 급격히 증가한다. 결국 대학들은 단순히 학생을 선발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공격적으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기 시작한다. 그 방편의 일환으로 대학들은 새로운 건물을 짓고, 학생을 위한 편의 시설을 확충하는 등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전히 '엘리트 대학'의 환상에 빠져 있는 교수들

그러나 대학들이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학생 교육이다. 즉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교수법을 바꿔야 한다. 엘리트 대학 시절의 경우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와 관계없이 대학에 재학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면, 대중화된 대학의 경우 학문적으로 다소 준비가 미흡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맞는 교육과정 개발, 교수법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여전히 엘리트 대학의 환상에 빠져있다. 교수들을 만나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흔히들 “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교수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공부 잘 했는데….”라는 얘기를 한다. 지나친 단순화이긴 하지만 이것은 대학교수들이 학생교육에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일단을 잘 표현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나름대로 대학교육의 대중화에 철저히 대비해 온 편이다. 일찍부터 학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교육과정 개편, 교수법 개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래서 나온 개념들 중의 하나가 학부 연구(undergraduate research)와 서비스 러닝(service learning)이다. 학부연구는 연구를 지향하는 교수들의 일반적인 성향과 좋은 교육이 필요한 학부교육을 접목시켜서, 학부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키우면서 교수들의 연구에 대한 관심을 접목시킨 것이다.

서비스 러닝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연계시킴으로써 봉사활동을 통해 대학의 교육을 학생들이 내면화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또한 대학들은 학생들의 교육활동과 학습의 진척을 계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내용을 분석해 대학의 의사결정에 반영하기 위해 기관연구(institutional research)라는 조직을 출범시켜 대학행정의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을 학술활동의 핵심적 활동으로 인정한 미국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대학교수들이 지나치게 연구에만 역점을 두지 않도록 하고, 교육에도 많은 비중을 두도록 유도하는 미국 대학의 교수평가 방식도 큰 기여를 했다. 특히 1990년에 발간된 Ernest Boyer의 「Scholarship Reconsidered」라는 미국 카네기재단의 보고서는 대학교육의 평가 정책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보고서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에 못지않게 지식의 응용과 교육을 학술활동의 핵심적 활동으로 인정함으로써, 모든 교수들이 새로운 지식의 발견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 대학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교수평가에 있어서 연구성과와 더불어 교육성과를 함께 고려하도록 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대학교육의 대중화가 빠르게 진행된 미국 대학들의 대응 방식이다. 그런데 미국보다 고등교육 진학률이 높고, 대학교육 대중화 속도가 훨씬 빨랐던 우리나라 대학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교육’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신정철 서울대ㆍ교육학과
지식생산과 사회발전, 고등교육의 세계적 변화와 발전 방향에 관심이 많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2006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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