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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關門 혹은 언덕의 도시
이민자들의 關門 혹은 언덕의 도시
  • 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 승인 2013.11.20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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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이야기 5_ 지중해의 항구, 마르세유


▲ 마르세유 구항구 전경

구 항구에서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 화가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손에 잡힐 듯 멀지 않은 곳에 크지 않은 섬들이 마주하고 있는데 알렉산드르 뒤마의 『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요 무대가 된 이프섬을 만나게 된다.
지중해를 향한 문이라 일컫는 커다란 사각형 문은 이민 온 마그레브인들이 고향인 북아프리카를 그리워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마르세유는 지중해 해안가에 위치한 프랑스의 항구도시다. 2천600여 년 전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 포세아에 출신 선원 프로티스와 선주민인 리구리아 족장의 딸 집티스와의 혼인으로 세워진 고대 도시 마살리아 전설이 회자되는 곳이다.


당대 마살리아의 사회와 언어 상황은 고대 그리스와 라틴 지리학자 및 저술가들이 기록한 텍스트 사본이나 번역본에 대한 비교와 비판적 분석으로 주변 민족들 간의 국제관계에 대해서도 알려져 왔다. 이후마살리아와 인근 올비아 드 프로방스 지역을 발굴하면서 금석문, 도기, 집터 등의 역사고고학적 자료로 골(Gaule), 마살리아, 나르본에 정착한 민족들과 그들 사회의 구성 및 전통문화습속을 알게 됐다.


마살리아 도시명에 대한 기원으로 크게 세 가지 가설이 있는데 켈트 어휘인 Mas Salyorum(Salyen족이 머무르는 곳)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정착한 그리스인들이 바위와 작은 만으로 둘러싸인 해변의 지형에 대한 의미로 불렀을 것이라는 것과 셈 어인 Matsal(보호령)의 어원설이 존재한다.

2만7천 년 전, 인류 最古의 해저동굴벽화
2만7천 년 전 빙하시대 인류 最古의 해저동굴벽화가 그려져 있는 코스케 동굴이 마르세유 인근에 자리하고 있고 6천 년 전 신석기 유물이 마르세유의 생 샤를르 역 주변에서 발굴됐을 정도로 선사시대의 도시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자 구디는 이와 관련해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발견된 동굴벽화에 그려진 예술과 종교의 흔적이 지중해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마르세유는 중요 상업 무역 항구로서 지중해를 정주한 많은 세력들인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레반트인들의 문화교류의 장으로 각광받았다. 가깝게는 이탈리아 북부의 에트루리아와 저 멀리 에게 해 동부의 로도스 섬 등과 교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라본의 기록처럼 그리스인의 상업루트와 로 마르세유에는 여러 이민족들이 모여 들었고 동·서방의 언어가 교류해 문화접변을 이룬 지점이기도 하다. 마살리아는 서쪽으로 이베리아와도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리구리아어권, 켈트-리구리아어권, 이베리아-켈트언어권으로 나눠지는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중세에는 북아프리카의 유럽 진출로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조우한 길목으로, 이후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노래 「라 마르세예즈」가 프랑스 북동부스트라스부르에서 흘러온 곳으로 마르세유를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 산업화 도시의 선두주자로 우뚝 솟아 해외 식민지 건설에 박차를 가한 프랑스의 제 1항구이자 제2의 대도시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의 규모에 비해 재정비가 시급한 거리들과 노후화된 역사문화 건물들로 현대성보다는 낙후된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이어 온 마르세유의 지중해 색채는 199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결정된 유로지중해(Eurom´editerran´ee) 도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도시 재생이라는 재도약의 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주변 도시들과 학문, 경제, 문화 등에서 협력하고 동반 성장을 꾀하고 있으며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가 그러했듯이 마르세유 도시 재건 계획에는 저명한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도시인문 건축, 고용, 경제, 문화의 효과를 창출하는 도시계획으로 도시 일부 거리의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각형 모습으로 굳건하게 서 있는 ‘지단의 벽’
마르세유가 시작된 곳 舊港(Vieux-port)에는 포세아에 도시 기원을 설명하는 석판이 정박한 자그마한 배들을 반기고 있고 기원전 5세기 지중해를 건너 온 도기, 주석 등의 교역이 있었던 흔적으로 로마의 상업 보세 창고 자리에 박물관이 있어 갈로-그리스와 갈로-로마의 복합문명을 새겨놓고 있다. 상업교역에 있어서는 전체 골을 지나서 브리타니아까지 지중해 생산물들이 교류됐다고 알려져 있다. 구 항구에서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 화가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손에 잡힐 듯 멀지 않은 곳에 크지 않은 섬들이 마주하고 있는데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요무대가 된 이프섬을 만나게 된다. 지중해를 향한 문이라 일컫는 커다란 사각형 문은 이민 온 마그레브인들이 고향인 북아프리카를 그리워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한편, 마르세유는 이민자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는데 나폴레옹 시대에 이집트에서 건너 온 기마친위대원, 19세기에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이민 온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말타, 레반트인의 보금자리였다. 1960년대 마그레브와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에서 프랑스로 옮겨올 때 가장 먼저 닿는 곳, 마르세유는 진정한 지중해 이민자들의 관문인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마르세유 출신으로 마그레브 이민자 아들의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인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의 대형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에 지단의 벽이라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지중해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오각형의 모습으로 굳건하게 서 있다.

언덕의 도시이기도 한 마르세유는 지중해를 향해 배를 타고 나가는 선원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도시 제일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 수호 성당을 로마-비잔틴 양식으로 건축하여 모자이크 장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파리에서 지중해 TGV 노선을 타고 도착하는 지중해의 항구, 마르세유는 여러 토착적인 요소와 異문화가 혼효를 이룬 지중해문명의 보물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 포세아에의 도시로 에트루리아인과 리구리아인, 골 인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이뤘던 곳,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에 개입됐으며 이베리아, 나르보네즈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던 곳, 지중해 무역항구로 지중해 인들을 불러 모았던 곳, 이렇듯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민자들로 넘쳐 났던 마르세유는 오늘날 유럽의 문화 수도로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고 환대하는 호의를 갖춘 도시다.

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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