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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김동규 동명대·언론광고학
  • 승인 2013.11.30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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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광장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넓고 웅장한 곳이 트라팔가입니다. 분수가 솟구치고 시민들이 삼삼오오 담소를 즐기는 이 광장에는 동상과 조각상이 여럿 있습니다. 내셔널갤러리를 바라보며 오른 쪽에 우뚝 서있는 것은 넬슨제독 동상. 한쪽 눈과 팔을 잃은 몸으로 나폴레옹 침략으로부터 대영제국을 지켜낸 영웅입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이순신에 버금가는 그가 목숨 잃은 전장이 트라팔가 해협이니, 넬슨을 기념하는 동상이 서있을 법 합니다.


하지만 영국을 다시 쳐다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인물상이 왼쪽에 대칭으로 놓여있습니다. 이 대리석상은 여느 동상과 모양새가 다릅니다. 좌대 위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린 여인이 벌거벗은 채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조금 특이합니다. 양팔이 없고 넓적다리에 발이 달려있으니까요. 해표지증(Phocomelia)이란 유전장애를 안고 태어났으나 마침내 구족화가와 사진작가로 성공한 사람. ‘살아있는 비너스’로 불리는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가 아이를 임신한 모습입니다. 육체적 한계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악조건을 딛고 일어선 장애우를 나라를 구한 영웅과 동격으로 대우하고 있는 셈이지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칭해지며 근대 이후 악랄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던 국가. 급속한 복지 축소와 민영화, 노동조합 탄압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세계에 퍼뜨린 대처리즘의 나라 영국. 하지만 제가 트라팔가에서 그 조각상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또 다른 상념이었습니다. “저것이야말로 한 나라의 품격을 상징하는 것이다.”라는 부러움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5년간 MB정부의 폭거에 대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막대한 혈세 퍼부어 국토를 파헤치고 물줄기를 뒤튼 4대강 사업이겠지요. 하지만 정책의 영속성 측면에서 못지않은 失政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미약하게나마 뿌리내리던 소외계층 복지 기반에 대한 전면적이고 악의적인 붕괴 말입니다.


MB 집권 시기 GDP 대비 국가 공공복지부담 비율은 OECD회원국 평균(2003년~2012년)의 3분의 1에 불과한 7.8퍼센트였습니다. 소득불평등 극대화 속에서 자살률이 세계 1위로 치솟았지요. 가난한 산동네마다 아이들 공부방이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았고, 생활불안정과 소득감소를 못 견딘 휠체어 장애우들이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최약자에 대한 이같은 노골적 박대는 ‘가난한 게 죄’라는 참담한 인식을 널리 퍼트리는 데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복지정책 퇴행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비판과 분노는 당연한 일. 이를 모면하고자 대선국면에서 박근혜 후보는 복지 이슈를 공격적으로 선점했었지요. 하지만 ‘제 버릇 개 줄까’란 속담이 한 치 오차 없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4대 중증질환 본인부담금 100% 보장, 65세 이상 전체 노인 대상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은 애교에 불과합니다.


세수 부족이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법인세 인하 조치를 되돌리는 일은 절대 없다고 강조합니다. 막대한 초과이윤을 축적한 재벌과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도 한사코 거부합니다. 상식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증세 없는 복지’만 염불처럼 외우면서. 사정이 이러하니 남은 4년 임기 동안 OECD 최하위 수준 복지제도의 개선 가능성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입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갈수록 그물코가 뻥뻥 뚫릴 것이고 말입니다.


지난 2009년 10월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 황금빛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왜 그 시점에 그리고 그 자리에 전국 수백 개 초등학교 운동장 한 켠에 먼지 뒤집어쓰고 있던 임금 동상을 새로 건립하는가에 대한 의심이었습니다. 혹시 MB는 높은 좌대 위에 앉은 자애로운 옛날 옛적 임금님 입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너희들 없는 백성들이야 그저 나라의 은혜에 감읍해서 살기만 하면 되느니라.” 동상을 통해 그러한 암묵적 記意를 만천하에 뿌리내리고 싶었다고 생각하는 게 과도한 망상이기만 할까요.


그렇게 생각이 달려간 곳에서 저는 이런 꿈을 꿉니다. 나라 구한 장군과 백성 사랑한 임금 동상 사이에 새로운 동상이 세워지는 장면을.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참혹한 노동조건을 깨부수기 위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기 몸을 불사른 사람.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라는 아픈 꿈을 꾸었던 스무 두 살 청년. 바로 전태일의 동상이 우뚝 서는 날을 말이지요.


그 순간이야말로 이 땅에서도,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새로운 가치가 인정되고 존중이 시작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 믿어 봅니다. 그날이 오면 비로소 저는 트라팔가광장에서 엘리슨 래퍼를 보면서 느꼈던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동규 동명대·언론광고학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카피라이팅론』, 『미디어사회(공저)』,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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