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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여기 ‘지상의 낙원’이 펼쳐져 있도다!
보라, 여기 ‘지상의 낙원’이 펼쳐져 있도다!
  • 권미란 부산외대 교수(스페인어과)
  • 승인 2013.11.3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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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이야기 6_ 태양의 도시, 말라가

 

▲ 히브랄파로 성에서 바라본 말라가 사진 wikicommons 출처

안달루시아 지방은 각양각색의 현란한 모양의 문화가 모여 있다. 그 안에서 말라가는 개성이강한 다른 7개의 자치도시들과 더불어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건축미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외적인 아름다움의 뒤에서 풍겨 나오는 내면의 세월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말라가에는 ‘유럽의 발코니’, ‘제2의 나폴리’, ‘지상의 낙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세계적 다양성과 다른 문화들과의 혼합으로 풍요로운 도시 말라가는 스페인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자치주에 속하는 자치도시이다. 인구로 따진다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돼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두 번째다. 경제적 중요성으로 따진다면 스페인에서 4~5 번째로 손꼽히는 자치도시이자 지중해를 끼고 세워진 항구도시이다. 또한 이곳은 유럽인들이 오랜 기간 머물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손꼽힌다. 도시를 끼고 300km가 넘는 ‘태양의 해변’은 영국령 지브롤터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프랑코 독재시절의 1960년대, 주변 국가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관광객들이 말라가로 몰려오면서 외교적·경제적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위기를 극복하는 말라가의 의지는 오늘날 스페인을 세계 으뜸의 관광국가로 당당하게 우뚝 서게 만들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각양각색의 현란한 모양의 문화가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안에 말라가는 개성이 강한 다른 7개의 자치도시들과 더불어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건축미를 뽐내고 있다. 그러나 외적인 아름다움의 뒤에서 풍겨 나오는 내면의 세월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어렵고 험난한 역사가 말해주듯,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서고트, 이슬람 등 끊임없이 시대에 따라 외세가 개입했다. 그러나 이베리아의 정복자들은 패배자의 문화를 파괴하기 보다는 조화를 이루며 함께 공존하고자 했다.

최대의 자유인간이 되는 도시
안달루시아자치주 정부는 최근 10여 년 동안 말라가 도심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유물들이 빠르께 거리와 시스떼르 거리에서 걸쳐있음을 알게 된 후, 말라가를 역사지구로 선포했다. 수 세기에 걸친 여러 민족들의 문화적, 예술적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말라가(M´alaga)라는 명칭은 기원전 8~6세기 사이에 교역에 뛰어난 자질이 있는 페니키아인들이 ‘소금절인 생선 조각(Mal´aka)’을 원주민들과 거래하면서 붙여졌다. 카르타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로마제국은 말라가를 일찍이 로마화 했다. 아우구스트 황제 재위 시절 건립된 원형극장은 오늘날 야외음악회나 전시회 등의 문학행사가 열려 관객들은 잠시나마 고대 로마시대의 분위기속에서 황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711년 북부 아프리카의 우마이야 왕조의 후손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나타난 이후 안달루시아지방을 포함한 아랍인들의 지역을 ‘알 안달루스’라고 불렀다. 스페인 북부 피레네 산맥을 걸치는 지역은 기독교 왕국들의 수중에 있고 나머지 지역은 알 안달루스가 군림하는 대결구도는 1492년 기독교인들의 이베리아반도 재정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때까지 상시 긴장감이 팽배한 전쟁체제 속에 유지됐다.


말라가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채 5개의 큰 성문을 통해 내·외부를 소통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성벽 안에는 요새와 항구를 가로지르는 구아달메디나 강이 흐른다. 이 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구시가지이고 서쪽은 신시가지로 나눠진다. 구시가지에 위치한 알카사바 요새와 히브랄파로 성은 11세기와 14세기에 걸쳐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보존상태가 양호해 여전히 진한 이슬람의 매력을 자아낸다. 알카사바 요새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보다 규모가 작지만 아랍예술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성이다.

안에 들어서면 분수와 수로가 나있는 잘 가꿔진 정원들이 펼쳐진다.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옛날 우리가 험준한 지형 위에 산성을 쌓았듯이 아랍인들도 높은 산등성이에 히브랄파로 성을 건립했다. 왕궁 안 뜰과 방들은 아랍 스타일로 동양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히브랄파로 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알카사바를 나와서 옆에 계단으로 이루어진 오르막길을 이용해야 한다. 히브랄파로란 용어는 원래 옛 페니키아인 지역에 가로등이 있어, 아랍어인 Yabal(힐)과 그리스어 Faruh(등대)가 합성되어 유래됐다.

아랍어로 ‘산에 있는 등대’란 의미를 지닌다. 히브랄파로 성 정상에 오르면 지중해 푸른 바다와 말라가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르는데 고생한 만큼의 보람이 느껴질 것이다. 이 두 곳은 이슬람 조상이 말라가에 내려준 아랍문화유산이다. 아이러니하게 성과 요새 옆에는 로마원형극장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승리자의 너그러움 때문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지만, 실리를 추구하는 아랍인들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외곽지역에는 아랍인들의 규제를 덜 받는 독립적 공간으로 제노바, 유대인 등의 주거지역이 있었다. 한때 이 유대인 지구의 철학자·시인으로 알려진 신플라톤주의자 솔로몬 아이븐 가비롤(1026~1070)은 자신의 고향을 ‘낙원의 도시’라고 극찬했다. 그가 언급한 이 ‘낙원의 도시’는, 1977년 비센테 알레이산드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말라가의 명성을 또다시 세계에 알렸다. “낙원의 도시여, 너는 하늘 아래와 물위와 또 하늘 사이에서 지배하는 자와 같아라.”

이슬람 마지막 버팀목의 사투, 3개월간의 봉쇄
시구에서 엿보이듯이, 시인의 고향 말라가는 최대의 자유인간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시인이 ‘지상의 낙원’으로 느낄 만큼 정신적, 종교적 면에 있어서 차별 없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이슬람의 합리적인 사고로 알 안달루스 안에서는 아랍인과 유대인,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함께 자유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압데라만 3세에 의해 창설된 코르도바의 칼리화토(929~1031)는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정치적, 군사적 혼돈을 겪으면서 알 안달루스를 40여 개의 타이화 소왕국으로 분리시켰다. 말라가 소왕국은 평화의 분위기에 안주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독립된 운영체제 안에서 부와 세력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중 왕이 사망하였고, 도시의 모든 권한이 그라나다 왕국에게 이양됐다. 가톨릭 군주들은 재정복전쟁에서 이슬람의 마지막 왕국인 그라나다를 지원할 수 있는 의지가 강하고 진취적인 기질을 가진 말라가를 간과하지 않았고 우선적으로 굴복시키고자 했다.

 
말라가는 만일의 전시사태에 대비해 서쪽부터 시작해 수십 개의 망루를 세웠다. 1487년 주민들 모두가 전사가 돼 6개월 동안의 전쟁을 치루면서 주변의 지원 없이 물과 식량 반입이 금지된 채 3개월 간 버텼다. 시민들은 절망 속에서 배고픔, 목마름, 환자, 시체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게 되자, 지칠 대로 지친 말라가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재정복전쟁에서 가장 길었던 봉쇄작전이었다. 기독교 왕국들이 말라가와 같은 주요한 항구도시를 함락시켰다는 소식은 그라나다 왕국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말라가는 이슬람을 사수해줄 수 있었던 마지막 희망이었고 버팀목이었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국토회복을 위해서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승전보를 울리며 도시 안으로 들어온 페르난도 가톨릭 왕은 패배자들에게 명예스러운 항복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며 무자비한 징벌을 적용시켰다. 스페인이 통합된 이후 말라가는 기독교정복자들의 의향에 따라 경제, 사회, 종교 등 다방면에 있어서 변해갔다. 군대를 뒤따라 들어온 종교기관들의 노력으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전개를 펼쳐냈지만, 8세기 동안 언어, 관습 등에서 이슬람과 기독교 두 개의 상이한 문화가 함께 어우러졌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울 수는 없었다. 스페인의 관리 행정을 관용보다는 비타협적인 자세로 보수적인 관점에서 엄격하게 무장한 결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독창적인 말라가이다.

 

권미란 부산외대 교수(스페인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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