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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을 앓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몸’ …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물음’을 시작하라
실어증을 앓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몸’ …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물음’을 시작하라
  • 한순미 전남대 호남학연구원HK연구교수
  • 승인 2013.12.09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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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 오월의 기억을 말하기

 
오월의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끝나지 않는 길처럼, 끊임없이 말하고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바로 오월의 거리가 획득한 장소적 의미이기도 하다. 오월의 거리를 단순하게 단 한 번의 사건이 일어난 공간 정도로 기록할 수 없는 것처럼, 그날의 기억 또한 몇 줄로 요약돼서는 안 된다. 그날이 남겨준 슬픔과 분노, 쓸쓸함과 무력감, 고립감과 외로움을 담아낼 수 있는 말이 있을 수 있을까. 그 거리를 이야기하려는 끝없는 욕망은 우리 시대의 슬픔, 분노,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울음도 아닌, 노래도 아닌, 이야기도 아닌, 차라리 웅얼거림에 가까운 그 소리는 오월광주를 지금 여기로 불러낸다.


“뭉치자, 막 이런 것도 아니에요. 여기만 딱 고립돼서 언제 죽어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위기의식 같은 거였지. 이 나라에서 누가 죽어도 아무도 모르고 딱 통제된다는 걸 느낀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분노가 있었던 것 같아. 딱 여기만 단절되고 우리만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라는 것.”(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기획, 『광주, 여성』, 2012)


산산이 흩어져버린 몸의 조각들을 모으면서 느꼈던 설움, 우리만 죽을 것 같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 느꼈던 고립감, 이 슬픔이 분노와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금남로를 떠도는 웅성거림은 조각난 몸을 주우면서, 외롭게 갇혀 있어야 했던 광주사람들의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뼈아픈 물음과 노래가 시작된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내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어디로 갈까, 내 노래는 어디로 갈까…… 아아아아아이이잉리리리리리링이이이이오오오이이이리리리리”(공선옥,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2013)
그 노래는, 그러니까, 80년 오월의 거리에서 시작됐고 지금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이름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과 살아남은 자들에게서 흘러나온 그 노래는 오월의 거리를, 인간의 삶을 무참하게 짓밟은 무한의 시공간과 만나게 한다.


금남로와 전남도청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이야기-책은 뚜렷한 언어와 문자가 아니라 말줄임표와 쉼표로 된 여백으로 돼 있다. 그 여백은 오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이름도 없이, 아무런 소용도 없이, 다만 묵묵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주변 사람들의 숨결과 표정이 자리한 곳이다. 80년이 한두 해가 지난 어느 날의 풍경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줄임표와 쉼표로 된 ‘여백’
“오월만 되면 그 표정을 잊을 수 없어. (…) 전남도청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서 지나가면 전일빌딩, YMCA, 금남로 길 주변에 사람들이 건물에 붙어서 서 있는 거야. 그런데 아무런 표정이 없어. 누가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겠냐. 나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 선동하는 자도 없어. (…) 그런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금남로를 바라보면서 양쪽으로 도열하는 듯 침묵한 채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 굉장히 무서운 장면이었지.”(정경운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당시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84학번, 2013년 12월 4일 인터뷰)


‘그런데’, ‘그런데’, 이 반복되는 접속사에서 오월의 표정 하나가 나타난다. 침묵과 기다림, 그것이 그날이 우리에게 남긴 두 가지 표정이다. 금남로와 전남도청이 남겨 놓은 말줄임표와 쉼표, 그 여백의 공간은 ‘침묵과 기다림’으로 여전히 채워져 있다. 이질적인 감성이 충돌하면서 동거하고 있는 ‘무서운 장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한 흔적을 환기시킨다. 침묵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기다림을 절실하게 부른다.
옛 전남도청에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의 유구한 역사성과 80년 오월의 기억이 만나서, 오월 정신을 아시아로 넓히는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금남로와 전남도청으로 상징되곤 하는 오월의 거리는 단지 이곳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윤상원 등 들불야학 강학들이 투사회보를 제작해서 배포한 ‘카톨릭센터’, ‘녹두서점 옛터’, 시민군의 훈련장이자 편성지로 치안업무를 담당했던 곳인 ‘광주공원’, 오월항쟁을 문화로 승화시킨 예술공간 ‘민들레소극장’, 주먹밥으로 공동체 정신을 실현한 ‘양동시장’ 등 오월은 인권, 민중, 의향, 예술, 남도 등과 접속하면서 여러 모양의 ‘별자리’를 그린다. 그 중에서 ‘대인시장-오월 어머니집-광주 YWCA옛터-구 전남도청-광주공원 광장-양동시장’까지 펼쳐진 ‘오월민중길 주먹밥 코스’는 끈끈한 연대와 대동의 공간을 상징한다(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장소마케팅연구센터/5·18기념재단 기획·제작, 『광주의 오월을 걷자』, 2013).

‘大同’ 별자리―연대로서의 아시아 그리고 문화
오월을 기억하는 공간들은 5·18민주광장 주변에 자리한 ‘사직공원’, ‘광주극장’, ‘대인시장’ 등과 함께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앞으로 금남로와 전남도청 일대는 ‘문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광주를 재구성함과 동시에 아시아 여러 국가들과 연대하는 장이 될 것이다.

어떤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걸어간 길과 역사를 다시 걷고 새롭게 펼치는 것이다. 옛 전남도청에서 금남로로 뻗어 있는 길은 동학군과 의병, 얼룩무늬 군인들과 시민군들이 걸었던 길이며, 그 길은 지금 아시아문화와 접속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생성의 무대다. 그곳을 걷는다는 것은 시민과 군인이 남긴 발자국을 하나씩 지우면서 걷는 것이고 동학, 의병, 광주학생운동 등 오월 이전과 이후의 역사를 새롭게 쓰면서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듯 오월의 거리는 기억 투쟁의 공간을 넘어서 문화적 주체가 적극적으로 개입, 실천, 기획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오월의 거리에서 약속할 수 있는 미래는 민주, 인권, 평화 실현을 통해 궁극적으로 無等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구나 이 길 위에 서면,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무엇인가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오월의 거리 금남로와 전남도청이 우리 시대에 요청하는 현재적 의미이자 물음이다.


5·18민주광장을 중심으로 갈래갈래 뻗은 길들은 이제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몸과 접속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오월의 거리는 관념이나 추상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는 공간, 국경을 넘어 아시아, 세계와 접속하는 연대 공간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의 물음을 시작하라.


한순미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HK연구교수ㆍ한국현대소설
전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과 책으로는 「고통, 말할 수 없는 것」, 「나환과 소문, 소록도의 기억」, 『동시대인의 산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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