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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순수 고유어 ‘살’에서 연원 … ‘솟대의 땅’ 의미로 神宮있는 곳 지칭
신의 순수 고유어 ‘살’에서 연원 … ‘솟대의 땅’ 의미로 神宮있는 곳 지칭
  •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 승인 2013.12.1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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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16. 神市, 蘇塗, 서라벌, 서울의 어원을 찾아서

▲ (그림1-1)靑銅器鳥形劍把頭飾, 청동기시대, 길이 12.5cm, 대구 비산동 출토, 삼성리움 소장.

언어는 그 민족이 지닌 문화의 상징이며 표상이다. 언어는 오래된 집과 같이 삶의 역사 속에 이미지 층을 켜켜이 쌓으면서 그 시대를 표상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호는 상고시대 ‘神市’에서 오늘의 ‘서울’까지 민족역사의 문을 연 ‘터’에 대한 말의 변천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문징과 물징과 구징으로 그 원형질을 추적한다.

‘神市’의 의미와 독음
“古記에 이르되 옛날에 桓因의 庶子 桓雄이 있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人世를 탐하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三危太白을 내려 보매 인간을 널리 이롭게(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天符印 셋을 주어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桓雄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神檀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神市라 이르니 이가 桓雄天王이다.” (『三國遺事』 「紀異卷第一」, 이병도 역)
이와 같은 ‘神市’에 대한 『三國遺事』 의 기록을 보면, 神市는 환웅께서 터를 잡은 첫도읍지를 말한다. 규모의 차이를 떠나 오늘의 서울과 같은 성격의 땅이다. 神市에 대한 기존연구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① 신시는 그 두 환웅이 웅녀와 혼인해 단군을 낳고, 단군이 평양을 도읍지로 해 고조선을 건국할 때까지 고조선 종족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神市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신시는 神政시대에 도읍주위에 있던 別邑으로서 삼한의 蘇塗와 같은 神邑이었다는 해석. 둘째 신시는 지명이 아니라 인명으로서 환웅을 가리키며, 그것은 조선 고대의 국가들에서 왕을 뜻하는 ‘臣智’가 존칭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그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② 神市는 환웅이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붙인 이름으로 이곳에서 인간세상을 다스리며 교화한 곳이다. 신시를 訓讀하면 신이 모이는 곳을 의미한다는 설. (최남선, 「不咸文化論」, 『朝鮮及朝鮮民族』, 조선사상통신사, 1927)


③ 神市의 ‘神’은 桓雄으로 대표되는 天降族이 자신들의 신성성을 나타내기 위해 붙인 것이며, ‘市’는 환웅의 강림처, 집무처, 웅녀의 기원처로 설정된 곳이라는 설. (김창석, 「한국 고대 市의 原形과 그 성격변화」, <韓國史硏究> 99·100호, 1997)
④ 神市의 명칭에 주목해, 神市는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의 왕래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매개물이며, 두 세계간의 교류가 이뤄지게 하는 신성지역이라는 설. (서영대, 「단군신화의 의미와 기능」, <汕耘史學> 8, 1998)


⑤ 神市의 ‘市’를 神檀樹의 ‘樹’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해, 市를 ‘저자 시’가 아니라 수풀, 숲과 관련된 말로 풀이하며, 이와 같은 신성한 숲을 일러 불[市]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성한 숲’ 즉 ‘신불’이라고 읽어야 옳다는 주장. (신종원, 『삼국유사 새로 읽기(1)-기이편』, 일지사, 2004) 이상의 제설은 ‘神市’의 성격이 신정시대 별읍으로 삼한의 소도와 같은 신읍이었다는 견해에 모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 신종원 교수의 설이 필자의 견해와 부합되는 이론이므로 이에 좌단하고 부분적인 愚見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神市’의 의미와 기능 문제이다.


神市를 신의 강림처, 天君의 주석처, 제의가 행해졌던 신성지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神市를 別邑이라고도 하는 바, 초기엔 ‘神邑’ 또는 ‘神域’이었던 곳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신성성이 감소돼 별읍 수준으로 낮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찰된다. 神政時代의 부족국가가 성읍국가로 바뀌면서 천군의 지위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神市는 별도 지역에 샤머니즘 성격의 사당과 솟대를 세운 토착신앙의 잔재 형태로 남고 민속으로 수용돼 변천해나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神市’의 표기형태에 대한 해석이다.


神邑의 의미를 가진 터의 당시 이름을 일연선사가 ‘神市’로 표기한 것은 고유어를 향찰식으로 訓借音寫한 것으로 생각된다. 앞의 연재에서 보았듯이 한자어 ‘神’의 고유어는 ‘살 /설’이다. ‘市’는 신종원 교수의 탁견처럼 ‘저자 시’가 아니라, 터, 땅의 고어로 볼 수 있는 ‘블/벌[野]’이나 ‘신성한 숲’을 ‘市’(슬갑 불 / 사람이름 불-진시황 때 신하 서불) 字로 표기한 音寫다. 따라서 이 단어는 ‘ (神) + 불(市)’ 〉 사라〉 서라벌로 연철과 모음교체가 병행된 형태변화의 단어라고 추정한다. 이렇게 해석할 때 ‘神市’는 ‘徐伐 / 徐羅 / 徐羅伐 / 斯盧 / 斯羅 / 徐羅’ 등과 음가가 비슷한 친연성의 관계어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神市’를 고유어로 재구할 때 한자음 ‘신시’로 독음하면 안 된다. 반드시 [블(불) 〉 〉 살울 〉 셔울]로 훈독해야 올바른 독음이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만약 ‘市’자를 訓借한 ‘불’ 자로 읽지 않고 ‘저자 시’자로 읽는다면, 까마득한 상고시대에 이미 교역이 이뤄지는 시장이 존재했던 것으로 오인하기가 쉽다. 슬갑 불(市, 전서 )자와 저자 시(市, 전서)자의 자형은 전서체로는 확연히 다르지만, 해서로는 너무 비슷해 후인들이 오독한 것이다.


위의 ①에서 보듯이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神市’를 한글로 표기할 땐 전부 ‘신시’로 기록해 두었다. 물론 요즘 발음대로라면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위의 논리를 참고한다면 단군시대 ‘神市’를 요즘 독음대로 ‘신시’라고 발음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왜냐하면 ‘神市’는 한민족이 최초에 터 잡은 곳의 이름이기 때문에 거기엔 고대의 어떤 시원적 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神市’를 漢字語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고유어의 漢字訓借表記로 읽고 ‘   ’로 훈독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상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蘇塗와 솟대
소도와 솟대는 농경사회사, 토속종교와 비교민속사 쪽에서 지금까지 깊이 연구돼 왔다. 솟대의 기원에 대해서는 역사적 선후조사에 의해 고유민속기원설, 비교민속기원설, 북방문화계통기원설, 南方稻作문화기원설 등 제설이 제시돼 있다.
소도에 대한 기록은 『後漢書』, 『三國志』, 『晉書』, 『通典』 등에 전하는데, 그 중 『삼국지』 「魏書-韓傳」의 기록이 가장 자세하다.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중략) 귀신을 믿기 때문에 國邑에 각각 한 사람씩을 세워서 天神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天君이라 부른다. 또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이 있으니 그것을 ‘소도’라 한다. 그곳에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으로 도망 온 사람은 누구든 돌려보내지 아니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蘇塗가 경계표시라든가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소도는 한국사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소도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각처에 산재해 있으면서 농경사회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三國志』 「魏書東夷傳 - 韓」 條, 註釋25, : 『中國正史 朝鮮傳』 注釋(一), 국사편찬위원회, 1987, 310쪽) 이와 같은 소도의 오늘날 명칭은 다양하다. 솟대(황해도, 평안도), 솔대, 수살대(함흥지방, 강원도), 소주, 소줏대(전라도), 짐대(강원도), 별신대(경상도 해안지방)를 비롯해 神竿, 風竿, 長竿, 華表(柱) 등이 있다(이종철, 「장승과 솟대에 대한 고고민속학적 접근 試考」 『尹武柄博士回甲紀念論叢』, 통천문화사, 1984, 515쪽).


한편 솟대에 표출된 새는 靈媒로서 하늘과 인간의 연결기능을 가졌고 신간이 의미하는 수목, 산신숭배, 신탁의 잔영 및 天神, 鳥神에 대한 종교심성 등에서 다신적인 원시신앙복합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은 솟대의 사상적, 양식적 배경을 추측케 하는 자료가 된다. 오늘날 서낭대, 수살대, 서낭竿, 짐대, 진대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좁은 의미의 솟대는 境界神, 邑落神으로서 인간이 천신께 기구하는 기원의 통로이거나, 신의 계시와 신탁이 전수되는 神路 또는 신이 내려오는 下降處로서 이해된다. 그리고 神竿 자체는 그러한 의식을 구현하는 제1차적 神標이자 신성지역, 나아가서는 의식의 주관자인 天君의 권위를 대변하는 복합적 신앙 상징물이었다고 생각된다(이종철, 앞의 논문, 516쪽).


[그림1-2]의 쌍조간두식은 하단부의 모습이 어딘가에 꽂았던 기물임을 알 수 있는데, 청동기시대 새 숭배의 원시종교사상을 표상한 제사장의 神竿임을 추측할 수 있다. 초기 솟대의 이러한 양식은 붙박이 솟대가 아닌 이동시 장소마다 제사장이 들고 다닌 솟대라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1-1]의 靑銅器鳥形劍把頭飾도 싸움터에서 장수의 검으로써 간단한 의식용 신간의 구실을 하기 위한 鳥形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神竿 꼭대기의 새는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솔개가 맞다. 『예기』에 ‘仲春에는 솔개가 변화해서 비둘기가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솟대의 고대형은 神의 고유어 ‘살’이 ‘신’으로 말이 이동되면서 솔개의 族標도 희미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에 비둘기, 오리, 기러기, 꿩 등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본다.


[그림2]의 (1)농경문청동기의 나뭇가지 위 鳥形은 솟대의 原始古形이다. 신성지역을 나타내는 이러한 솟대의 양식은 능묘 入路의 홍살문[그림2-(3)]이나 사당의 標識깃대 [그림2-(4)] 로 그 상징이 변환돼 分化했다.
총체적으로 ‘神市’라는 성격의 터에 ‘天君’의 主席을 알리는 神標가 솟대의 原意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神市’와 ‘蘇塗’는 신라시대의 ‘서라벌’이나 오늘날의 ‘서울’과 같은 語意의 古稱으로 해석한다.‘ (神市) 〉 蘇塗 〉 솟대 〉 서라벌 〉 서울’에 남아있는 頭音 ‘ㅅ’이 변하지 않았음도 모종의 암시를 던져준다.

‘서라벌’과 서울
서울에 해당하는 한자는 都邑, 首都, 京, 京都 등이라 할 수 있는데. 『說文』에선 ‘都는 역대 천자의 종묘가 있는 곳(先君之舊宗廟曰都)’이라 했으며, 殷注 『左傳』에선 ‘先代의 神主를 모신 종묘가 있는 곳이면 都이고, 없으면 邑이다(凡邑有宗廟先君之主曰都, 無曰邑)’라고 했다. 읍이 아닌 머릿고을[首都]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종묘의 유무가 漢代 이후 都에 대한 관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京은 갑골문에선, 금문에선 로 나타나 있음을 볼 때 『說文』의 풀이처럼 높은 집에 사람이 사는 곳을 가리키거나 글자 모양이 重屋之形이므로 궁궐이 있는 곳, 곧 천자가 사는 곳을 京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이러한 都나 京의 의미와 동일한 ‘서울’이란 명칭은 그 유래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이며 그 발음은 어떤 변천을 겪어 왔을까? 이 문제는 한민족의 시원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 고대문화 원류의 상징과 해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된다.
신라의 서울인 경주가 ‘벌(徐伐) 또는 서라벌(徐羅伐, 徐那伐)이란 명칭에서 오늘의 서울로 변천돼온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벌 〉 셔 〉 셔〉 셔울 〉 서울

문헌에서 경주는 徐羅伐, 徐那伐, 徐耶伐, 徐伐, 斯盧, 斯羅, 蘇伐 등의 音借로 나타난다. 그것이 503년((智證王 4) 정식 국호인 ‘新羅’로 정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414년에 建碑된 廣開土太王陵 비문에 ‘新羅’란 국호가 이미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신라란 국호는 지증왕대 이전부터 사용돼 왔음을 알 수 있다. ‘新羅’의 의미는 『三國史記』에서 ‘新’은 德業日新에서 ‘德’을, ‘羅’는 網羅四方에서 ‘羅’를 取字한 상서로운 의미라고 했으나, 그 이전의 고칭을 볼 때 이는 후세 유교적 훈석임을 알 수 있다.


서라벌뿐만 아니라 백제의 도읍지인 ‘소부리(所夫里, 부여)’도 서울의 동의어로 파악하는 것은 양주동, 河野六郞, 이병선, 도수희 교수들로부터 공통되는 학설이다. 그러므로 ‘徐羅伐, 徐那伐, 徐耶伐, 徐伐, 斯盧, 斯羅, 蘇伐’ 등 古記寫의 원의는 그 음가가 ‘사, 서 + ㄹ’의 형태란 점에 유의할 때 그 어형은 ‘(설)’이 된다. 이미 연재된 신의 해석에서 神의 고유어가 태양을 사유의 모형으로 한 ‘’이었음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이 어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학설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① 高, 神靈을 의미하는 우리말 ‘수리·솔·솟’의 音寫라는 설: 이병도, 이병선
② 始, 新, 東, 元, 金의 訓借音寫라는 설: 서정범, 이병선, 천소영
다음으로 ‘벌’은 ‘, 벌’의 음사로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① 野原을 의미하는 표기라는 설: 이병도 ② 지명에서 흔히 보이는 것으로 火, 赤, 明, 光의 의미라는 설: 이병선, 천소영 이와 같은 기존학설을 종합해 볼 때 서울의 의미는 ‘새로운, 처음의, 신령스런, 동쪽의, 밝은 신의 땅’이란 개념이 함축된 ‘神市, 上邑’의 首都란 뜻이라 하겠다. 서울은 벌, 서라벌 등이 음운변화를 거친 말이다. 벌, 서라벌의 원류는 신의 순수고유어 ‘’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에는 神市, 神邑, 神都, 살(솔)터, 蘇塗, 솟대의 땅이란 뜻으로 의미가 매겨지고, 종묘에 해당하는 神宮이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 ‘서울’이라고 결론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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