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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교수의 집짓기 놀이
영문학 교수의 집짓기 놀이
  • 교수신문
  • 승인 2013.12.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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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벌써 세 번째다, 평생 한 번하기도 어렵다는 집짓기가. 그랬다. 놀이하듯 집을 지었다. 매번 벅찬 기대와 설렘으로 지켜보며 완공을 기다렸다. 끝나기가 무섭게 친지들 불러 잔치를 벌였다. 괜한 짓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이런 저런 궁리를 하느라 둔한 상상력이 그야말로 생고생을 했다.


첫 번째는 연습? 헛간을 헐고 조립식으로 방 두 칸과 화장실 창고를 냈다. 조카들이 늘어나면서 숙박공간이 절대 부족! 별 고민 없이 지었다. 그 결과는 뿌듯했다. 농사를 포기하면서 아무런 소용도 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던 헛간과 광. 보기에도 을씨년스러웠다. 대신 들어선 도시 아파트와 같은 큰 방 두 개, 그리고 수세식 화장실에 샤워시설까지! 매번 시댁을 찾을 때마다 걱정이 태산이던 형수님들과 아내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당뇨로 고생하시던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 일이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홀로 계신 어머니 뵈러 주말마다 찾아오다 보니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어졌다. 전주전통문화도시 조성사업에 열중할 때 일이다. 틈만 나면 ‘서재타령’하던 게 효험이 있었나 보다.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던 한옥전문가가 자청하고 나섰다. 주로 강의를 할뿐 아직 주도해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는 젊은 목수가 시험 삼아 지어보겠단다.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라!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한 원로 목수가 구들을 손수 놓아주겠다고 자원한 것! 한지회사 사장님은 도배를 책임지겠다고 나섰고.


그렇게 해서 친애하는 華陽茅齋 서재가 탄생한다. 할아버지께서 뒷산에서 나무 베어다 어렵게 지은, 내 어린 시절의 위풍이 심했던 공부방,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추억이 가득한 사랑채가, 벽면을 활용해 영화도 볼 수 있고 음악감상도 할 수 있는 멋스러운 한옥풍의 황토벽돌집으로 거듭난 것이다.
놀기 좋아하는 버릇 못 버려 다양한 놀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도면 그릴 때부터 목수를 졸랐다. 덕분에 3면이 마루, 그 중 하나는 공연무대로 활용할 수 있게 설계를 했고 그 앞에는 세 종류의 평상을 배치해 매실주를 마시며 작은음악회를 즐길 수 있게 꾸몄다. 마루 양편에는 “모재 산기운이 맑으니(茅齋山氣淸) 소박한 가야금소리에 쓸데없는 생각이 잦아든다(素琴機慮靜)”라는 사부님이 내려주신 시를 일중 김충현 선생 글씨로 양각해 걸었다.


반대편 마루는 남쪽 오봉산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누마루 형태로 좀 높고 시원하게 배치했다. 이곳에는 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彩菊東籬下)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悠然見南山)”라는 도연명 시를 석전 황욱 선생의 악필(握筆)로 새겨 모양새를 갖췄다. 동쪽 울타리 밑에는 국화도 심고. 북쪽이 나(茅齋)를 위한 공간이라면 남쪽은 아내(悠然)와 연관된 곳!


모양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호인 화양모재는 왕희지 필체로, 방안에는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春風大雅能容物) 가을 물처럼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秋水文章不染塵)”는 주련을 추사체로, 각각 양각해 걸었다. 자주 살피며 마음 다스리겠다고 호사 객기를 부린 것이다.


이 공간의 탄생으로 생활형태에 큰 변화가 생긴다. 고향에서의 생활 비중이 급증했다. 어머니를 찾아뵙는다는 명분은 점점 엷어지고 매실나무 돌보는 등의 농사일과 이 공간들을 이용해 노는 일이 현격하게 늘어난다. 급기야는 “아들? 나 보러 오는 거 아녀! 매실나무 보러와!” 어머님의 서운함이 담긴 퉁을 듣기까지에 이른다. 농사일이 취미수준을 넘어가면서 점점 거창한 의미부여까지 하게 된다. 미구에 닥칠 식량위기와 연결시키기도 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 거창하게, 로하스(Lohas)적 삶까지 표방하게 된다. 주민등록을 옮겨 농지원부까지 만들면서. 어머님은 전주 노인복지센터로 처소를 옮기셨는데 내 귀촌살림살이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그 연장선상에 세 번째 집 悠然堂 짓기가 있다. 발단은 농어촌주택지원자금. 농지원부가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기에 허실삼아 지원을 했는데 덜컥 선정되고 말았다. 요즘 농촌에 돈 빌어 새 집 지으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담당직원이 부탁하고 다녀야 할 정도다.


조립식으로 지은 사랑채가 점점 기울어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모처럼 찾아온 조카들을 바닥이 기운 방에 재우려니 맘이 편치 않았다. 더 큰 것은 아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유인하려는 것. 농촌 출신이지만 주로 도회지에서 생활을 해온 아내는 시골생활을 조금은 두려워한다. 그 불편한 심기를 돌려놓자는 것.

작전은 주효했다. 집짓기를 아예 ‘유연당 프로젝트’라 했다. 평소 소망이라던 베란다가 있는 이층집에 예쁘장한 나무그네까지 배치한 거 모두 아내의 마음을 끌기 위한 ‘전략’이었다. 아직까지는 대성공, 출입도 잦아졌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민다며 아끼던 물건들도 삼나무 향 가득한 2층 방에 옮겨놓았다.
문제는 동선이 길어진 거. 청소도 만만찮고. 흔히 염려하듯 집을 이고 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오봉산을 배경으로 한 시원한 들녘 풍광이나 계단참에서 맞은 교교한 달빛 생각하면 배시시 웃음이 나오니 어쩌란 말인가? 진공관 앰프로 듣는 음악은 또 어떻고!


남은 일은 아기자기하게 살아내는 것! 흔히들 불편하고 일이 많아지는 것을 염려하지만 그거 재미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시골생활은 애초 불가능한 것! 편안함이 게으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고단함은 성취감으로 상쇄될 수 있는 것. 삼나무 향기에 힘 얻어 매실 키우고 고구마, 옥수수, 무와 배추 키워 친지들과 나누어 먹으면 된다! 베란다에서 달님 맞으며 마시는 매실주 힘 빌어 표고버섯도 더 많이 따고 매실청이나 매실주 더 맛있게 걸러 고루고루 나눌 수 있다면, 얼씨구! 좋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으니 더욱 더! 그래서 집짓기는 계속될 것이다. 아직도 초라한 모습을 안고 있는 안채가 남아있으니!

□ 다음 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의 필자는 윤찬영 전주대 교수입니다.



이종민 전북대·영어영문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음악과 글쓰기를 접목한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 『화양연가』 등의 책을 썼다. 최근 ‘적게 쓰는 생태적 삶’을 꿈꾸며 고향으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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