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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시대의 재탄생?
화석연료시대의 재탄생?
  • 교수신문
  • 승인 2014.01.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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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미국에서 셰일가스 열풍이 뜨겁다. 지하 암반층에 산재해 있는 가스를 혁신 기술로 채굴해 새로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됐다는 보도다. 화석연료의 시대는 종언을 맞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두 세대 또는 그 이상 더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공황 이후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는 세계경제에 대한 우려감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이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이 높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국내경제의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꿀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것 같다. 셰일가스에 관한 신문 방송의 보도에서 그 부작용을 우려하거나 분석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문명의 야누스적 속성을 절감한다. 산업기술문명은 물질생활의 진보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 문명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화석연료가 문명의 지속을 가로막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람들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영국 경제사가들은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화가 발생한 원인을 여러 국내적인 조건에서 찾아왔지만, 정확한 해답을 알기는 어렵다. 그들은 18세기 정치 안정, 국제무역, 금융혁명, 중간계급의 성장, 농업혁명, 인클로저 등 무수한 요인들을 꼽는다. 그럼에도 그 요인들 때문에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화가 전개됐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따지고 보면, 영국이 다른 나라와 달랐던 점은 석탄이었다. 이는 이미 1830년대에 런던대 경제학 교수 존 머컬러크가 주장한 바 있다. 영국은 값싼 비용으로 석탄을 채굴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산업화 이전부터 실제 생활에서 석탄을 채굴해 연료로 이용해왔던 것이다. 석탄의 이점과 부작용에 관한 내용은 이미 17세기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내가 직접 읽거나 확인한 기록도 많다. 17세기 후반 새뮤얼 핍스의 일기, 1870년대 이와쿠라사절단 보고서, 19세기 말 크로포트킨의 논설, 심지어 1930년대 초 연희전문학교 이순탁 교수의 여행기에도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의 매연과 공기오염을 우려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오늘날 유럽 여러 나라 대도시에서 매연과 공기오염은 사라졌지만, 이를 대신해 근래 급속한 산업화를 겪는 나라에서 오염은 더욱 더 심각한 문제로 변했다. 더욱이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위험은 대기오염 문제를 넘어 또 다른 심각한 형태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바로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화석연료의 주류가 석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로 바뀌었지만, 생활수준의 향상과 물질적인 진보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위험은 오히려 더욱 더 심각해진 상태다.


돌이켜보면, 산업기술문명에서 욕망의 해방과 기술은 서로에 대한 원인이자 결과다. 욕구 증대가 생산 증가를 필요로 하고 생산 증가가 새로운 소비 욕망을 자극한다. 먼저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에서 시작된 욕망의 해방이 전 지구적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기술적 차원에서 제아무리 에너지 절약형 신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지구 전체로 보면 화석연료가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량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구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고음은 한 세대 전부터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방향에서 화석에너지의 대안을 마련하려는 연구와 개발이 이뤄졌고, 이를 촉진하기 위한 환경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화석연료의 여러 대안은 그 나름의 한계를 갖는다. 태양에너지, 풍력, 조력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데 따른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문명을 지속시키려면 대체에너지원을 개발해야한다.


대체에너지 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문명의 지속을 위해서는 인간이 스스로 욕망을 낮추고 제어해야 한다는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것은 지금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필요로 한다. 근대성의 핵심인 욕망의 해방과 발산을 우리 스스로 제어하는 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셰일가스 열풍이 그나마 지금 뿌리를 내리고 있는 환경운동과 문명의 지속에 관한 우리의 새로운 인식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더욱이 대안에너지를 개발하려는 노력과 당위성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20세기 소비의 시대를 열었던 미국인들이 그랬듯이, 다시 사람들은 값싼 에너지 소비에 익숙한 생활패턴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참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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