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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심장과 기독교의 피부를 가진 도시
이슬람의 심장과 기독교의 피부를 가진 도시
  • 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장·아랍어사회언어학
  • 승인 2014.01.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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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이야기 9_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

▲ 베이루트 시내에 나란히 붙어있는 교회와 모스크의 전경. 사진 출처 위키커먼스

오랜 내전을 겪고 난 후 분열된 국가로는 어떠한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친 레바논인들은 종파 간 권력 분배라는절묘한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순니 이슬람, 국회의장은 쉬아 이슬람, 국방부 장관은드루즈, 군사령관은 마론파 기독교가 맡는절묘한 권력 안배는 상호간의 정치적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지만,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공생하는 지혜다.

베이루트를 수도로 하고 있는 레바논은 지리적으로 동지중해 국가들이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한 출구이자 유럽과 아랍 국가들을 연결해 주는 이음새에 위치하고 있다.
레바논의 척추에 해당하며 동지중해 지역의 대표적인 농경지역인 베카(Beka) 계곡의 비옥한 토지는 올리브, 밀, 옥수수, 면화 등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고대부터 동지중해 국가들의 탐욕의 대상이기도 했다. 레바논의 원주민에 해당하는 페니키아인들은 베이루트와 시돈항 등을 통해 레바논의 특산품인 백양목을 이집트 등지로 수출했고, 백양목을 이용해 건조한 튼튼한 배와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지중해 전체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로마를 위협하는 거대한 해상 왕국을 건설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과 풍부한 자원으로 인해 레바논은 고대부터 교역의 중심지로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도시 국가로서의 번영을 누리기도 했지만, 외세의 침입에 언제나 노출돼 있기도 했다.

교역의 중심지 된 해상왕국
숱한 외세의 침입과 지배로 인해 레바논은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과 아랍인 등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혼혈 국가가 됐다. 또한 레바논은 페니키아, 기독교, 비잔틴, 아랍·이슬람과 서구 유럽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다문화ㆍ다층적 사회 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가 됐다.
따라서 레바논은 다양한 인종, 종교, 이념, 언어 및 현대와 전통이 함께 어울려 대립과 공존을 거듭하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모자이크 국가로서, 고대 페니키아의 뼈대와 아랍·이슬람의 심장을 갖고서 유럽·기독교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메트로폴리탄 국가라 하겠다.
레바논은 아랍연맹(Arab Union)에 속한 아랍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이슬람교를 국교로 표방하고 있지 않은 중동에서 가장 서구화된 아랍 국가 중의 하나다. 다른 아랍 국가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인 대회가 열리는 나라이고, 유럽의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짧은 미니스커트와 핫팬츠를 입은 여성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시가 베이루트이기도 하다. 아랍의 전통 의상인 부르까로 전신을 가린 아랍 여인이 유럽식 노천카페에서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베이루트다.
따라서 레바논을 전통적인 국가나 민족 분류법에 따라 구분하기는 대단히 애매하며 실제로 어떠한 기준을 적용해도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국가와 문화 정체성의 규명은 매우 힘들다. 그런 연유로, 이러한 복합 문명을 담고 있는 베이루트는 지중해의 다양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의 면면들을 살펴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페니키아인들의 후손들은 지중해를 가로질러 북아프리카(현재의 튀니지)에 카르타고왕국을 건설해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했지만, 로마와 뒤이은 비잔틴의 지배를 거쳐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국가가 됐다. 근대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로 불리며 오랫동안 아랍의 경제·사회·지식·문화의 중심지였다. 1952~1975년에는 아랍의 자본이 몰려들어 베이루트는 중동의 금융 중심지가 됐으며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렸다. 국제적인 은행이나 기업들은 베이루트를 거점으로 중동 사업을 벌였고, 지중해에 인접하고 있는 베이루트의 자유무역지대는 동지중해의 가장 큰 중계항 역할을 했다.


고대 신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과 오스만 터키 등 인류의 주요 문명들의 흔적을 베이루트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관광지로서, 그리고 세계의 문화유산으로서 베이루트가 갖고 있는 큰 매력이다. 특히 서구화된 도시의 특성과 개방적인 레바논 국민들의 국민성은 아랍과 중동을 꺼려하는 이방인들에게 아랍과 중동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정치적·사회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베이루트 시민들이 보여 주는 개방적인 사고와 활기찬 삶의 에너지, 외국인에 대한 친절함과 당당함(다소 뻔뻔해 보이기도 하는)은 베이루트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중의 한 가지다. 설사 외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 해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림 없이 할 수 있는 한의 최대한의 성의와 친절로서 외국인에 대응하는 베이루트인의 태도는 이방인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모습은 고대부터 중계 무역과 상업으로 국부를 일구어 온 레바논인의 조상인 페니키아인들의 개방성과 손님에게 환대를 아끼지 않는 아랍인 특유의 기질이 반영된 듯하다.


베이루트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보다 베이루트인들의 활기차고 당당한 모습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베이루트를 방문했던 이들의 공통의 기억인 것 같다.
이러한 베이루트의 자연·문화·역사 유산과 베이루트인들의 동적인 에너지는 베이루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10대 도시 중의 하나로 선정하게 했다(2009, Lonely Planet).
한 공동체 안에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수많은 갈등을 야기한다는 것을 인류는 이미 역사를 통해 체득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지구촌은 다민족, 다종교가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다문화사회로 이미 접어들었고 지구촌은 이러한 변화된 환경에 대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있다.

다문화사회 갈등 해결 방법은?
전 인류가 함께 공존공영하며 공생의 인류 사회 건설을 위한 해답을 어쩌면 이러한 다문화·다종교 사회의 산고를 이미 겪고 있는 베이루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5년간의 오랜 내전(1975~1990)을 겪고 난후 분열된 국가로는 어떠한 미래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친 레바논인들은 종파 간 권력 분배라는 절묘한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순니 이슬람, 국회의장은 쉬아 이슬람, 국방부 장관은 드루즈, 군사령관은 마론파 기독교도가 맡는 절묘한 권력 안배는 상호간의 정치적 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공생하는 지혜이기도 하다.


베이루트는 인간의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배타적 욕심의 결과로 인해 발생한 참담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눔과 공생의 지혜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풍요로운 번영을 누릴 수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지혜의 학습장이기도 하다.



윤용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장·아랍어사회언어학
한국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아랍어아랍문학회 편집이사,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주요 논문으로 「알제리의 프랑스어 수용과 언어정책」, 저서로 『지중해의 에티켓과 금기』, 『지중해 문명의 다중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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