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5:30 (화)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도끼머리로 나무를 두드린 이유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도끼머리로 나무를 두드린 이유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02.10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98_ 대추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에 콩이야 팥이야 하면서 공연히 간섭하고 참견하지 말라는 뜻으로 “남의 제상에 감 놔라 배(대추) 놔라 하는가”라 한다지. ‘대추나무에연걸리듯’이란 아무런 계획없이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뜻인데, 대추나무가지에는 얼키설키 잔가지가 많아 鳶이 잘도 엉겨붙는다하여 생긴 말이다. 또 ‘콧구멍에 낀 대추씨’란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을 빗댄 말이요, 또 ‘대추나무 방망이’란 어려운 일에 잘 견뎌 내는 모진 사람을, ‘대추씨 같은 사람’은 키는 작으나 성질이 야무지고 단단한 사람을 가리킨다.

대추나무(Zizyphus jujuba)는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늘씬하고 꼿꼿이 자라는 낙엽교목으로, 키가 10∼15m에 달하며, 잎은 빳빳한 것이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밑이 둥글며, 3개의 도드라진 잎맥(主脈)이 있다. 과실은 核果(씨가 굳어서 된 단단한 핵으로 싸여 있는 열매)로 구형 또는 타원형이며, 진초록이던 것이 9∼10월에 반질반질하고 싱그러운 적갈색 또는 암갈색으로 익는다. 나무에 억센 잔가시가 다발로 나고, 원산지는 중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이 적지이며, 충청도의 보은대추, 논산의 연산대추, 밀양의 고례대추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서양 사람들은 대추(date)를 red date, Chinese date, Korean date라 부른다니 우리와 참 가까운 식물이라 하겠다.

대추나무열매는 영글면 그 색이 붉다 해 紅棗라고도 하는데, 찬 이슬을 맞아야 빨갛게 때깔 좋은 양질의 대추로 여문다. 나뭇가지 축축 처질 정도로 열렸으니, 날것 하나 따 꾹꾹 씹어 먹으면서 장대로 나무초리부터 우듬지 것까지 탁탁, 나무가 잎사귀들이 상하고 나무가 후줄근하도록 야멸스레 내리 턴다. 가렴주구가 따로 없다. 대추를 다른 말로 大棗또는 木蜜이라 하며, 열매인 대추는 날로 먹거나 꼬들꼬들 말려 채 썰어서 떡·약식에 쓰며 여러 약용으로도 쓰인다. 薑三棗二란 말은 생강 세 쪽과 대추 두 알이라는 뜻으로, 한약 달임에 그런 비율로 넣기 때문인데, 대추 또한 약방의 감초인 셈이다.

대추열매(Jujube)의 열매 물(과육)에는 당분이 많아 떨떠름한 맛이 전연 없고, 시척지근하면서 감칠맛 나는 구연산·능금산·주석산이 담뿍 들었다. 또한 비타민 C는 사과나 복숭아보다 많으며, 비타민 B군·카로틴·칼슘·철·인 등의 영양분이 많이 들었다. 옛날부터 대추는 많은 한약재 사용되는데, 이것은 대추가 제독효과가 있고, 온갖 약의 성질을 조화시키기 때문이라 한다. 천식·아토피·항암·노화방지·불면증·간·위장병·빈혈·전신쇠약 등에 좋으며, 중국에서는 대추술, 대추식초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재목이 단단해 版木이나 떡메, 달구지의 재료로 쓰였으며, 보통대추나무는 물에 뜨는데 비해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물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벽조목(벼락霹, 대추나무棗, 나무木)이라 하는데 이는 사악한 귀신을 쫒고, 재난이나 불행을 막아주며, 상서로운 힘을 가진다 해 도장·목걸이·핸드폰걸이·염주 따위의 符籍을 만들어 지니는데, 그건 나무가 귀할뿐더러 재질이 매우 치밀한 탓일 것이다. 고비늙은 대추나무는 陽의 기운이 아주 강한데, 거기에다 뜨거운 양(벼락)이 더해져 양중에서도 가장 강한 極陽이 됐으니 어찌 陰氣가 다가올 수 있겠는가. 훠이훠이 악귀여 저리 물러가라 다친다.

대추나무에는 열매가 많이 열리기에, 대추는 풍요와 다산의 의미가 함축돼 있어 제사에 필수적이요, 다남을 기원하는 상징물로서 폐백 때 시부모가 밤이나 대추를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는 것도 그런 의미이다. 또한 嫁樹라 하여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도끼머리로 나무를 두드리거나 果樹의 두 원가지 틈에 돌을 끼워두면 그 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했으니, 말해서‘나무시집보내기’다. 대추나무도 시집을 보냈으니 것이 嫁棗樹로 음력 5월 5일 단옷날 정오에 행했다 하는데, 이는 식물도 혼인을 해야 열매를 잘 맺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끼와 돌은 신비한 잉태의 힘을 가진 남성성생식기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 아무튼 사람과 나무를 하나(‘不二’)로 봤던 조상들의 심성정에 탄복할 따름이다.

그런데 도끼질이나 돌 박기에 과학성이 있다면? 그렇다. 나무줄기의 바깥에는 잎에서 만들어진 여러 영양분이 내려가는 체관(sieve tube)이 있고, 안쪽 딱딱한 목질부에는 뿌리에서 잎으로 물을 수송하는 물관(vessel)이 있다. 도끼로 두드리거나 돌을 끼울라치면 체관이 다치거나 눌려져서 잎에서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이 제대로 내려가지 못하고 열매로 몰리게 돼 충실한 과일, 대추를 얻는다. 옛날 어른들도 몸소 얻은 체험으로 이 사실을 알고 계셨으니……. 지금도 과수원에선 과일나무가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 원줄기의 樹皮일부를 살짝 고리모양으로 벗겨내는 環狀剝皮를 한다.

제사상에 과일을 진설 할 때 棗栗梨枾(대추·밤·배·감) 순으로 놓으며 그 외의 것들은 순서가 없다. 재언하면 제상에 놓는 과일은 기본이 4가지인데, 대추는 씨가 하나이므로 임금을, 밤은 한 송이에 3톨이 들었으므로 3정승을, 배는 씨앗이 6개라서 6조판서, 감은 8개의 종자가 들어 우리나라 조선8도를 각각 상징한다는 속설이 있다. 어쨌거나 대추는 거기서도 으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