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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속도로’그리고 골목길
‘마음의 고속도로’그리고 골목길
  • 신지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조교수
  • 승인 2014.02.10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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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38_ 경부고속도로

 

▲ 개통 당시 경부고속도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korea.kr/gonggam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목록
장충단공원, 명동·충무로 일대, 남산, 서울시의회 건물, 경복궁(광화문)일대, 덕수궁(정동),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천도교 중앙대교당, 군산항, 부산근대역사관, 광주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만주, 서울역, 경무대·청와대,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 이화장, 서울대(동숭동·관악), 부산 항구, 목포항, 소록도, 인천항, 제주도, 판문점·휴전선, 부산 국제시장, 거창, 지리산, 용산, 매향리(경기도), 여의도광장(공원), 마산(현 창원) 바다, 4·19국립묘지·기념관, 명동성당, 광주 금남로·전남도청, 울산 공단,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청계천·평화시장, 구로공단

1970년 7월 7일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경제개발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대일청구권 보상금, 베트남전에 파병된 국군 장병들의 전투 수당, 베트남에서 갈고 닦은 기술이 집약돼 만들어진 것이 바로 경부고속도로다.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했던 박정희는 ‘아우토반’을 토대로 서독의 경제 부흥이 이룩됐다는데 주목했고, 스스로 고속도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연구했다. 196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박정희는 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발표했고,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반대 이유를 물리치고 1968년 2월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남북 도로보다 동서 도로의 건설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지만 박정희는 자신이 내세운 조국근대화를 실현할 방편으로 건설을 추진했고, 용지 매입부터, 군장비와 군 인력 투입 및 현장 방문 등 많은 부분에 직접 관여했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사업에 쏟아 부었다.

1970년 7월 7일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경제개발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대일청구권 보상금, 베트남전에 파병된 국군 장병들의 전투 수당, 베트남에서 갈고 닦은 기술이 집약돼 만들어진 것이 바로 경부고속도로다.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했던 박정희는 ‘아우토반’을 토대로 서독의 경제 부흥이 이룩됐다는데 주목했고, 스스로 고속도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연구했다. 1967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박정희는 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발표했고,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반대 이유를 물리치고 1968년 2월 공사를 시작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남북 도로보다 동서 도로의 건설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지만 박정희는 자신이 내세운 조국근대화를 실현할 방편으로 건설을 추진했고, 용지 매입부터, 군장비와 군 인력 투입 및 현장 방문 등 많은 부분에 직접 관여했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사업에 쏟아 부었다.


추풍령 휴게소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세계 고속도로 건설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완공됐음을 알리는 준공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탑에는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는 조국근대화의 길이며 국토 통일에의 길이다”라는 문구가 박정희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에는 준공기념탑만이 아니라 위령탑도 바쳐졌다. 금강휴게소에는 고속도로 건설 중 사망한 77명의 노동자를 추모하는 탑이 서있다.

 이들 ‘산업전사’들은 ‘건설 현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사라져 갔고, 실제로 이 ‘전쟁터’에는 군 건설 전문 인력과 대규모의 군부대가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단기간’에 완공했다는 경부고속도로는 완공도 되기 전에 부실시공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결국 개통 1년 만에 전 노선에 덧씌우기 공사를 해야만 했다. 경부고속도로는 개통 후에 ‘부실도로’, ‘관광도로’ 등으로 불리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다가, 1976년 이후 경부고속도로 주변에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경제성장으로 물자와 인력의 수송량이 증가하며 다른 고속도로들이 건설돼 상호연계가 강화됨으로써, 고속도로로서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혼연일체’가 돼 ‘싸우며 건설하자’”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던 1969년 1월 1일, 박정희는 신년사에서 “새해는 싸우며 건설하는 우리민족의 약진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방과 건설은 떨어진 두 개의 임무가 아니라 국방이 곧 건설이고, 건설이 곧 국방이라고 보고 ‘싸우며 건설할 것’을 강조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대통령의 신년사와 함께 실린 신진자동차공업주식회사의 전단광고는 자동차가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기대와 꿈을 광고하고 있다. “謹賀新年/ 國民 여러분의 한결같은/ 健勝과 繁榮을 祝願합니다/ 이 高速道路의 建設과 같이/ 부풀어 오르는 젊은이들의 ‘꿈’을/ 祖國의 繁榮과 人類 福祉에/ 奉獻합시다.”


이처럼 대단히 종교적인 메시지와 연결되는 경부고속도로는, 철도에서 종교의 정신을 간파했던 벤야민(벤야민은 미셸 슈발리에를 인용한다)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문명국들이 철도 건설에 쏟는 열의와 열정은 몇 세기 전에 교회 건설에서 보여준 열의와 열정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 종교라는 말이 ‘religare’, 즉 ‘묶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 맞다면 … 철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정신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것으로 … 이보다 더 강력한 장치는 과거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U15a, 1)


형제애를 성취하려는 전통적인 종교의 목표는, 고속도로를 통한 한 민족의 단결이라는 목표로 변형돼 조국근대화의 미망을 이뤘다. 박정희는 대공투쟁에 승리하는 것과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조국근대화와 조국 통일의 목적은 동일하다고 줄곧 강조함으로써,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통일과 민족중흥, 전쟁 승리를 위한 것으로 정당화했다. 이 ‘전쟁’을 위해 전 국민은 ‘혼연일체’가 돼 ‘싸우며 건설’했고, 이렇게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나타난 기적의 산 증거”이자 “3천만의 합창으로 부르는 민족의 꿈의 실현”으로, 이는 마침내 “인간본연의 욕망인 모빌리티의 꿈”을 이루어줄 것으로 기대됐다(<경향신문> 1969년 1월 1일).

▲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구상도.


많은 이들이 조국근대화가 경부고속도로가 뻗어가는 템포와 더불어 촉진될 것으로 생각했다. 즉 전국이 1일 생활권에 들어가게 되면 산업이 합리화되고 유통의 혁명이 이뤄질 것이라 본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한 사람들은 이 고속도로가 국민소득을 끌어올리는 길, 세계로 뻗어가는 힘찬 코리아의 길, 선진국으로의 길로, 이 길을 통해 종래의 비관무드는 희망과 약동으로 바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직선대로의 가속화라는 욕망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경부고속도로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민족성 개조’를 이뤄낼 ‘마음의 고속도로’가 될 것이라고 본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연결했을 뿐 아니라, 근대적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마음의 고속도로를 개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고속도로’는 졸속 공사로 인한 사고사와 과로사, 생태계 파괴 등을 동반했다.
‘기적’ 프로젝트는 근대화를 기적적인 속도로 이룩하긴 했으나, 이 기획은 반문명, 반생태, 반생명, 반평화의 기획이기도 했다.

고속도로가 빚어낸 새로운 문화와 패스트푸드(햄버거)의 관계를 밝혔던 제레미 리프킨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얼마나 크게 바꿔 놓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직선대로의 가속화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고속도로를 통한 한 민족의 단결이란 목표는 또 다시 4대강 사업을 통한 통합과 소통이란 목표로 변형 재생산됐고, 사람 사는 마을 위로 송전로를 내고 산에 터널을 뚫는다. 도무지 돌아갈 줄 모르고, 좁고 꼬부랑한 흙길을 천천히 걸을 줄 모르는 것이다.


2014년 새해,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힘차게 달리는 말의 해를 맞이하며 경제 활성화, 안보, 활력을 강조하고,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혹시 돌아가는 길, 천천히 가는 길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힘차게 달리는 것, 빨리 가는 것 이상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속도를 늦추고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신지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조교수
필자는 프랑스 파리5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간사회학 등에 관심이 있으며, 「사회성의 공간적 상상력: 신체-공간론을 통해 본 공간적 실천」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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