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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공동체의 토템과 터부
소수자 공동체의 토템과 터부
  • 이창남 서평위원 한양대 비교문학
  • 승인 2014.02.18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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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책이나 동물, 그리고 스타는 사람들의 기호나 취미, 혹은 性癖이 지향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그 기호나 취미는 사람에 따라서 극히 다르기도 하다. 원시공동체의 토템처럼 그런 대상들은 사회적으로 그룹을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 흔한 취미 동호회, 오빠부대, 독서그룹들 속에도 일정하게 원시인류의 공동체 형성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소수 부족적 공동체들을 일종의 공동체로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민족, 국가, 지역 공동체들과 같은 형태의 공동체들에 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다양한 기호와 취미, 성벽을 중심으로 많은 소수 공동체들이 형성돼 왔다. 한 심포지엄에서 성소수자 공동체를 대표하는 여성이 “국내에서 성소수자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패왕별희」라는 영화의 영향”이라고 했던 말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공론화되기 어려운 소수자의 성적 경향이 영화를 통해서 사회의 공개된 장에 등장하고, 바로 그 영화가 토템이 돼 이들의 공동체가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영화의 특정 장면들은 이성애적 다수자들에게는 역겨움의 대상이기하다. 그런 점에서 ‘토템’은 ‘터부’이기도 하다. 소수자와 다수자 사이에는 단순히 지적인 이해를 통해서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경계가 있다. 그 경계는 감정적 소여에서 비롯돼 제도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것이어서, 그들의 차이가 서로에게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근래에 학계에서도 이와 같이 소수자 문제가 주요한 이슈로 거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 소수자 담론들은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다수자의 관용과 배려를 보이는 수준에 머문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그럴 것이 소수자들에 대한 접근법이 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접근법과 별 차이가 없고, 포용해야할 타자로서 소수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이 부상하는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서 소수자 공동체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여전히 논외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이든 긍정이든 지금도 여전히 다수자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우세하다. 하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소수자 공동체들이 형성되고, 이른바 다수자 공동체 담론을 대체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실재이다. 일견 근래 ‘무중력의 한국문학’이라는 비판의 수사도 그런 점에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거대 이념과 현실을 잣대로 보면 가벼워 보여도, 새로운 작가들의 기괴하게 튀는 상상력은 발아하는 소수자 공동체들의 토템 가지들일지도 모른다.
이제 약자로서의 소수자, 혹은 특정한 취향과 성벽을 가진 ‘독특한’ 소수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동체 형상의 새로운 변수이자 주도적 흐름으로 작은 공동체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들은 특정한 문화적 매체의 상징과 표상들을 토템으로 해서 공동체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물론 성소수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책, 스포츠, 스타, 취미, 성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토템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그룹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존재하는 것과 그룹을 형성한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들이 그룹을 이뤄 사회 내부에 폭넓게 포진하게 되면 다수자 공동체 자체에 변화를 수행하고, 사회의 주도적 담론의 틀을 바꿔나갈 것이다. 물론 여기서 또한 관건은 우리는 각자의 토템을 지니며, 타자의 그것을 쉽게 터부시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토템’과 ‘터부’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일은 곧 새로 성장하는 사회 공동체들 내부의 갈등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독일의 문화학자 메닝하우스는 『역겨움―강력한 감정의 이론과 역사(Ekel―Theorie und Geschichte einer starken Empfindung)』(1999)이라는 저서에서 좋은 감각의 변경을 이루는 역겨움의 현상을 편견 없이 추적한 바 있다. 일례로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어 잠자가 갑충으로 변화하는 증후는 여러 가지로 형태로 묘사되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입맛의 변화다. 일상적으로 먹던 우유와 같은 음식이 어느날 갑자기 역겨워지기 시작한다. 등짝에 사과폭탄이 박히는 테러를 당하고 죽음을 맞는 이 『변신』의 주인공과 더불어 소수자와 이들의 공동체에 대한 역겨움을 반추하는 일은 곧 세기 전환기 다수자 감각의 변경에 자리잡기 시작한 사회내적 경계들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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