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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모순’
애덤 스미스의 ‘모순’
  •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 승인 2014.03.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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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애덤 스미스는 생전에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두 권의 저술을 남겼다. 『국부론』의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는 버나드 맨더빌과 비슷한 지적 계보에 속한다고 여겨졌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선이 된다는 맨더빌의 견해가 『국부론』에서 과학적 근거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른바 스미스의 ‘모순’이 나타난다. 이 문제는 『국부론』이 개인의 이기심과 자기이익을 강조한 반면, 『도덕감정론』은 줄곧 동감과 동정을 중시했다고 알려진 데서 비롯한다.


스미스의 시대는 영국이 국제무역을 주도하고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었던 때였다. 경제활동의 자유가 그 시대의 슬로건으로 자리 잡았다. 그 자유는 개인의 신체적 해방을 넘어서 개인이 지닌 본능과 감성의 해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중세적 전통과 매우 다른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뜻했다. 근대 사회 성립 이전만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개인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전근대사회에서 개인은 의미가 없었다.


근대사회의 성립은 개인이 전통적 집단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 과정은 특히 18세기 상업과 국제무역의 발전, 그리고 산업화의 물결과 더불어 더 가속됐다. 개인의 이성은 물론 감성과 심지어 본능까지도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난 이후, 과연 그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가 질서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난 개인이 자신의 이기적 본능에 충실할수록 사회는 혼란 상태로 접어들지 않을까.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타인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중시한다. 연민과 동정 같은 감정 외에도 동류의식, 동감, 관용 등의 감정은 다른 사람과 적극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스미스는 개인이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까지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동류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다. 다른 사람이 직면한 상황을 연상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관해서도 동일한 과정이 전개된다. 이렇게 보면 그 동류의식은 ‘동감’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방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즐거움에 대해 우리가 동감을 느낄 때 그 자체가 기분 좋은 감정으로 다가오며, 동감하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즐거움과 고통에 대해 동감을 느끼는 경우는 차이가 있다. 스미스가 보기에, 다른 사람의 기쁨에 대해서는 시기심으로 편견을 갖지 않는 한 그 기쁨에 쉽게 동감한다. 그러나 비애는 고통스러운 것이므로 인간은 자신의 불행인 경우에도 그것에 저항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비애에 동감하기보다는 기쁨과 환희에 동감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스미스는 이런 경향을 비애와 고통에 대한 ‘둔한 감수성’이라 불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은 다른 사람의 행복뿐만 아니라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도 동감하려고 한다. 왜 동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가.

인간에게 상호동감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결국, 동감이란 처지를 바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를 둔, 어떤 행위자와 관찰자의 감정일치를 뜻한다. 그러나 동감이 이뤄지려면, 관찰자가 행위자의 사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 개인의 경우에도 이기적 충동에 지배받는 자신과 관찰자의 입장에서 성찰하는 자신으로 구분된다. 행위자와 관찰자 사이의 동감을 얻기 위한 성찰과정에서 인간 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즉 도덕의 판단기준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도덕감정론』의 이러한 주장은 겉으로 보면 『국부론』과 상치된다. 『국부론』은 여러 곳에서 사람의 자기이익에 의해 이뤄진 경이로운 성취를 언급한다. 푸줏간, 양조장, 빵집 등 자기이익이 불가사의한 성취를 얻어낸 사례를 소개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자기이익의 극단적 사례를 비판하기도 한다. 스미스는 그런 타락이 자기이익과 사회적 이익의 부정합(misalignment)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 『도덕감정론』에서는 동감을 중시하면서 극단적인 자기이익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한다.

이렇게 보면 자기이익을 둘러싼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거리는 그만큼 좁혀진다. 상업사회는 시장사회이며 이기심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면서도 그 사회는 이기심뿐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허용하는 정의감과 그리고 교환과정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설득 성향을 필요로 한다. 이들 성향은 모두 동감이라는 감정을 기초로 한다. 스미스가 보기에 시장사회 또한 동감에 기반을 둔 사회인 것이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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