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8:45 (수)
유럽의 민족과 가문들이 트로이에서 뿌리를 찾는 이유
유럽의 민족과 가문들이 트로이에서 뿌리를 찾는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14.03.18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트로이 신화에서 로마인의 조상으로 묘사되는 아이네아스(Aeneas)의 동상(현재 나폴리에 위치해 있다).

지중해와 유럽의 민족과 왕들이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전쟁의 패자들-전쟁의 승자인 그리스인이 아닌-즉, 트로이인들에게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중에서 트로이 혈통의 아이네아스(Aeneas)를 로마인의 조상으로 묘사하는 전설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로마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제위 시절에 베르길리우스가 집필한 서사시 『아이네이드(Aeneid)』는 많은 면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와 비슷하다. 트로이의 영웅이자 왕족이었던 아이네아스는 트로이가 멸망할 때 탈출한다.

노쇠한 아버지를 어깨에 지고 어린 아들 아스카니우스(Ascanius)의 손을 잡고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아스의 모습은 로마의 예술품에 자주 나오는 모티프이다. 아이네아스는 살아남은 트로이인들을 모아 오뒷세우스의 모험에 필적할 만한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종착지는 이탈리아 반도의 라티움 지역 서부의 해안가였다. 이곳 왕의 환대를 받으며 그는 왕의 딸 라비니아의 약혼자를 전투에서 이긴 후에 그녀와 결혼했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도시 알바 롱가(Alba Longa)를 건설한 사람이 바로 아이네아스의 아들인 아스카니우스였다. 로마의 건설자로 알려진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는 아이네아스와 리비아의 아들 실비우스(Silvius)의 혈통이다.


이 서사시가 로마제국의 국가적 정체성 인식에서 가지는 중요성은 로마 문화의 곳곳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의 성은 직접적으로 아이네아스의 아들인 아스카니우스와 연결이 되는데, 아스카니우스는 율리우스(Julius)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로마의 초대황제들도 모두 이 가문에 속했다. 이들은 황제가문의 우수성을 내세우거나, 평소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던 그리스인들과 대립이나 전쟁을 해야 할 때, 그리고 심지어는 전설의 도시 트로이가 위치한 소아시아를 정복한 것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트로이 혈통을 강조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전쟁의 신 마르스 신전을 건축해 로마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을 신전 양쪽에 세우도록 명령했다. 아이네아스의 동상은 사원 입구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졌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끊임없이 로마와 트로이의 관계에 대하여 상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로이로부터 뿌리를 찾으려는 민족 중에서는 프랑크 족도 있다. 이들은 게르만 부족들의 연합체로 기원후 3세기부터 현재의 독일과 프랑스에 해당하는 유럽 서부와 중부 지역에서 살았다. 프랑크족이 트로이 혈통이라는 것은 중세의 역사기록에도 남아있으며, 심지어 라인강변의 도시인 크산텐(Xanten)은 ‘작은 트로이’로 불렸다. 중세에는 합스부르그 왕조나 호헨쫄레른 왕조와 같은 귀족 가계들이 자신들의 혈통을 트로이의 왕족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내세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스칸디나비아 및 독일 신화에서 아버지 신으로 나오는 오딘(Odin)은 종종 아나톨리아(트로이 유적지인 히사르릭크 언덕이 위치한 지방)인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왜 전 시대를 통틀어 수많은 가문과 민족들이 트로이와의 연관설을 주장했을까. 무엇보다 그리스의 문화적 영향력을 통해 지중해에 널리 알려지게 된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끼친 영향, 그리고 이 작품에서 묘사된 신들과 영웅들이 벌이는 전투, 우정, 배신 등으로 이뤄진 드라마의 한 부분이 되고자 하는 갈망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탈출에 대한 내러티브는 자신의 혈통을 어느 정도 개연성 있게 신화의 영역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로 인해 파괴된 도시 트로이는 많은 가문과 민족들의 신화적 근본이 됐고 유럽 문화사에 깊이 자리 잡은 하나의 개념이 됐다.

글 세바스티안 뮐러 ·번역 지중해지역원 번역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