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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빛살무늬가 뿌리 …‘恨과 悲哀의 미’ 아닌 ‘밝음의 미학’
신석기시대 빛살무늬가 뿌리 …‘恨과 悲哀의 미’ 아닌 ‘밝음의 미학’
  •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 승인 2014.03.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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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 19_ 한국 고대미술의 시원과 원형질

 

▲ [그림9] 울주군 천전리 선사시대 암각화, 너비 9.5m, 높이 2.7m, 국보 147호, 1970년 12월 동국대 학술조사팀(단장 문명대 교수)에 의해 발견, 1971년 2차에 걸쳐 발굴 조사 후 1973년 국보로 지정됨.


한국 고대미술의 시원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고대미술의 시원과 원형에 대한 상징과 해석을 작업하지 않고선, 한국미술의 기초설계와 발전을 위한 디딤돌 하나 놓을 수가 없다.
한국 미술의 시원과 원형질 문제는 論究 자체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한국적인 독자적 논리와 정론 수립이 아직까지 이뤄진 바가 없이 주로 서구적 논리를 차용해 추상적 논급에만 그치고 있는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한반도에서 처음 등장한 토기의 문양에 대한 상징성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서구 고고학의 시각을 飜案한 일본 고고학계 용어인 ‘櫛文土器’를 ‘빗살무늬’1)1) ‘빗살무늬’에 대해선 제4회에서 상세히 다뤘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짧게 설명하면, 이 문양을 핀란드 고고학자 아일리오(J.Ailio)가 독일어로 캄케라믹(Kamm keramik)이라 이름 지은 것을, 일본 고고학자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즐문토기(櫛文土器)로 번안했고, 즐문의 櫛이 빗즐 자인 까닭에 김원룡 교수가 ‘빗살무늬 토기’로 직역한 이름이다. 로 직역해 광복 70여 년이 경과한 오늘날까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대로 쓰고 있는 형편을 보면, 한국 고대문화 원형에 대한 주체적 해석의 불감증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 [그림8] 빛살무늬 토기와 박서보의 작품
뿐만 아니라 고대문양에 대한 해석도 사상과 내용을 전혀 읽어내지 못한 채 그 형태만을 보고 막연하게 추상적, 기하학적, 상징적 문양(안휘준, 『한국의 문화와 미술』, 2008) 이라거나 ‘魚骨紋’(유홍준, 『한국미술사 강의Ⅰ』, 눌와, 2010) 이라고 말하고 있는 부분에 이르러선 반드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하다.


문양을 ‘생각의 지문’ 또는 ‘문화의 거울’이라고 한 사실에 유의한다면, 이른바 ‘빗살무늬[櫛文土器]’로 통칭돼온 이름은 한국미의 시원사상과 원류를 담아낸 이름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미술의 요소는 형태, 면, 선, 색, 문양이다. 이런 요소를 갖춘 미술이 처음 나타난 것이 미술의 기원일 터인데, 그것은 대체로 신석기시대의 陶器 부호, 동굴벽화, 암각화 등에서 그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고대미술도 이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서 최초로 등장한 신석기시대의 문화적 생산물인 토기가 한국미술의 기원이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토기라는 미술품이 지닌 조형미와 거기에 표현된 문양이 한국 미술의 시원이 되고 원류가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에 저장된 정보와 상징성을 제대로 해석해내는 길이 곧 한국미술의 시원과 원형질을 올바르게 짚어내는 첩경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문양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의 반영이며 정신활동의 소산임과 동시에 창조적 미화활동의 결과이다. 또한 문양은 이상적인 삶에 대한 현실적 기원을 의탁하는 일종의 주술적 대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고 하는 사실 때문이다.


문양은 자연의 옷이다. 하늘의 문양은 天文이고 땅의 문양은 地理다. 그래서 천문지리와 文理란 어휘가 생겼다. ‘文’이란 한자의 첫 번째 뜻은 무늬, 채색, 결 등이다. 자연의 무늬와 빛깔의 무늬란 뜻이다. 또 그것을 그리는 것은 ‘그림’이다. 그림을 추상화한 기호가 글자이며, 글자를 문장화한 것은 글월이다. 이와 같은 어원의 연관성은 그림과 글의 기원과 관계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문양이 사람 몸에 붙으면 문신이 된다. 원시시대 인간은 맹수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연을 닮은 文身을 했다. 문신의 일차적인 목적이 방어에 있었다면, 이차적인 진화는 종교, 사상, 신분, 권위 등 총체적인 미의식이 개입된 원시회화라고 할 것이다. 원초적인 문신이 몸에서 떠났을 땐 옷과 직물의 문양으로 이동됐다. 그 단계는 미술을 지각한 창조행위가 놀랍게 진보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다.

劃의 성질과 미적 인식의 전환
미학적 견지에서 한국미의 특질을 처음으로 이론화한 사람은 일본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다. 야나기는 한국미의 특질을 ‘線의 美’와 ‘恨과 悲哀의 美’로 규정하고선 여러 가지 예를 들었다. 야나기의 이러한 주장은 한국미의 특질을 말한 최초의 견해로서 탁월한 바가 없지 않지만, 그의 주장은 식민지적 미학관의 발로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이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돼 온 것은, 그 이론을 뛰어넘을 한국미 母型의 원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야나기의 주장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미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전개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론은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인 전개라기보다 일종의 감상에 치우친 인상비평과 같은 이론을 내세우다보니 너무 공허한 감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야나기가 한국미의 핵심을 ‘線의 美’라고 한 말과 그 성격을 ‘恨과 悲哀의 美’라고 규정한 그 말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지금까지 그 오류를 지적한 글을 본 적이 없지만, 이 글에선 ‘線의 美‘와 ‘恨과 悲哀의 美’라고 규정한 바로 그 대목을 분석 비판해 한국미의 본질을 새롭게 정립해보고자 한다.


이 땅에 나타난 최초의 문양은 신석기시대 토기의 문양이다. 여기에 나타난 문양의 상징성은 천손족의 태양숭배사상을 반영한 ‘빛살무늬’라고 이미 해석한 바 있다. 빛살무늬는 태양의 광망을 간결하게 디자인한 ‘밝고 환한 광명과 생명의 세계’를 그려낸 고대의 상징기법이다. 또한 빛살무늬는 그 시대 원시종교의 주술적 의미를 담아낸 언어적 부호이며, 인간이 간절하게 갈망한 ‘神’을 나타낸 문양이다. 이러한 정보가 내장된 빛살무늬가 한반도에선 신석기시대부터 최초로 등장했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미술의 시원이요 원형이란 설명이다. 빛살무늬는 미술뿐 아니라 모든 한국문화의 母型의 원형질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작용돼 온 에너지원이었다. 그 차원은 무한히 높고 넓고 크고 환한 차원이다. 밝은 광명의 세계다. 그러므로 빛살무늬의 본질은 야나기가 말한 것처럼 절대로 곱고 가늘고 낭창거리는 ‘線’의 성질이 아니다. 굵고 투박하면서도 싱싱해 생명력이 넘치는 원시적인 ‘劃’의 성질이다. 그것이 한국미술의 원형질이자 미학의 세계라는 것이다.

다시 획과 선의 개념상 차이를 밝혀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으로 야나기의 ‘恨과 悲哀의 美’라고 말한 오류에 대해서 비판해보자. 한국미의 성격이 ‘恨과 悲哀’에 있다고 규정한 야나기의 주장은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형편없는 부정적 구조로 만들어 버렸다. 한국인은 上古 때부터 무천, 영고, 동맹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술과 노래와 춤을 즐기며 웃음과 해학이 풍부한 낙천적인 민족성을 지닌 민족이다. 빛살과 같은 광명세계를 이상으로 추구한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의 국민으로서 슬픔과 한탄 속에 도전과 용기와 희망을 잃은 민족, 체념과 패배주의에 젖은 불쌍한 민족이란 규정은 야나기가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우리의 민족성 형성에 가공할만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아직도 한심한 것은 야나기의 이러한 이론을 추종하며 한민족의 미의식을 ‘恨과 悲哀의 美’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부류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민족의 미의식은 태양과 같이 환한 ‘밝음의 미학’이 그 원형이다. 그러한 광명사상은 홍익인간으로 진화 발전한다. 그런 미의식을 극도로 추상화한 것이 빛살무늬로 상징됐다. 빛살무늬의 상징은 우리 민족이 화려하고 복잡하며 기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간단소박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 배경이 됐다. 그러므로 한민족을 白衣民族으로 부르게 된 일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태양색인 백색을 가장 좋아하는 심성을 지닌 민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반도 암각화는 한국미술의 척추
빛살무늬 획의 계보는 그 이후 청동기시대의 울산 천전리 암각화와 반구대 암각화, 고령 양전동(알터) 암각화와 같은 계보로 이어진다. 암각화는 가공하지 않은 원시적 투박함과 거친 질감 속에 농부의 체질과 같은 자연미가 숨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그림 2,3,9]와 같은 청동기시대의 암각화는 빛살무늬와 더불어 한국미술의 원류로서 작용해 왔다. 현대한국 추상회화를 모노크롬이나 미니멀아트와 같은 서구의 영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한국인의 체질 속에 기억됐던 빛살무늬의 DNA가 첨예한 현대적 감성과 세심한 사유로써 시대의 미감으로 현현된 것이라고 믿는다.


태화강 상류의 반구대 암각화는 수렵문화와 어렵문화가 혼재된 암각화로서 線刻, 面刻, 쪼기 등 수법이 다양하다. 고래와 호랑이, 사슴, 사람 얼굴 등 암각화의 주제는 다종다양한데[그림2,3], 지형적 위치로 볼 때 그곳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豊漁祭를 지내며 주술적 염원을 새겨놨던 고대문화의 기원처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바다에서 올라오는 남방 해양문화와 대륙에서 내려오는 북방 수렵문화가 접점해 서로 교환하는 고대문화의 특별한 문화 교류처로도 볼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비하여 천전리 암각화[그림9]와 고령 양전동 암각화[그림3]는 공통적으로 태양숭배를 반영한 빛살무늬를 다양하게 변용해 새겨놓은 곳으로 그곳은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심원[渦紋], 마름모꼴[菱形], 세모꼴[三角形] 등으로 부르는 즉물적 이름들은 태양의 이미지로 상징화한 추상성 강한 조형들이다. 그러나 모두 母型의 원리는 빛살무늬를 뿌리로 하고 있다.

한국미술의 원류-광개토호태왕비와 고분벽화
고구려 고분벽화와 광개토호태왕비는 한국미술의 원류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광개토호태왕비는 414년(장수왕 2년)에 세워진 한국 最古, 最大의 巨碑로서 비의 字體는 빛살무늬 토기의 원형질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1천800여 자에 이르는 비문의 가용한자 수는 5세기 초 고구려 문화의 수준을 말해준다. 비문의 내용도 문학적으로 한국 서사문학의 남상(濫觴)이다.


광개토호태왕비의 글자체의 획은 마치 푹 익은 보리밥이나 삼배와 같이 꾸밈없는 질박한 미감이 그 본질이다. 늠름한 북방기마민족의 기상을 잘 담아낸 서체다. 이러한 고구려 서예의 미감은 신석기시대 토기와 암각화의 원형질을 계승하고 빛살무늬의 획질을 뿌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태양을 숭배하며 東明 사상을 근본으로 한 고구려의 미학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고구려 미학은 4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고분벽화에서 더욱 다양하게 전개돼 꽃을 피우면서 한국 미술의 원류가 됐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채색과 회화의 구도가 중국 고분벽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 거기에서 벗어나 고구려의 독자적인 고분벽화로 발전했다. 빛살무늬와 같은 원시성은 줄어든 반면, 예술적 내면화는 더욱 심화되어 깊이 스며들어 갔다.

빛살무늬는 한국 추상회화의 원형
신석기시대 빛살무늬와 청동기시대 암각화와 같은 획질은 태양숭배가 반영된 문양에 속한다. 그러한 빛살무늬 계보는 한국 추상회화의 원형으로서 현대 추상회화 작가들의 작품 배경도 알게 모르게 그런 힘이 작용되고 있다. 추상화가나 어떤 평론가도 빛살무늬와 한국현대 추상회화의 연원을 밝힌 적은 없지만 그 물징은 분명하다.


현대 추상화가의 대부격인 김환기를 비롯해 곽인식, 정상화, 박서보, 서세옥, 이우환, 하종현, 윤명로, 오수환 등 대표적 추상화가들의 작업을 보면, 그들 스스로가 인지했건 못했건 간에 빛살무늬와 삼국시대 토기 및 분청자기와 같은 문양의 因素가 발견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민족에게 저장된 미의식의 DNA가 그들 뇌의 기억 속에 은닉돼 있다가 작품으로 재생돼 나타난 모습이라고 느낀다. 이것은 한민족이 지닌 미의식의 역사적 줄기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의 시간적 거리를 뛰어넘어 조건만 되면 잠복했던 미감이 새로운 생명의 미감으로 돋아나는 초월적 현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림 6, 7, 8]

밝고 환한 광명의 생명세계로서의 미적 시원
한반도에서 인간의 원시사유가 개입된 최초의 문양인 빛살무늬는 한국미술의 시원이다. 그 원형인 ‘획’은 한국문화의 母型으로서 한국 추상회화의 원리로 작용됐다고 판단한다. 이렇게 한국문화의 母型의 원리, 원형, 원형질로 표현하는 빛살무늬는 태양을 숭배하며 천손족으로 자처하던 고대 한민족이 그들의 원시사유를 문양화한 언어적 기호로서 ‘밝고 환한 광명의 생명세계’가 그 상징세계이다.


결론적으로 한국미술의 시원은 신석기시대 빛살무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야나기 식의 ‘線의 美’가 아니라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원시적 ‘劃의 美’가 그 본질임을 지적했다. 또한 한국미도 ‘恨과 悲哀의 美’가 아니라 환한 ‘밝음의 미학’이 우리민족의 고유한 미학세계임을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고유의 미학세계를 위대한 홍익사상 속에서 심화 발전시키고 구현시켜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물려주신 온 세상을 밝힐 사상을 좋은 줄도 모르고 무시하는 못난 후손이 되진 말아야겠다.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서예가 ydk629@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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