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3:00 (목)
무슨 놈의 숙명이 저 바닷가 바위굴에 쏙 박혀 평생을 볼모로 살아갈까
무슨 놈의 숙명이 저 바닷가 바위굴에 쏙 박혀 평생을 볼모로 살아갈까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03.26 1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01_ 돌속살이조개

뉘엿뉘엿 하루해가 지면서 묽은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저녁나절에, 허기진 배(腹)로 초죽음이 돼 너울거리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없이 심란한 것이 고적이 더해진다. 멀고도 험한 바다채집에 찌든 탓이다. 까막까치도 집을 찾는 이 시간, 배불리 먹고, 아늑하고 포근하게 잠드는 집이 무척 그립다. 본초적인 歸巢本能이 발동하는 것이지. 그런데 불현듯 저 멀리 바닷가에 드러누워 찰랑거리는 꼬마木船한 척이 길손의 눈 앞에 아련히 다가온다. 눈에 불이 붙고 촉각이 곤두선다. 이것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는 채집본능일까.

지독한 놈이다. 세상에, 껍데기가 둘인 조개가나무를 파고, 그 보다 더한 바윗돌에도 구멍을 뚫다니…. 개(패류학자) 눈에는 똥(조개)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지. 터벅터벅 걸어서 아까 봤던 그 배 가까이로 다가선다. 생물이 살지 않는 곳이 없다하지만, 어디 살 데가 없어 짠물에 담겨있는 배(船)바닥이나 야문 바위를 파고든단 말인가? 가끔가다 고깃배를 뭍으로 끓어 올려 배 바닥을 불로 그슬리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것은 거기에 달라붙은 따개비나 담치를 죽이고, 또‘나무속살이조개’들의 穿孔(구멍 뚫기)을 막자고 그런다. 아무튼 그놈들을 잡느라 물속을 뒹굴다보면‘물에 빠진 생쥐’가 되고 만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나의 타고난 운명인 것을!

여기에 말한 따개비(barnacle)는 겉이 조개처럼 단단한 탄산칼슘(석회)껍질로 둘러싸여 있어 잘못 연체동물의 고둥무리(복족류)로 착각하기 쉬우나, 그건 게나 새우와 같은 절지동물의 甲殼類로 바위 따위엔 물론이고 거북이나 고래에도 붙어산다. 대부분 지름이 10∼15㎜ 정도로 바깥쪽은 단단한 석회질의 둥그스름한 껍질 판(殼板)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판의 위쪽에는 두 개의 방패모양의 뚜껑(楯板)이 있어 위험에 처했을 때는 그것을 꽉 닫는다. 뿐만 아니라 조간대에 살면서 물이 나가는 썰물 때는 순판을 단단히 닫아 몸이 마르는 것을 막다가, 밀물에 물이 들면 순판을 스르르 열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덩굴 모양의 다리(蔓脚)를 들어내 먹이를 잡는다. 이들은 원래 외국종인데, 수출입화물선에 바닥짐으로 사용되는 船舶平衡水(ballast water)에 유생들이 실려 유입된 것으로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앞의 ‘꼬마木船’처럼 버려진 폐선이나 목선에 틀어박혀 사는 ‘나무속살이조개’무리가 있으니 이를 서양 사람들은 이것들을 ‘ship worm’이라하니, 말 그대로 ‘배 벌레’다. 세계적으로 65종이 넘고, 필자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4종을 찾았다. 조개껍질에는 톱날 같은 예리한 돌기가 수두룩이 나있어서 그것으로 나무(목재)를 문질러 구멍을 내니(1분에 8~12번간격으로 나무를 갉음), 파낸 구멍에 야물고 하얀 석회 관을 만들어 그 속에 조개 몸을 밀어 넣는다.

1818년 프랑스 해군군무원인 브르넬(Brunel)은 나무속살이조개가 나무에 굴을 파고들면서 톱밥가루를 뒤로 밀어내는 행태를 눈여겨 지켜봤다.

그때만 해도 아직 땅굴 파는 기계가 없었을 때라, 이 나무속살이조개 굴 뚫기를 흉내 내어 땅굴기계가 탄생된다. 이른바 모든 발명은 자연을 모방이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 것. 그 작은 생물의 행동(智略)을 예사로 보지 않았기에 큰 산을 뻥뻥 뚫는 굴착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돌속살이조개’이야기다. 나무속살이 조개가 두더지를 닮았다면 돌속살이조개는 돌을 쪼고 다듬는 石工이요 石手다. 고작 1~2cm 크기로 10종 넘게 우리나라 남·동해안에 서식하는데, 돌 속에서 한살이(일생)를 보내는 조개로, 물론 물렁한 축에 드는 石灰巖, 모래가 굳어진 砂巖, 진흙바위인 泥巖에 일을 벌인다. 이들은 나무속살이조개 보다 더 센 무기가 있다. 두 조개껍데기 끝에 예리한 조각칼(끌·drill)이 붙어있어, 이것을 돌에 대고 아등바등, 근근이 문질러 숭숭 구멍을 뚫기에 바위가 뻐끔뻐끔 벌집, 곰보가 된다. 조개가 돌보다 세고 바위보다 강하다! 햇살에 노출되는 간조엔 바싹 오그려 입 닫고 있다가 만조엔 두 껍질 열어 제치고 생기를 되찾는 돌조개들! 자연은 허리를 굽히지 않는 자에게는 자기의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에 바닷가에 가면 사위를 찬찬히 둘러 볼 것이다. 바위에서 조개의 집이요, 조개가 판 무덤을 만날 것이니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에서 우리는 얼마나 생물들의 생명력이 모질고 다양한가를 되씹어보게 된다. 바위 안에 집을 튼 가여운 이것들은 한 번 들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몸집이 커지면서 따라서 굴도 넓게 파내고, 내키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오순도순 거기에, 아니 죽어서도 그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주 어릴 때 작은 바위틈에 들어붙어서 안간힘을 다해 딸그락딸그락 굴을 파고, 몸집이 커가는 만큼 거듭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넓히고, 점점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결국 입구는 아주 작지만 커다란 방이 안에 생겨나고 그 안에 쫄딱 갇히고 만다. 무슨 놈의 숙명이, 저 바닷가 암혈(바위굴) 속에 쏙 박혀 평생을 볼모신세가 된단 말인가. 아무리 만물이 제 자리가 있다(萬物皆有位)고 하지만 말이다. 실은 괜히 필자가 그렇게 봤을 뿐, 바위가 그들의 집이요 고향인 것은 두말 할 나위없다.

출렁이는 바닷물에 나무속살이조개와 돌속살이조개가 살고 있더라. 만경창파, 그리운 바다의 물결 소리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