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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학자적 고뇌의 되돌이표
[學而思] 학자적 고뇌의 되돌이표
  • 고영만 성균관대
  • 승인 2001.01.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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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4 14:45:44
고영만/성균관대·문헌정보학

정보학이라는 학문에서 다루게 되는 기술적 문제도 사회과학의 틀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유학생들의 스터디 그룹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했었다. 대학 때 제대로 공부 못한 것을 도움 받는 것도 좋았고 또 가끔씩 저명하신 분들을 모셔다 듣는 말씀들도 좋았다. 그 중의 한 분이셨던 송 교수님은 고향 생각이 나셨던지 어렸을 적에 물리학 교수였던 부친께서 현미경과 망원경을 사다주신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멀리 내다보고 또 사물을 깊이 보라는 아버님의 가르치심이었다는 회고를 하신 적이 있다. 물론 나에게만 특별히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송 교수님은 지금도 베를린에 계신다.
“교수님, 하얗지 않으면 백조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많은 백조가 하얗다고 해도 그 다음 백조가 하얗지 않을 수 있으므로 모든 백조가 하얗다는 진리의 확인은 하얀 백조를 찾는 검증 작업보다 하얗지 않은 백조를 찾는 반증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백조이론’을 들이대며 칼 포퍼의 반증주의를 설명하는 도중에 터져 나온 한 학생의 질문이었다. 지금은 백조라는 말 대신 고니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하면서 잘 넘어가겠지만, 처음 질문에 접했을 때를 생각하면 당황했던 기억과 함께 망원경과 현미경은 사회과학에도 필요하다던 송 교수님이 떠오른다. 그분의 말씀이 나를 정보학의 미세한 기술적 문제에 붙들어 매두지 못하고 주제넘게 정보학과 직접 관계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반증이론 같은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문에 접하던 초창기에 나는 망원경과 현미경 사이에서 얼마나 멀리 파야 깊이 팔 수 있고 또 얼마나 넓게 잡아야 높이 쌓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무척 고민했었다.
“자네, 수영교사가 되고 싶나? 왜 그렇게 풀에서 빙빙 돌고만 있어? 잠수를 해야 뭔가를 찾아내지!” 13년 전 프로젝트 제안서 한번 만들어보라고 해서 써냈다가 박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인데, 몇 년 전부터는 내가 우리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되었다. 박 교수님으로부터 수영교사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침 매일 수영을 하러 다녔고 또 잠수에 재미를 붙여 점점 깊이 들어가다 호흡을 잘 못하여 고막이 터진 일이 있던 터라 처음에는 그 일로 나를 놀리시는 줄 알았다. 아무튼 수영을 정말 잘 하려면 잠수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수를 잘 해야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박 교수님의 가르침을 나는 몸으로부터 먼저 배웠던 셈이다. 그렇지만 수영할 때 잠수는 잘 할 자신이 있었으나 공부할 때 필요한 잠수는 무척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잠수하기가 쉽지 않아서 논문을 쓸 때마다 박 교수님 말씀을 떠올리며 수영교사와 잠수부 사이에서 고민한다. 박 교수님은 지금도 가끔씩 멀리서 격려 전화를 주신다.
“이세상은 극장이고, 극장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자기 자신의 확실한 자리가 없어 의자 사이에 서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학문이 그렇고 또 내가 서있는 위치가 그렇습니다. 극장에서 의자 사이에 서있다는 것은 매우 거북하고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또 앉아 있는 것보다 전망을 멀리 내다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물론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어느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80년대 초 정보학이라는 학문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 학문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40대 초반의 베어지히 교수가 했던 ‘의자사이에서의 고민’ 이야기이다. 그런데 학부제가 시행된 이후 의자사이에서의 고민은 어느 틈엔가 내 문제가 돼 있었다. 학부제 하에서 하나의 학문은 다른 학문들에 대하여 학문적 권위, 정책적 우선순위에 있어서 경쟁 관계에 놓여있으며, 이러한 갈등을 극복해 낼 경우에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스스로만을 주장하는 모험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학문과의 공동 전략에 가볍게 동의할 수도 없고. 살아남기 위한 대가로 치루어야 할 지성적 의무와 위험성을 바라보며 이제는 독자적 모험이냐 아니면 공동 전략이냐라는 의자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베어지히 교수님은 어느새 환갑을 맞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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