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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과 어떤 결핍
‘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과 어떤 결핍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4.20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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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한국문학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더불어 삶의 조건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문학입니다. 그렇지 않은 문학이 없었습니다.”지난 1월‘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문학동네 刊)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작가 황석영이 한 말이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 문장이 다시 마음에 걸린 것은, 전철 안에서‘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광고를 접한 뒤였다.‘ 마음에 걸렸다’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101편의‘명단편’을 호명하는 방식, 그리고 이러한 호명이 가져다주는 어떤 결핍 때문이었다.

출판계가 불황의 그늘 속에 있는 가운데, 그리고 점점 문학이 왜소화되고 있는 독서 풍토 속에서 한국명단편 시리즈를 독자들에게 새롭게 제안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어느 시대나‘시대의 눈’에 맞춘‘문제작 시리즈’를 새롭게 엄선해 문화사의 내면을 확장할 권리가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전업작가로 살아온 황석영이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3년 동안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연재했던 내용이어서 더욱 반길만하다.

황석영은 2011년 11월 11일 염상섭의「전화」를 연재 첫 머리에 내걸면서 문학 독자들에게 한국 단편의 힘을 역설해왔다. 그렇게 해서 3년에 걸쳐 이상의「날개」등 이미 한국 문학 고전의 반열에 오른 단편에서부터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 예컨대 김영하의「흡혈귀」, 김애란의「서른」등에 이르기까지 101편의 단편 소설 목록을 완성했다.

문학 선집이기에 황석영은 문학적 선입견과 싸워야 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다른 문학 전집과도‘차별성’을 보여야 하니, 이것도 더욱 고려했을 것이다. 황석영은“열권을 모두 읽으면 지난 10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기영, 이태준, 박태원, 김사량 등의 월북작가 작품을 수록했고, 근현대의 출발점도 이광수의『무정』이 아닌 염상섭의「만세전」으로 제시한 것, 나아가 1990년대 이후 31명의 작품을 수록함으로써 상대적으로‘현대문학’에 비중을 둔 것 등이 그런 ‘차별화’시도라 할 수 있다.

‘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은‘황석영’의 눈으로 솎아낸 선집이다. 문학 교수 중심의 작품 선정 일색이었던 선집 만들기에서 벗어나, 직접 사이버 공간에서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하나하나 작품을 열어갔다는 점에서, 어쩌면 選者는 황석영만이 아니라, ‘작가-독자’모두일 수도 있다. 요컨대, 이러한 접근은 문학전집 혹은 선집 작업에서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한 것으로 읽힌다.‘ 수용미학’에서 그토록 강조해왔던 수용자 즉, 독자의 생각과 감정, 입김이 반영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선집 만들기가 동시에 어떤 결핍을 확대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가가 했던 말을 환기해보자. “한국문학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더불어 삶의 조건들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문학입니다.”전철 안에 큼지막하게 광고 카피가 실린‘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은 하나하나가 틀림없이 그런 반응의 결정체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101’편의 명단편 목록은 이런 질문도 은밀히 던지고 있었다. 과연, 100년에 걸쳐 한국문학이라는 숲을 일군 작가와 작품 목록이 우리에게 있는가? 라고. 물론 이 질문은‘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을 비롯 수많은 문학선집의 것이기도 하다.

選集은 그 토대가 되는 전체로서의 한국근현대문학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작가 전집이 없다. 이광수 전집은 1970년대에 멈춰 섰고, 염상섭 전집은 1980년대 민음사에 진행했지만, 이것을 정본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작가 전집의 부재뿐만아니라, 문학사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 이를테면 새로운 작가와 작품의 발굴에 전념하는 일도 드물다. 이미‘검증된(?)’작가와 작품이 무한 반복될 뿐이다. 문학 연구자들이 이론에 신경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 나라 문학의 세포를 하나하나 복기해내고, 이를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문학 출판사들 역시 장기적 안목에서 한국문학이라는 숲을 복원하는 노력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나는 문학선집은 언제나 그 사람, 그 작품에 몇몇의 새로운 얼굴이 덧붙는 판박이로 쳇바퀴를 돌 것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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