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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철학의 정점에서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 마련하다
계몽철학의 정점에서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 마련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7.07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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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22강. 백종현 서울대 교수의 ‘칸트 『순수이성비판』’

▲ 임마누엘 칸트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강연이 ‘근대 정신과 비판’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4일(토) 백종현 서울대 교수(철학과)가 4섹션 ‘근대 정신과 비판’ 첫 주자로 나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어냈다.
백종현 교수(철학과)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하대 교수, 한국칸트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哲學> 편집인, 한국철학회 철학용어정비위원장,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존재와 진리-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 문제』, 『시대와의 대화: 칸트와 헤겔의 철학』, 『칸트 이성철학 9서5제』, 『동아시아의 칸트철학』(편저), 『한국 칸트철학 소사전』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실천이성비판』, 『순수이성비판 1·2』, 『판단력비판』 등이 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백종현 교수는 어떻게 대중강연 무대로 옮겨냈을까.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칸트의 합목적적 사상의 토대를 짚어낸 백 교수의 강연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칸트의 비판철학은 그 자체로 계몽철학이다. 코페르니쿠스-갈릴레이-뉴턴이 과학에서, 로크-루소-볼테르가 정치·사회 이론에서 계몽 정신을 示現했다면, 칸트는 무엇보다도 철학의 본령인 형이상학에서 그것을 시현했다. 신의 계시로 설명되던 세상의 온갖 이치를 인간의 이성에 의해 밝혀보겠다는 것이, 아니 세상의 온갖 이치의 본부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의 이성이라는 것이 계몽주의의 주장이다. 이 같은 계몽주의가 형이상학의 영역에서는 칸트에 와서 정점에 이른다. 칸트의 철학은 계몽철학의 정점에 서 있다. 그래서 칸트의 첫 작업은 ‘순수 이성 비판’이다.


『순수이성비판』은 철학사에서 ‘대혁신’을 넘어 ‘혁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러나 기본적인 서술 구도나 다수의 개념 사용에서 칸트는 서구의 전통적 학술 유산을 상당 부분 받아쓰고 있다. 인간의 활동 주체를 의식으로 놓고, 의식의 대상과의 교섭 방식에 따라 의식작용을 다시금 知(Wissen/Erkenntnis)·情(Gef?hl)·意(Wille)로 구분한 것은, 전통적인 최고 가치관, 곧 진선미의 구분 방식을 좇은 것이고, 그의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 등 이른바 3 비판서는 사실 이 세 가지 가치 탐구의 예비학 성격을 지니고 있다.


칸트에게 ‘이성’은 때로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규정할 때처럼 인간 의식작용 전체를 지칭한다. 이를 편의상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이성’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다. 이에는 ‘사변 이성’, ‘실천 이성’은 말할 것도 없고, ‘판단력’, ‘상상력’, ‘감정’ 등 모든 심성 양태가 모두 포함된다. 또 때로는 지식 능력 일반만이 이성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른바 ‘사변 이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것을 우리는 ‘넓은 의미의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하고 비판받는 이성은 바로 이 ‘넓은 의미의 이성’이다. 칸트는 이 이성을 다시금 감성(Sinnlichkeit)·지성(Verstand)·이성(Vernunft)―‘좁은 의미의 이성’―으로 세분하는데, 이 세 이성 기능에 대한 비판의 전개가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을 구성한다.

『순수이성비판 1』의 대의
① 칸트 초월철학의 대강
인간은 감각작용을 통해서만 대상 인식을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대상과 접촉하는 이러한 감각작용을 ‘직관(Anschauung)’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직관하는 인간의 능력을 ‘감성(Sinnlichkeit)’이라 한다. 감각작용은 그러니까 직관활동으로서, 그것은 감성이 무엇인가에 의해 촉발돼 그때 주어지는 잡다한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어지는 잡다한 것들은 감성의 일정한 틀인 공간·시간의 형식에 맞춰, 곧 ‘서로 곁하여’ 그리고 ‘서로 잇따라’ 정리 정돈돼 수용된다. 이렇게 감각작용을 통해 수용된 것을 칸트는 ‘현상(Erscheinung)’이라고 일컬으며, 여기서 수용된 잡다한 것을 ‘현상의 질료’라 하고, 이 질료를 일정한 관계에서 정돈하는 ‘서로 곁하여’ 곧 공간 표상과 ‘서로 잇따라’ 곧 시간 표상을 ‘현상의 형식’이라고 부른다.

감각작용의 이러한 결과를 ‘현상’이라고 부른다면, 이러한 현상이 있도록 감각작용을 촉발한 ‘무엇인가’는 ‘사물 자체(Ding an sich)’라고 부를 수 있겠다. 또 저러한 현상을 경험적 대상이라고 부른다면, 저 ‘무엇인가’는 ‘초험적 대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범주들에 따라서 지성이 잡다한 현상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통일 인식하는 작용을 일컬어 ‘사고한다(denken)’ 또는 ‘규정한다(bestimmen)’고 하는데, 이때 이 사고함 내지 규정함은 선험적인 그러니까 주관적인 감성적 표상인 공간·시간 관계에 따라 일차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다시금 선험적인 그러니까 주관적인 지성개념들인 범주들에 따라 통일(vereinigen) 결합함(verbinden)을 말한다.

②초월철학과 인식론/존재론의 혁명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1』에서 그의 이른바 ‘초월철학’을 개진한다. 계몽주의자 칸트는 그의 ‘모던(modern)’ 철학을 개진하는 자리에서 ‘초월적’을 인간의 의식작용 또는 그 작용결과의 성격으로 규정했다. 그것은 단적인 ‘사고방식의 변혁’(KrV, BXⅥ)으로서,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의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이래 신의 세계 창조 원리를 뜻하던 ‘순수 이성(ratio pura)’이 인간의 의식을 지칭하게 됨으로써 일어난 일이다. 이로부터 ‘초월적인 것’ 또한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코페르니크스적 전환’, 그것은 사물 인식에서 ‘사물’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자에 의해 인식되는 것, 즉 ‘대상(Gegenstand)’으로 보는 ‘사고방식의 변혁’을 일컬음이다.


칸트의 현상존재론으로서의 초월철학의 요지는 그의 ‘진리’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칸트는 진리를 ‘사물과 지성의 합치’라 규정하고, 참된 인식은 ‘존재자의 지성에의 일치’로 인해 성립한다는 사상을 표명해, 이른바 인식자-인식대상 관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단행하고 있다. 이로써 칸트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 원리가 그 인식에서 인식되는 존재자, 다시 말해 인간에게 의미 있는 유일한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가능하게 하는 존재 원리임을 분명히 한다. 칸트에게서 의미 있는 존재자란 현상뿐인 한에서, 이런 칸트의 존재론은 ‘현상존재론’이다.

『순수이성비판』의 지향: 지식학에서 철학으로
칸트의 현상존재론은 이론 이성이 자신의 순수한 인식 능력을 검사한 결과, 감성적인 것으로부터 초감성적인 것으로 넘어가 지식을 확장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확인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칸트는 이성 사용의 방식을 이론적 사용·실천적 사용으로 나눴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반성적 사용의 방식도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 자신 과학적 탐구의 목표인 진리 가치 외에도 ‘형이상학적’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칸트의 현상존재론은 이제까지 진리의 지식 체계이고자 했던 형이상학에게 선과 미와 聖 그리고 완전성의 가치 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지성적 지식 안에서가 아니라 이성의 이념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철학은 한낱 지성에 머무르지 말고 이성으로 나아갈 것을 칸트는 촉구한다. 칸트는 이성비판을 통해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현상)과 알 수 없는 것(사물 자체)을 분간함으로써 지식세계의 한계를 제시했다. 그러나 칸트는 다른 한편으로 근대 과학의 본을 따라 철학이 한낱 지식학(scientia)에 머무르지 않고, 참철학인 지혜론(philosophia)으로서의 소임을 해야 함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 소임을 『순수이성비판』 후반부에서는 소극적으로, 후속하는 『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에서는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그의 도덕철학과 합목적성 사상은 그 결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칸트가 지향했던바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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