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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代 대학원생이 理事 … ‘설립자 직계’면 만사형통?
30~40代 대학원생이 理事 … ‘설립자 직계’면 만사형통?
  • 이재 기자
  • 승인 2015.09.22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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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개 사학법인 이사 ‘누가 있나’ 들여다보니 ②
▲ 일러스트 돈기성

국내 4년제 일반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가운데 상당수 법인이 후계구도를 위한 친족 경영체제를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일부 대학은 최근 대학 내에서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별다른 경력이 없는 설립자 후손을 이사로 임명해 논란이 됐다. 이 가운데는 아직 대학원에 다니는 재학생도 있어 ‘대물림’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표면 위로 드러난 곳은 K대다. 지난해 이 대학의 학교법인은 김 아무개 이사장의 장녀인 유모 씨를 이 대학 이사로 선임했다. 40대 초반으로 알려진 유씨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학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유씨의 약력에는 연세대 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기재돼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K대 설립자의 측근에 따르면 유씨는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특별한 활동 없이 곧바로 결혼했다. 그러다 최근 김 이사장의 비리·횡령 혐의가 불거진 이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측근은 “지배구조에 위협을 느끼자 김 이사장이 평범하게 주부로 살던 유씨를 불러 후계자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겠느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때문에 김 이사장과 마찰을 빚고 있는 학내 구성원들은 유씨의 이사자격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출난 교육경력도 없이 대학을 경영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특히 오는 11월 김 이사장이 비리·횡령을 저질렀다고 제기된 소송에 대한 최종선고가 남아 있어 이를 앞두고 친딸을 이사회로 삼는 것은 비상식적이란 것이다.

K대 관계자는 “혈연만으로 이사선임의 정통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사선임의 정당성은 구성원들로부터 소통과 협의의 절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K대 이사회 측은 유씨가 설립자의 장손녀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립자의 직계가족이기 때문에 이사회 선임에 무리가 없다는 게 이들의 해명이다.

후계구도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곳도 있다. 경남 진주에 소재한 H대다. 이 대학은 지난 2013년 세종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강모 씨(34)를 이사로 선임했다. 강씨는 H대 학교법인 강 아무개 이사장의 4녀다. 이 대학의 한 관계자는 “아직 대학원도 졸업하지 않은 딸을 이사회에 이사로 선임하는 목적이 후계구도 외에 뭐가 있겠느냐”고 귀띔했다. 강씨는 최근 5월과 8월에 열린 이사회 회의 가운데 5월 이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C대 역시 이사장의 손자인 30대 김아무개 씨를 이사로 선임했다. <교수신문> 취재 결과 단국대, 우송대, 대구한의대, 우석대, 한양대, 동신대, 김천대, 수원대, 경일대, 호서대, 호원대, 인제대 등 많은 4년제 일반대학에서 이미 설립자 후손에게 대학 운영권을 넘겼거나 넘길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상 국내 사학법인은 일부 대학 몇 곳을 제외하면 설립자 후손에게 대학운영권이 이양되는 것이 ‘정상’수순일 정도다.

현행 제도 역시 이를 특별히 제약하지 않고 있다. 친족이사 등 사학법인의 족벌경영을 규제하는 사립학교법은 친족이사의 범위를 8촌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배우자로 규정하고 이 친족이사의 비율이 전체 이사회 정원의 4분의 1넘지 않으면 자율적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사장의 친인척에 대해서는 총장이 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같은 조항에서 ‘이사정수 3분의 2의 동의와 관할청 승인’이 있으면 제한 없이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친족이사의 사학법인 족벌경영은 당장 법인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2013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설립자의 직계가족이 이사장과 총장, 이사 등으로 재직하고 있는 4년제 대학 91곳 가운데 69곳이 사학법인으로부터 법정부담금을 전액 지원받지 못했다. 법정부담금은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납부해야 하는 사학연금과 건강보험료 등의 운영비다.

이들 대학은 특히 법으로 정한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하지 못해 법정부담금을 낼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법으로 정한 사학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 수익률은 3.5%지만 이를 넘기지 못한 대학은 91곳 가운데 69곳에 달했고, 확보율 자체를 준수하지 못한 대학도 76곳이었다. 확보율과 수익률을 모두 지키지 못한 대학도 58곳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친족이사 등으로 둘러싸인 사학법인의 족벌경영은 폐쇄성이 강해 합리적인 경영을 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 모 사립대 이사는“국내 사학법인의 족벌경영은 사실상의 독재다. 사학법인이 생사여탈권을 갖고 교내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교수나 직원을 제거한다. 매우 후진적인 이사회 구조”라고 비판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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