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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교수·학생 “나는 대학의 이방인”
외국인교수·학생 “나는 대학의 이방인”
  • 이재 기자
  • 승인 2015.09.30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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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 ‘국제화지표’의 덫

국내 대학가에 국제화 바람이 분 것은 언론사 대학평가의 영향이 크다. 2005년 중앙일보 대학종합평가를 보면 교육여건 및 재정 지표별 평가(225점)에서 외국인 교수 비율, 외국인 학생 비율, 해외 파견 교환학생비율의 점수가 25점(13.5%)이다.

이듬해가 되면 국제화지표의 비중은 70점(16.2%)으로 커지고, 지표도 국내 방문 외국인 교환학생 비율, 영어강좌 비율이 추가된다. 기존 외국인 교수 비율은 10점에서 20점으로 두 배 올라 순위에 큰 영향을 주는 지표가 됐다. 이후 교육부가 대학을 평가하는 잣대로 국제화를 제시하면서 국제화는 이제 선택을 넘어 생존을 위한 목표가 됐다. 이로부터 10여년이 흐른 현재 대학가는 ‘국제적’ 수준일까.

외국인 교수 수와 유학생 수 등 양적으로만 팽창한 대학가의 ‘국제화’는 도리어 구성원간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을 넘어 외국인 교수들도 문화적 차이와 폐쇄적인 대학문화 속에서‘이방인’의 처지를 크게 느끼고 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일러스트 돈기성

한국 등지는 외국인 교수들 “연구환경 열악, 의사소통 안돼”
한국인과 공동연구엔 ‘들러리’ 신세 … “적응 어렵다” 입소문 퍼져

국내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를 경쟁적으로 늘려온 지도 10여년이 흘렀지만 이들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뒷받침은 미미한 수준이다. 여전히 외국인 교수에 대한 대학가의 인식은 영어강의’에 쏠려 있고, 이들을 활용해 국제적인 연구를 하겠다는 포부는 빛바랜 슬로건에 그쳤다.

국내 외국인 교수는 지난 2008년 처음 외국인 정책본부에 의해 통계가 시작된 뒤 꾸준히 늘었다. 2008년 3만8천261명이던 외국인 교수는 지난 2013년 5만166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교수비자(E-1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교수는 2천637명(2013년)에 그쳤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보고서 ‘해외 우수인재 유치 활용 정책 동향 및 방향도출’에 따르면 국제화를 매년 강조해온 것과 달리 국내 외국인 연구인력 비율은 1.76%에 불과하고, 국제적인 과학 기술경쟁력은 2008년과 비교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08년 세계 5위를 기록했던 과학기술경쟁력은 2013년 7위로 하락했고, 같은 기간 혁신지수도 9위에서 17위로 하락했다. 기술수용력 지수는 13위에서 22위로 9계단이나 내려왔다.

이 같은 국가과학기술경쟁력의 하락에 대해 KISTEP 측은 국내 연구팀의 인적구성의 다양성을 높여 해외 우수연구자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교수들이 느끼는 한국생활의 불편함은 이만저만한 수준이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교수들은 언어문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식품접근성 △사회관계 형성 △배우자·지인의 취업 △문화시설 발견 △이주비용 보장 △자녀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국내 대학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등을 돌리는 교수들도 많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 유명 A사립대에 10년간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마이클(가명, 54·남) 교수는 여전히 연구비를 지원 받기 위한 절차가 어렵다. 마이클 교수는 연구재단에서 내놓은 안내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분야와 주제는 다양하지만 이를 안내하는 절차가 대부분 한국어로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간신히 지원할 수 있는 연구사업을 찾아도 제안서를 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최근 마이클 교수는 동북아 정세에 해양문제가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지원서를 약 20여 쪽 이상 한국어로 작성해야 했다고 한다. 미국은 학내 연구비 지원이 잘 이뤄져 있고 지원절차도 한국에 비해 간소하다. 마이클 교수는 “한국의 문화이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어 한국생활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동료교수도 많다”고 털어놨다.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는 경우 대학들은 SCI급 논문을 해마다 일정 수 이상 발표해주길 바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부 대학은 연간 1~3편 이상의 SCI급 논문 제출을 연구성과 조항으로 계약서에 넣기도 한다. 그러나 조항을 뒷받침할만한 연구지원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외국인 교수들의 증언이다. 언어의 장벽을 우려한 대학원생들이 외국인 교수의 연구를 돕는 것을 꺼리는 것도 외국인 교수의 연구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마이클 교수는 “SCI급 논문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시설이나 인력이 모자란 상황에서 SCI급 논문을 내라는 건 불가능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눈치 빠른 외국인 교수는 한국인 교수와의 공동연구에 나서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연구과제를 찾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어려움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연구가 한국인 교수의 주도 하에 진행돼 외국인 교수의 역할이 연구보조에 그치거나 심하면 이름만 올려주는 ‘들러리’로 치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연구 외에도 외국인 교수들은 국내 대학에서 ‘이방인’으로 머물고 있다.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한국인 교수들과의 소통이나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머문 기간이 길어 일상적인 소통에 문제가 없는 교수들마저도 여전히 학과회의에서 배제돼 있었다.

서울 B사립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한 외국인 교수(46)는 “30년 산 교수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느낀다고 했더라. 상을 받으면 뭐하나. 같은 과 교수가 다섯 명이 있지만 교수회의도 안 부른다. 자기들이 다 결정한다. 내가 한국말을 하니까 의사소통 문제도 아니다. 한국 대학은 비밀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외국인 교원들의 한국 대학 생활 경험 연구’논문을 발표한 심미경 동아대 교수(다문화교육)는 “회의에 출석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조교가 민망해서 외국인 교수에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말도 들었다. 운영에 참여하지 못한 채 주변에 머물러 있는 외국인 교수들은 한국 교수사회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포출신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한 교포출신 여교수(사회학, 36)는 “한국인 교수들은 영어를 물어볼 때 외엔 접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대학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는 인종차별 논란마저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산지역 C사립대에 재직하고 있는 한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교수는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을 받은 적 있다고 고백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금기인 돼지고기를 먹을 것을 강요 받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다른 교수들의 제지로 즉각 사과를 받아냈지만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곧장 자리를 떠났다”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이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한국 대학에 오려는 외국인 교수도 줄고 있다. 심 교수는 “미국에서는 한국 대학이 연구환경도 좋지 않고 문화적인 적응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있다. 연고가 없으면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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