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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발전하고 있다 … 기술에서 ‘구체적 이름’으로
그것은 발전하고 있다 … 기술에서 ‘구체적 이름’으로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10.0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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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19. ‘로봇’ 정의
▲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등장하는 악당 ‘울트론’. 로봇이라는 폭넓은 개념의 단어보다는 구체적인 기능을 하는 기계의 이름이 더 유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사진출처= 인스티즈(http://www.instiz.net/)

‘로봇’이란 단어는 의미 없다. 왜 우리는 여전히 로봇이라고 지칭하는가? 이는 의미론적 범죄(semantic crimes)가 아닌가. 지난달 30일 미국의 한 벤처미디어(fusion.net)에 이 같은 내용의 글(The word ‘robot’ is meaningless. Why are we still saying it?)이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글은 『이질적 사도』와 『영 머니』로 유명한 케빈 루스가 썼다.

올해 초 독일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22살의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조립머신이 그를 자동차 일부분으로 착각했고, 결국 청년은 철판에 압사 당했다. 이를 두고 많은 언론들이 로봇 살해의 경우라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터미네이터’에서 미래 전쟁을 불러오는 스카이넷이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이어졌다.

지난주 폭스바겐 디젤차 100만대 가량이 배출가스 테스트를 조작하게 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고 있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 차를 몬 운전자들은 의지에 상관없이 수많은 오염물질을 대기로 배출한 셈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폭스바겐의 ‘로봇(이 만들어낸) 자동차’를 문제로 삼지 않았다. 분명한 건 위 두 사건은 모두 기술적으로 로봇의 잘못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로봇을 “일련의 복잡한 작업들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컴퓨터에 의해 프로그램 가능한 기계”로 정의 한다. 사실 공장의 조립기계보다 디젤 자동차야말로 가장 복잡한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장의 기계는 사전에 프로그램된 지시에 따라 단순히 부품들을 들어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조사원들에 따르면, 디젤 폭스바겐 자동차는 내장된 센서가 배출가스 테스트를 할 때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 ‘환원촉매 세척 모드’로 완전 전환해 반응함으로써 테스트를 무마하게끔 한다.

다시 말해, 디젤 자동차가 이런 방식으로 프로그램될 때, 폭스바겐의 조립기계는 의도치 않게 사악하고 비윤리적이 된 것이다. 디젤 트럭과 버스는 환경오염의 문제를 낳아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인 ‘선택적 환원촉매 감소’를 채택했다. 이는 공장굴뚝의 오염원을 세척하는 방식과 같다. 즉 디젤 엔진의 배기관에서 오염원을 청소하는 방식이다.

오늘날 우리 일상생활에서 실제 많은 로봇들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 온도조절장치’는 집안의 온도를 올리거나 내려주는 로봇이다. ‘스마트 홈 안전 시스템’은 보안을 담보하는 로봇이다. 카페인을 제공하는 블루투스칩 달린 커피머신도 로봇이다. 그리고 이른바 ‘소프트웨어 로봇들’은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시리(Siri. 애플의 디지털 개인 비서)나 코타나(Cortana. MS의 디지털 개인 비서) 혹은 자산관리 상담을 해주는 로보 어드바이저스, 순식간에 작동하는 번역 어플리케이션 등이 있다.

가사일이 점점 자동화 할수록, 더 많은 수의 로봇들이 급성장한다. 그런데 서로 연결된 장치들이 출현함에 따라 핵심을 찌르는 의미론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즉 ‘자동화 한 프로세스’가 멈추고 ‘로봇’이 시작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왜 자동차 부품을 옮기는 공장의 기계는 ‘로봇’이고, 훨씬 더 복잡한 코드로 만들어진 폭스바겐 자동차는 ‘제타(Jetta)’인가?

임의로 사용하는 ‘로봇’이라는 정의는 모든 종류의 기계지능이 지닌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이제 그만 이 용어를 사용하는 건 어떨까. 케빈 루스는 로보틱스(robotics)와 자동화 관련 전문가들에게 ‘로봇’이라는 용어에 대해 물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로봇’이라는 단어의 유용성은 줄었다고 대답했다.

드론 제조 회사 3DR이 CEO인 크리스 앤더슨은 “로봇이라는 용어는 이제 별 쓸모가 없다”면서 “로봇들이 작업을 수행하면 우리는 실제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식기세척기’ 혹은 ‘토스터기’ 혹은 ‘드론’ 등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로봇이라는 단어는 미성숙한 발달 단계,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의미한다”며 “그것들이 자연적 형태를 갖추게 되면, 그 기능을 설명하는 이름을 부여받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소프트-로보틱스 제조사 뉴보틱스 CEO 케빈 알버트는 ‘로봇’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옹호했다. 뉴보틱스는 실제로 복수의 자유도를 갖춘 동작 조화가 가능한 기계들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로봇이라는 말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 의해 폭넓게 정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빈 알버트는 “기계들의 분류 체계는 분명 존재한다”면서 “로봇이라고 말하는 건 동물과 같은 어떤 특정 종을 말하는 것과 동등하다”고 말했다. 로봇이라는 말은 기업들의 혁신을 바라는 수사학적 수식어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그는 덧붙인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함께 존재하는 이정표 같은 게 로봇이라는 단어”라며 “당신이 만들고 있는 것을 말할 때 로봇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는 미래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 쉬운 지름길 같은 언사다.”

그러나 케빈 루스는 인간 에이전시의 책임 문제를 흐트리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로봇이 잘못을 하면 우리는 로봇 스스로 잘못된 코딩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일반적으로 로봇들은 인간에 의해 프로그램 돼 있다. 만약 폭스바겐 배출 사태가 악의적인 로봇의 문제만으로 치부된다면, 문제가 딘 소프트웨어 변경에 서명하는 일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케빈 루스는 로봇이라고 쓴 맥락은 사실 ‘소프트웨어’나 ‘연결된 장치’가 더 정확했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이유는 로봇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고 쓰면 좀 더 관심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케빈 루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우리가 ‘로봇’이라는 말을 덜 쓸수록,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작동하는 기계들의 구조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그 기계들을 조종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할 수 있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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