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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약물중독자 100만명…정부예산은 고작 6천500만원”
“국내 약물중독자 100만명…정부예산은 고작 6천500만원”
  • 이재 기자
  • 승인 2015.10.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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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약물중독 정책포럼’ 개최한 조성남 을지중독연구소장

정부통계에 따르면 국내 약물중독자는 매년 1만명 수준이다. 이들에 대해 정부는 적발 뒤 사법처리와 함께 치료보호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국내 약물중독자는 약 100만명을 웃돈다. 99만명에 달하는 절대다수의 약물중독자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있음과 동시에 치료보호로부터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최근 관련학계에서는 이들에 대한 제도적 접근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엄벌주의로 흘렀던 과거의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세계적인 대세가 되고 있는 마약 및 불법약물 투여에 대한 ‘비범죄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엄벌주의가 약물중독을 ‘죄’로 보는 관점이라면 비범죄화정책은 약물중독을 ‘질병’으로 보고 치료감호 등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이들을 사회로 재유입시켜야 한다는 관점이다. 특히 중독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정부정책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을지중독연구소는 한일 전문가를 초빙해 약물중독에 대한 국제적인 정책을 진단하고 국내 제도 혁신을 요구하는 ‘한-일 약물중독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을 주관한 조성남 을지중독연구소 소장을 7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조 소장은 더 이상 한국은 마약이 안전지대가 아니라며 명쾌한 주장을 풀어놨다.

▲ 조성남 을지중독연구소장

“지난 1999년 이미 국내 마약류 사범이 1만명을 넘겼습니다. 국제 마약지수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마약사범의수가 20%를 넘어가면 안전지대가 아닌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9년에 이를 넘긴 것입니다. 마약류를 비롯한 약물중독이 비약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 통제가 필요한 국가로 분류된 지 오래죠. 국내 전문가들은 국내 약물중독자 수를 약 100만여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은 불법마약과 대마초 흡입으로 적발된 마약사범은 일정한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수면제나 각성제 등 치료목적으로 남발된 약물중독자가 대폭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마약류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사범 단속인원 약 1만여명 가운데 7천919명이 향정신약 중독으로 단속됐다. 향정신약의 재범률은 40%로 마약 재범률 9%와 대마초 재범률 35%를 웃돌고 있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마약과 대마초 등 불법으로 지정된 중독 외에 의료목적으로 남발되는 중독성 약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죠. 마약 자체도 해외교류가 확대되고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음성화된 유통이 가능해져 급속도로 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마약류보다 이 같은 향정신약의 남용으로 인한 중독문제가 보다 심각하다는 것이 대두됐습니다.

약물중독은 질병입니다. 약물에 의한 효과는 뇌속의 보상회로를 통해 나타타는데, 약물을 투여할 경우 이 곳에 도파민수치가 높아집니다. 순간적인 쾌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게 지속되면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겨 투여량과 횟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처음엔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중독되는 거죠. 매사에 약물에 의존한 생활이 지속됩니다.”

조 소장은 약물중독을 자발적인 정신병 유도에 가깝다고 비유했다. 약물을 투여할수록 돈을 벌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행위의 중심에 약물이 놓인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약물투여로 인해 보상회로 자체가 파괴돼 일상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약물에 의존해 피해망상과 관계망상 등 여러 가지 정신병에 노출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약물중독의 환각상태에서 발생하는 강력범죄를 비롯해 약물을 구하기 위한 밀매 등 관련범죄에 무방비상태로 놓이게 되는 것이다. 중독자 개인의 의지에 의해 중독을 극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도움은 사실상 차단돼 있다. 정부의 치료보호 실적을 봐도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 1998년 122명으로 집계됐던 정부의 치료보호자는 지난해 73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그나마도 지난 2012년 23명으로 바닥을 친 후 회복세로 돌아선 것이다. 

“국립 부곡병원의 약물중독연구소에서 국내 치료보호의 8~90%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약물중독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아 일시적으로 폐쇄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예산 부족탓이 큽니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치료보호 예산이 얼만지 아십니까? 6천500만원입니다. 100만명 규모의 약물중독자를 치료하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이 1년에 6천500만원에 불과합니다. 웃긴 것은, 이 치료보호 홍보예산이 1억원이라는 점입니다. 6천500만원을 쓰도록 하기 위해 1억원을 홍보비로 배정한 겁니다. 말이 됩니까? 한 명의 약물중독자를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데 소요되는 돈이 약 5~600만원입니다. 국가예산으로는 10명 남짓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겁니다.”

▲ 한국의 마약류중독자 치료 재활 현황, 한일 약물중독 정책포럼, 2015, 조성남

치료보호 예산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이유는 뭘까. 조 소장은 약물중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당초 이 치료보호 예산은 8억원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약물중독자를 범죄자로 치부하는 분위기 속에 이들이 치료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환경이 못됐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0년까지 치료보호 시 신상정보를 국가에 공개해야 했죠. 이 때문에 치료보호를 신청하는 수가 적었습니다. 예산을 쓰지 못하니 예산이 줄고, 그게 거듭돼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2000년 마약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이 신상정보 공개가 금지됐지만 이에 대한 홍보가 미흡한 것도 한 원인입니다.”

문제는 또 있다. 6천500만원의 예산이 ‘매칭펀드’라는 점이다. 이 예산은 국가가 50%를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0%를 부담하는 형태로 21개 지정병원에 분배된다. 엄밀히 말하면 1억3천만원의 예산이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늘려서 지원하고자 해도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서울시는 최근 강남 을지대병원에 치료보호예산을 기존 1천500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대폭 늘려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1천 500만원 밖에 지원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3천500만원은 불용예산이 됐다. 돈을 쌓아두고도 을지대병원은 이를 활용해 약물중독자 치료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거꾸로 가고 있는 겁니다. 보건복지부도 예산이 늘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예산은 치료보호가 활성화가 되지 않았을 때 예산 아닙니까? 지금처럼 수요가 늘고 있다면 추가경정을 해서라도 예산을 늘려야죠. 지금 상황이라면 병원에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고, 받고 있던 사람도 치료를 중단해야할 상황입니다.”

이 같은 정부차원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조 소장을 비롯한 국내 약물중독 관련학계에서는 국내 DARS(Drugs Addiction Recovery Support) 포럼을 발족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이번 정책포럼 역시 이를 위한 발기인대회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 조 소장의 설명이다. 

첫 걸음은 약물법원의 설립이다. 약물법원은 처벌보다 치료에 무게를 두고 재범을 막는 제도다. 중독자들이 검거가되면 중독정도에 따라 그에 상응한 치료시설을 연계해 치료를 돕고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보호감찰을 한다. 세계적으로 24개국이 약물법원을 운영하고 있다. 조 소장은 이 약물법원은 어디까지나 치료와 보호를 위한 것으로 약물에 관련된 다른 범죄를 용인하는 게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비범죄화정책이라고 하면 합법화를 떠올리는데, 둘은 다른 개념입니다. 약물법원 같은 비범죄화정책은 약물을 투여하는 행위 자체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약물중독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대신 약물을 소지하거나 유툥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야 하는 것이죠. 합법화 정책도 마찬가집니다. 유통이나 소지에 대해서 강한 입장을 갖고 있고 다만 중독자들에 대해서는 피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회용 주사기 등을 나눠주는 수준입니다. 그나마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중독자가 많을 때 쓰는 정책이죠.”

최근 국내에서도 이 같은 중독에 대처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했던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4대 중독법)’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 ‘게임’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 게임과 마약을 동일시하냐는 사회적 지탄에 시달려 사실상 제정은 물거품이 됐다. 조 소장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적으로 중독이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도 한두가지 중독증세에 시달리고 있죠. 술이나 약물, 도박, 인터넷, SNS, 쇼핑, 다이어트 심지어 일까지. 중독이 만연했어요. PC방에서 게임하다가 사망하거나 하는 중독범죄가 있지 않습니까? 저 법은 그런 산업 발전을 저해하자는 게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자는 거잖아요. 이미 사행성산업인 경마나 경정을 포함해 게임업계나 주류업계는 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민간기금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습니다.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거죠.

근데 약물중독은 이 같은 민간기금 조성이 불가능해요. 합법화된 다른 영역과 달리 약물중독은 범죄거든요.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약물중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100만명이 넘는 중독자가 있습니다. 중독자 개인만이 아니라 속한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중독에 대한 사회적 인신을 전환하고 중독치료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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